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불필요한 것으로 스스로에게 짐 지우기

 

나와 연배가 비슷한, 그러니깐 현역에서 은퇴를 몇 년 남겨 놓지 않은 K집사님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1974년도에 미국으로 이민 갔으니 이민 생활이 어연 42년이 훌쩍 지난 분입니다. 나도 1980년에 미국으로 이민 갔었는데 세어보니 햇수로 36년이 되었으니 그 집사님은 나보다는 이민 선배인 셈입니다. 1980년대 중반에 우리는 오하이오 주 톨레도 시에서 같은 교회를 섬기고 있었습니다. 당시 나는 30대의 젊은 목사로 톨레도에 있는 한인교회의 담임목사로 일하고 있었고 K집사님으로 공인회계사로서 직장에서 일하면서도 신학생 이상으로 성경을 공부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내려고 부단히 애를 쓰는 신실한 성도였습니다. 전공이 회계사였던 관계로 교회의 재정을 알뜰하게 돌보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그 분과 나는 한 교회에서 목사와 교인으로 사이좋게 지냈습니다. 그 집 자녀들과 우리 집 자녀들도 같은 또래였기 때문에 자주 집에 놀러가곤 하였습니다. 그러기를 5, 5년을 같이 지내다가 K집사님은 직장을 따라 아이오아주로 이주하였고 나는 그 후 네덜란드로 박사학위를 하러 떠났다가 한국으로 귀국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우린 헤어졌습니다. 동년배 30대에 만나 5년을 같이 지낸 사이었으니 가족 같았고 친 형제 같았습니다.

 

그 후 봄여름가을겨울이 수없이 돌고 돌았습니다. 몇 해 전 K집사님이 미국계 기업체의 한국대표로 한국에 나와 있다는 소식을 우연히 둘레둘레 듣게 되었고 어느 날 전화가 통화되었습니다. 강남 한복판에 살던 관계로 대형교회에 다녔던 K집사님은 옛날 우리 목사님(!)”을 찾아 그 다음 주부터 내가 섬기는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30년만의 기막힌 만남을 통해 나와 K집사님은 다시금 목사와 교인으로 함께 같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게 된 것입니다. 생각할수록 신기한 만남이었습니다. 기막힌 만남이었기 때문에 내 마음 한 구석에는 신기함과 애잔함이 함께 섞였습니다. 신기함이란 30대의 젊은이들이 이젠 60대가 된 초로의 중년들이 되어서 만났다는 것이고, 애잔함이란 그분이 하는 일의 본성상 언젠가는 헤어져야한다는 서운함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서운함은 마침내 어느 날 찾아왔습니다. 이제 한국에서의 일을 접고 미국의 돌아가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그 집사님의 얼굴 모습에서 서운함의 깊은 그림자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 내 마음에는 더 깊은 서운함이 스며들었지요.

 

만남과 이별은 늘 인생의 반복되는 리듬임에도 불구하고 이별만은 언제나 생소하고 낯 설기가 그지없습니다. 정체를 모를 괴물입니다. 누구를 만나는 순간부터 헤어질 때를 생각하며 슬퍼하는 내 천성이 여지없이 민낯을 드러내면서 나는 그 떠나감의 이야기를 듣고는 상당기간동안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우울한 날들이었습니다. 사람에겐 언젠가 헤어질 날이 온다는 너무도 명확한 인간 삶의 이치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몰라 서성거리는 내 모습이 내게도 낯이 설게 다가온 것입니다. K집사님 부부는 지난 8월 말에 미국행 비행기를 타게 되었습니다. 5년간의 한국생활을 접고 떠나게 된 것입니다. 30대에 목사와 교인으로 5년간의 인연을 맺고 살았는데, 신기하게도 60대에 이르러 우연한 기회로 다시 만나 목사와 교인으로 한 교회에서 인연을 맺고 지냈다 떠났으니 내 마음에 가운데 커다란 구멍이 뻥 둘린 셈이었습니다.

 

헤어짐, 이별, 서운함, 서글픔, 아쉬움, 그리움, 석별의 정, 이런 것들은 우리네 인생이 제대로 처리할 수 없는 신기한 감정들인가 봅니다. 우리의 늙은 부모들도 언젠가는 우리 곁을 떠날 것이고, 우리가 애지중지 키웠던 자녀들도 성장하여 부모의 곁을 떠날 것이고, 손을 꼭 잡고 평생을 같이 걷겠다고 했던 배우자가 암 투병으로 고생하다 먼저 떠날 때도 있을 것이고, 영원한 우정을 다짐했던 친구도 우리 곁을 떠날 때가 있을 것이고, 거기에는 머나먼 외국으로 떠나는 손자를 보면서 내가 너를 다시 볼 수 있겠니?” 하며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던 김포공항에서의 내 외할머니의 얼굴도 있습니다. 30대에 5년을 함께 보냈던, 그리고 30년이 지난 60대에 5년을 함께 보낸 교인을 떠나보내는 것 역시 쉽지는 않았습니다.

 

사실 목사로서 강단에 설 때마다 느끼는 이상야릇한 감정이 하나있습니다. 여기에 앉아 있는 분들 가운데 내 손으로 장례를 치룰 분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미어지기도 합니다. 아니면 지난 15년 이상 깊은 정이 들었던 분들 가운데 예기치 못한 일로 헤어져야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미리 생각하면 참으로 비애해지기까지 합니다. 어쨌든 이별은 언제나 만나도 너무도 낯선 이물질입니다!

 

이렇게 헤어졌던 K집사님이 미국으로 가신 후로 예전에 살던 아이오와 주에서 시카고 쪽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옥수수 밭만 보이는 미국 중서부 아이오와 주의 겨울은 참으로 매섭습니다. 그런데 이 추운겨울에 장거리 이사를 하게 되었으니 여간 걱정스런 일은 아니었습니다. 엊그제 K집사님은 이삿짐을 챙기셨다는 소식과 함께 이삿짐을 싸면서 만감이 교차됨을 느낀 이야기를 내게 보내왔습니다. 그 이야기의 일부를 여러분들과 함께 나눠봅니다.

 

목사님, 이번 이사는 정말 힘들어서 다시는 못할 것 같습니다. 저희가 아이오와 주에서 5년 전에 집을 팔고 한국으로 이사하면서 짐을 반 이상 버리고 단출하게 산다고 했는데 이제 다시 이삿짐을 싸다보니 어디서 이렇게 많은 물건들이 나오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네요. 자세히 보면 별로 필요하지도 않은 것들을 그렇게 많이 데리고 산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작은 위안이 있었다면 동네에 팔려고 내놓은 많은 집들을 보았는데 그들보다는 우리 짐이 그래도 한결 적은 양이었다는 게 다행이었습니다. 이삿짐을 꾸리면서 생각해보았습니다. 아하, 우리의 삶이 이런 게 아닐까요? 온갖 불필요한 것들로 자신을 스스로 힘들게 하면서 정작 중요한 것을 소홀히 하는 어리석음을 반복하는 우매함 말입니다. 예전에 아무 것도 없을 때가 정말 그리워지는 것은 나이 때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 편지를 읽으면서 잠시 멍해졌습니다. 필요이상의 것들을 움켜쥐고 살아가는 내 모습이 보인 것입니다. 그리고 편지의 이 문장을 다시금 곱씹어 보았습니다. “온갖 불필요한 것들로 자신을 스스로 힘들게 하면서 정작 중요한 것을 소홀히 하는 어리석음을 반복하는 우매함 말입니다.” 그래요, 바보처럼 살아간다는 게 뭔지를 다시금 깨닫는 아침이었습니다. “단순히 나이가 들어서만은 아니라는 마지막 말이 내 귓가에 하루 내개 메아리쳐옵니다.

 

편지를 읽은 후, 나는 아내와 함께 내 서재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불필요한 것들이 뭔가를 생각했습니다. 서재 정리를 하기로 한 것입니다. 먼지가 쌓인 책장과 책들, 수십 년을 움켜쥐고 한국에서 미국으로, 미국에서 네덜란드로, 네덜란드에서 미국으로, 미국에서 한국으로 힘들게 싸들고 다녔던 책들을 물끄러미 쳐다보니 옛 추억들이 떠올랐습니다. 아시다 시피 책마다 다 사연이 있습니다. 물론 어떤 책은 저것이 내 것이었나 할 정도로 생소한 책도 있지만 대부분의 책들은 손때가 묻은 소중한 추억의 시간여행 출발역이기도 합니다. 어쨌건 정리하고 살아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 오늘 아침, 나는 우선 처리할 책들을 뽑아 방바닥에 던졌습니다. 당분간 좀 더 두어야할 책들은 말고 지금 오늘로서 내겐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책들을 뽑아내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방바닥에 던진 책들을 아내는 벽돌 쌓듯이 차곡차곡 쌓았습니다. 책들 가운데 어느 책은 아파트 폐지모음 박스로 갈 것이고, 어느 책들은 버리기에는 아까워 누구엔가 주고 싶은 책들입니다. 버릴까 말까 하다가 방바닥에 던진 책들도 있고, 던졌다가 다시 책꽂이에 넣은 책들도 있었습니다. 이것도 아마 아직도 불필요한 것들로 스스로에게 짐을 지우려는 발버둥인 셈이지요. 우선 일차로 뽑아내보니 대략 150권 정도가 나왔습니다. 책장도 훨씬 헐거워지고 아담해진 느낌이었습니다. 앞으로 몇 년에 걸쳐, 남은 책장도 무성했던 잎사귀 모두 떨어진 앙상한 겨울나무 가지처럼 보이게 만들 작정입니다. 그래도 마음만은 바삭바삭한 겨울 아침 서리처럼 산뜻하고 시원할 것입니다. 정리하는 것은 떠날 때를 준비한다는 뜻일까요? K집사님 말대로 나이 들어서만은 아닙니다. 필요이상의 것들로 내게 짐을 지우고 스스로 허덕거리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보겠다는 소박한 바람 때문일 것입니다.

 

구약의 족장들의 삶을 히브리서는 이렇게 표현한 적이 있었지요. “그들은 다 천막(tent)에 살았습니다. 그들은 사람의 손으로 짓지 아니한 도성(city)을 바라보고 이 땅에선 천막생활을 한 것입니다.” 유목민들로서 이리저리 옮겨 다녀야 하는 그들로서 천막생활은 당연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 땅에서 정착민(settler)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일시 체류자(sojourner)로서 살아야 할 것을 이야기합니다. 시시때때로 옮기고 이사하려면 가급적 짐들이 적어야 합니다. 이른바 가볍게 여행하기" (traveling lightly)라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관광객(tourist)이 아니라 순례자로서 천성을 향한 여정을 떠나는 여행자(traveler)입니다. 그러므로 필요이상의 짐들을 처리하거나 내려놓은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수강해야하는 첫 번째 기초 과목일 겁니다. 이 글을 쓰다보니 22년전 오늘 12월 8일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날이네요. 학위증도 어디있는지 한번 찾아보고, 그것도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생각해보아야겠네요. 


[내어놓은 책들, 어떻게 처리를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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