Rainbow Bible Class

일상 에세이: “번역 유감(有感)”

2015.10.16 04:25

류호준 조회 수:1226

번역 유감(有感)”

 

성경을 원문이 아니라 번역본으로 읽는 것은 면사포를 쓴 채로 서있는 당신의 신부의 입에 키스하는 것과 같다.”(Haim Nachman Bialik, 유대인 시인, 1873-1934)

 

번역자는 반역자이다.”(traduttore, traditore)

 

 

번역의 어려움과 중요성을 이런 식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에게 원문으로 읽으라는 것입니까? 그럴 수는 없지요. 그럴 수도 없습니다. 물론 원문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만이 소유하는 특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이 다른 언어를 통달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언어이해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문화를 몸으로 체득하기 전까지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식은 그 문화를 표현하고 있는 언어를 배우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언어를 이해할 수 없기에 우리는 번역에 의존하는 것입니다. 좋은 번역자를 존경해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번역 사업에 많은 관심과 투자가 있어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노벨 문학상에 정말로 관심이 많다면 국가는 번역 사업에 많은 노력을 쏟아부어야 할 것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대학에서 교수들은 열심히 가르칠 뿐 아니라 연구를 통해 논문을 써야 합니다. 그런데 한글 논문이나 저서를 완성하는 것보다 한 권의 중요한 외국 서적을 온전하게 번역하는 일이 훨씬 어렵고 시간을 많이 소모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현재 한국의 대학들은 논문이나 한글 저술에 대해서는 후한 점수를 주지만 번역서에는 박한 점수를 준다는 것입니다.

 

언어는 궁극적으로 의사소통을 위한 매개물입니다. 언어는 인간만이 사용하는 암호(symbol)라 할 수 있습니다. 의사소통이라 함은 의미의 전달입니다. 특별히 번역에서 더 그렇습니다. 의미전달이 되지 않는 번역은 반역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번역을 할 경우 어떤 원칙이 있어야 할까요? 성서학자로서 나는 종종 성경번역에 여러 번 참여한 일이 있었습니다. 개역개정판 감수위원으로도 일을 했고, 바른 성경의 번역자로서 예언서를 번역하였고, 쉬운 성경의 시편과 에스겔을 번역한 경험이 있습니다. 또한 성경주석가로서 일도 번역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합니다. 예를 들어 성경을 주석하려면 제일 먼저 히브리어 원문을 한글로 번역합니다. 그 다음이 번역한 본문을 가지고 의미를 해설을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번역할 때 생깁니다. 원문을 문자 그대로 우리말로 옮겨야할까 아니면 우리말을 사용하는 독자들에게 이해가 가도록 번역하는 것이 좋을까 하는 것입니다. 학계에선 전자를 형식일치 번역이라 부르고 후자는 기능적 번역이라고 합니다. 성경번역의 경우, 전자는 성경을 일점일획이라도 빠뜨리지 않고 번역하려는 보수주의자들의 입장이고 후자는 원문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 풀어쓰는 의역 정도라 생각하여 성경의 권위를 해치는 자유주의적 번역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이분법적 사고입니다. 번역이론에 자유주의니 보수주의니 하는 이념적 레이블을 붙이는 것은 바보스런 일이기 때문입니다. 둘 다 현대의 언어학에서 말하는 번역 이론들입니다. 유독 한국의 성경번역에 있어서는 번역이론이 마치 이념적 성향을 대변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일이 많다는 점에서 참으로 유감(遺憾)입니다. 한편 현대 언어학계에서는 기능적 번역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는 것만은 알고 지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언어는 의사소통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아주 단순명료한 진실 때문입니다.

 

여기서 나는 번역 이론들에 대해 상술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 번역가로서 나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번역 원칙을 가지고 원서를 읽고 번역한다는 것을 밝힐 뿐입니다. 이것은 성경의 히브리어나 그리스어를 번역하는 일이든 아니면 현대의 다른 언어들을 한국어로 번역할 때든 상관없이 동일하게 적용되는 원칙입니다.

 

의사소통으로서 언어사용의 의미는 개별적 단어들 속에 들어 있다기보다는 단어들의 모임들인 문장(, , clause) 차원에서 찾아야한다. 달리 말해 번역의 경우, 단어 대 단어를 찾아 문자적으로 번역하는 것보다는 송이를 이루고 있는 단어들(Words)이나 넝쿨을 이루고 있는 구(, Phrases)들의 집합체의 의미를 살려 번역하는 것이 의사소통의 매개체로서 언어를 정당하게 대우하는 것이다.”

 

- 이사야서 히브리어를 한글로 번역하면서 드는 번역 유감(有感)이었습니다


[가을 풍경, Leelanau, MI]Leelanau.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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