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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파와 개혁파의 신학적 강조점

 

16세기 종교개혁운동은 당시 로마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이 성경의 가르침에 어긋난다고 하여 시작된 교회개혁운동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16세기의 종교개혁운동을 대표하는 인물로는 종교개혁운동의 제 1세대인 마르틴 루터(14831546)와 제 2세대인 요한 칼빈(1509-1564)을 뽑습니다. 이렇게 하여 개신교(protestantism)는 신학적 계보로 따지자면 크게 루터파칼빈파”(개혁파)의 두 갈래가 생기게 된 것입니다. 이종사촌 관계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입니다. 흥미 있는 사실은 두 종교개혁의 물줄기가 같은 곳에서부터 시작은 되었지만 처음부터 중요한 차이점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네덜란드가 낳은 위대한 교의학자인 헤르만 바빙크(1854-1921)의 논평은 매우 흥미로울 뿐 아니라 한국의 신학계, 특별히 장로교 전통의 신학과 교회들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할 것입니다. 들어보십시오.

 

루터파와 개혁파는 많은 부분에서 서로 동의하면서도, 시작부터 중요한 차이점들을 지리적으로나 신학적으로나 가지고 있었다. 신학적 차이의 핵심에는 궁극적 강조점의 차이가 자리잡고 있었다. 루터파가 제기한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인간론적(anthropological)이었다. “나는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는가?” 루터파에서는 행위-”(works-righteousness)가 복음의 진리로부터 가장 크게 떠난 것으로 여겨졌다. 이와 대조적으로 개혁파는 하나님의 선택하시는 작정에 있는 구원의 토태들을 고찰하려고 애쓰면서 신론적(theological) 질문을 제기했다. “하나님의 영광이 어떻게 증진될 것인가?” 개혁파에서는 우상숭배를 피하는 것이 주된 관심사였다. (존 볼트의 [헤르만 바빙크 개혁교의학 단권요약본], 99)

 

이 참에 헤르만 바빙크의 교의학 원본에서 좀 더 자세하게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개혁주의 그리스도인은 신론적으로 생각하고, 반면 루터주의 그리스도인은 인간론적으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개혁주의자는 역사 안에 서서 머물지 아니하고 이념, 즉 영원한 하나님의 결정에까지 끌어 올라간다는 것이요, 루터주의자는 그 입장들을 구원사의 중심에서 취할뿐, 더 깊이 하나님의 성정에까지 꿰뚫고 들어감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개혁주의자들의 경우 선택이 교회의 핵심(cor ecclesiae)이고, 루터주의자들의 경우 칭의가 교회의 항존적이고 항상 출발하는 조항(articulus stantis et cadentis ecclesiae)이다. 전자의 경우 첫째되고 가장 중요한 질문은 어떻게 하나님께서 자신의영광에 이르시느냐에 있고, 그와 대조적으로 후자의 경우 어떻게 인간이 축복에 이르느냐에 있다. 전자의 경우 이교도주의, 우상에 반대하는 싸움이고, 후자의 경우 유대주의, 행위거룩(de werkheiligheid)에 반대하는 싸움이다. 개혁주의자는 그가 모든 것을 하나님의 결정에 되돌리고 물(物)의 원인을 추적하며 앞으로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에 유익되게 하기 전에는 쉬지 않는 반면에, 루터주의자는 현상에 만족하고 그가 신앙을 통하여 부여받은 축복에 안락하는 자들이다. 원리에 있어서 이런 차이로부터 하나님의 형상, 원죄, 그리스도의 인격, 구원의 순서, 성례, 교회정치, 윤리 등에 대한 교리에 있어서 교의적 논쟁이 쉽게 설명된다."(헤르만 바빙크, [개혁주의교의학 제 1권], 교의학 역사와 문헌 항목 중에서, 김영규 역, 208쪽).


이것을 좀 더 확대하여 한국교회에 적용해 보자면, 한국교회의 대다수의 장로교회들의 신학적 신앙적 전통은 놀랍게도 잘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로, 개혁파적 전통보다는 루터파적 전통이라는 사실입니다. 루터파적(Lutheran) 전통에 따르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받는 문제(칭의)가 신앙과 신학의 중심적 주제이고, 칭의(稱義)를 위해서는 행위-가 아니라 믿음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이신칭의(以信稱義)” 믿음으로써 의롭다함을 받다는 교리가 한국의 장로교(개혁파)의 정통신학과 정통신앙의 리트머스 용지가 되었다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한 사실입니다.

 

한편 개혁파적(Reformed) 전통은 바빙크가 잘 설명하듯이 인간이 어떻게 구원을 받을 것인가 보다 하나님께서 그 구원을 어떻게 주시는지(이른바 신적 작정, divine decree)에 방점을 찍습니다. 좀 더 거칠게 표현한다면 루터파가 인간의 믿음을 강조한다면 개혁파는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한다는 말이다. 이것을 바빙크는 루터파가 제기하는 질문은 인간론적인 반면에 개혁파가 제기하는 질문은 신론적”(theological)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은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전가된 의라는 점이 강하게 부각됨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16세기의 종교개혁자들의 대표자들이지만 그들의 신학적 강조점과 전통이 다르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개혁신학의 전통을 따른다고 하는 한국의 장로교회와 신학도들은 이 점을 다시금 곱씹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강단에서의 설교의 전망대 역시 조정이 필요하리라 생각됩니다.

 

이상은 헤르만 바빙크의개혁파교의학에서 한 단락을 읽으면서 묵상해 본 것입니다. 이제 바빙크의 책 선전으로 들어갑니다! 헤르만 바빙크는 정말로 위대한 교의학자임에 틀림없습니다. 그가 남긴 수많은 저서들 가운데 최대의 역작은 역시 4권으로 된 방대한개혁파 교의학입니다. 물론 네덜란드어로 저술된 작품입니다. 신학계에선 소문으로만 위대하다고 알려져 있었지 많은 학자들이 언어적 장벽 때문에 실제론 이 책의 내실까지 접할 수 없었습니다. 미국에 네덜란드 개혁파 신학적 전통에 익숙한 곳이 서부 미시간의 그랜드래피즈 지역입니다. 그곳에 캘빈신학교와 캘빈대학교, 그리고 네덜란드인들이 이민 와서 세운 신학 출판사들인 어드만, 존더반, 베이커 출판사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네덜란드 후손들이기에 그곳 학자들은 네덜란드어에 익숙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네덜란드 개혁파 저서 번역 출판 위원회”(Dutch Reformed Translation Society)를 결성하였고 묻혀있던 네덜란드 개혁신학 저서들을 번역 출간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네덜란드의 위대한 신학자인 아브라함 카이퍼의 방대한 일반은혜론”(De Gemene Gratie, 주로 '공공신학'을 주제로)과 헤르만 바빙크의 4권으로 된 개혁교의학"(Gereformeerde Dogmtiek)을 영어로 번역하게 된 것입니다. 번역하게 된 것입니다(한국어로도 부흥과개혁사에서 박태현 박사의 번역으로 출판되었다). 4권으로 된 네덜란드판본이 너무 방대하기에 캘빈신학교의 헤르만 바빙크 전공자인 존 볼트 교수가 집중력을 발휘하여 4권을 단권으로 축약하여 출판하기에 이르게 되었습니다(아래 사진).


이 단권 축약본을 가지고 한국의 새물결플러스 출판사가 각고의 심혈을 기울여 번역 출판하게 되었습니다(아래 사진). 한국어판은 1,400페이지가 되는 벽돌 같은 견고한 책입니다. 개혁파신학을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구축한 압권입니다. 내용의 풍부함은 심연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 경탄과 탄복이 그치질 않으며, 사상의 심오함과 저자의 해박함에 읽은 이의 무지가 자연스레 드러납니다. 번역의 가독성은 탁월하고, 조판과 배열은 장서용으로도 완벽합니다! 책꽂이에 꽂아 넣으면 여러분의 서재가 있어 보일 것입니다! 가격이 만만치는 않지만 스타벅스 커피 몇 잔 정도만 절제하신다면 충분히 손에 넣을 수 있는 소중한 신앙적 투자입니다. 강력 추천하는 바입니다. 그 대신 필요한 부분들은 조금씩 읽고 묵상하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평생 곁에 두고 씹어볼 육즙 가득한 고전입니다.        

 

헤르만 바빙크,개혁파 교의학: 단권 축약본존 볼트 엮음 (새물결플러스, 2015), 정가 70,000. 1400페이지.


바빙크의 한글.jpg 바빙크.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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