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시간 여행, 추억의 장소 코너 마켓

 

 

19812월 그러니깐 지금부터 34년 전 일이다. 당시 나는 미국의 서부 캘리포니아 주 산호세라는 도시에서 학비를 벌어가며 일하고 있었다. 산호세는 실리콘벨리의 거점 도시로 쾌적한 날씨와 교육환경이 좋은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어서 지금도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이다. 인근에는 스탠포드 대학교와 버클리 대학이 있는 팔로알토와 버클리, 세계 3대 미항 중의 하나인 샌프란시스코가 인접해 있다.

 

캘리포니아는 지중해성 기후대라 여름에는 비가 한 방울도 내리지 않는 건기이고 겨울에는 우기로 비가 오면 산야가 온통 아름다운 녹색으로 변한다. 산호세 다운타운에 위치한 곳에 자그마한 식료품 가게가 있었는데 한인들은 보통 수퍼 마켓”(Super Market)이라고 부른다. 사실은 작은 마켓”(Mini Market)이라 부르는 것이 나을 것이지만, 그래도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미주 교포들에게 생존을 위한 마지막 자존감을 심어주는 가게이기에 수퍼마켓이라는 명칭을 허락해도 누가 뭐래지 않을 것이다.

 

2월이라면 우기(雨期). 나는 교포가 운영하는 수퍼마켓에서 일했는데 가게 이름이 코너마켓(Corner Market)이었다. “모퉁이 가게란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알마딘 가와 윌로 가의 모퉁이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의 일과는 아침 6시 나가 가게 문을 열고 밤 11시경에 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이렇게 벌어서 앞으로 갈 미시간의 칼빈 신학교에 다닐 학비를 모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른 아침 가게 문을 열고 커피를 내리면 일찍 출근하는 미국인들이 종종 가게 앞에 차를 잠시 주차하고 들어와 커피와 도넛 한 개 정도를 사가지고 가는 일이 일상이었다. 당시 나는 서투른 영어로 손님들의 요구에 답을 하였고 간혹 나의 애쓰는 친절을 귀하게 보고 이리저리 말을 걸어오면, 이 때다 싶어 귀를 쫑긋하고 그들의 말을 들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 왈 버거 씨라는 분이 있었는데 직장으로 가는 길에 매일 아침 커피를 픽업하러 내가 일하는 코너 마켓에 오곤 하였다. 매우 신실하고 정직하게 생긴 왈 버거 씨는 자신이 침례교 신자인데 내가 신학 공부하러 미국에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기 집에 식사 초대를 하여 나의 진로를 도우려고 하였다. 인근 샌프란시스코에 침례교 신학교(Golden Gate Baptist Seminary)가 있는 데 그곳으로 공부하러 간다면 한 달에 1,000 달러씩 지원이 가능하다면서 자기가 주선해주겠다고 했다. 얼마나 고마웠는지! 고마움에 그의 제안에 따랐더라면 지금 나는 침례교 목사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을 물속에 집어넣었을 것이다. 당시 산호세에 살고 있던 장인장모도 침례 교인들이었는데 나더러 굳이 동부 쪽 미시간까지 가서 공부할 일이 있느냐면서 그런 제안을 받아들이라는 무언의 압력을 넣으셨다. 물론 딸을 가까이 두고 싶어 하는 부모의 마음인 줄을 나도 이제 나이를 먹고 나니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어쨌든 그들은 나의 집념을 꺽진 못했지만 지금 이 글을 35년 후인 이제는 남편 되시는 장인어른을 먼저 하나님께도 돌려드리고 홀로 사시는 장모님의 노인 아파트에서 쓰게 되었으니 만감이 교차할 뿐이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 어느 늦은 저녁이었다. 캘리포니아의 겨울비가 은근히 옷소매 사이를 파고들어 춥게 느껴지던 저녁이었는데 가게에는 별로 손님이 없었다. 그럭저럭 가게 문을 닫을 시간이 되었다. 1040분이 넘어가는데 가게 안에는 아무도 없었고 나는 벽에 걸린 시계만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그 때 누군가 가게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힐끗 보아하니 후드티를 입고 벙거지 모자를 푹 놀러 쓴 멕시칸 계통의 청소년 같았지만 아마 마지막 손님이겠구나 하고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가게 안을 한 바퀴 돌아 계산대에 컴 한통을 올려놓은 것이었다. 지금 기억으로는 아마 25센트였던 것 같았다. “25센트 입니다!”라고 하며 동전을 받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그런데 이게 뭔가? 내 눈앞에 권총부리가 나를 향해 있는 것이 아닌가? ! !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되었다. 순간에 온갖 생각이 스쳐갔다. 한국에서 말로만 듣던 일이 지금 내게 일어나고 있구나! 식료품을 파는 수퍼마켓이나 주류 판매 가게”(hot liquor)에서 일하다가 강도들의 총에 맞아 죽은 교포사회의 이야기는 그 당시 종종 한국 텔레비전 방송에 나오곤 했었는데 바로 그 일이 내 일이 되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차마 강도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내 시선은 오로지 강도의 권총 방아쇠에 집중하고 있었다. 저 놈이 손가락 하나만 까딱거리면 총알이 내 심장을 관통하게 될 것이고, 내 심장은 걸레조각처럼 너덜거리고, 나는 더 이상 한국의 어머니와 식구들을 볼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이 그 짧고 짧은 순간에 내 머리 속을 전광석화처럼 스쳐갔다. 그런 일을 당하자 놀랍게도 내 입에서는 헛웃음이 나오고 있었다. 기가 차면 나오는 그런 웃음 말이다. 그러면서도 또 다른 생각이 스쳐갔다. 내가 서있던 계산대 바로 옆에 날렵한 몽둥이가 있었다. 가게 주인이 못된 술주정뱅이 손님들에게 위협용으로 갖다 놓은 몽둥이였는데 아주 미끈하게 잘 생겼다. 이래 뵈도 나는 운동신경이 아주 탁월하고 게다가 고등학교 시절 연마한 검도 1단에 대한민국 군대에서 배운 태권도 1단 유단자가 아닌가? 저런 놈 하나 처리 못할 이유도 없지 않는가? 내 나이 27살인데! 분초를 다투는 이 순간에 저 몽둥이를 들어 저 강도 놈의 권총 잡은 오른 손목을 내리친다면 분명히 승산이 있을꺼야!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 또 다른 한편으론, 만에 하나라도 실패한다면 내 심장은 걸레가 될 것이고 이 사건은 전파를 타고 한국에 퍼질 테고. 이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강도가 내게 한발 뒤로 물러나!”라고 소리쳤다. 얼떨결에 손을 들고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놈은 손을 길게 내밀어 계산대의 현금을 움켜쥐었다. 물론 내 눈은 오로지 그놈의 방아쇠에 집중하고 있었다. 아마 1-2분 안에 일어난 사건이었던 것 같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유유히 가게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가는 놈의 뒷모습이 보였습니다. 급히 전화로 경찰에 신고하자 얼마 후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서너 대의 미국 경찰차가 도착했습니다. 당시 나에겐 강도보다 미국 경찰들이 더 무서워 보였다. 이것저것을 물어보는데 짧디 짧은 영어로 대답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보다 더 큰 좌절감은 그 후 어디에서도 느끼지 못했다.

 

34년이 지난 어제 나는 다시 산호세를 찾았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서 허락한 21년 만의 연구학기를 빌미로, 물론 그때 내가 행동을 잘못 선택했더라면 과부가 되었을 아내와 함께 장모님을 뵈러 산호세에 온 것이다. 오자마자 제일 먼저 옛 추억을 되살려 코너마켓을 찾았다. 감회가 새로웠다. 그 때 내가 다른 선택을 했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며 그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섰던 그 계산대엔 인도 계통의 수줍음을 타는 한 젊은이가 서서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몇 마디 말을 주고받고 이내 친해졌습니다. 내가 옛날에 여기서 그랬던 것처럼 이 친구도 나에게 선 키스트 음료 한 캔을 공짜로 주는 것이 아닌가! 그에게 네가 서 있는 곳에 내가 34년 전에 서있었노라고 그리고 강도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신기한 듯 이야기를 듣던 그 친구가 우리 주인도 나에게 조심하라고 말씀했습니다.”라고 하면서 빙그레 웃었다. 그 친구도 아르바이트로 돈을 버는 중이라고 하는데, 설마 신학을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겠지.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그 시절은 그대로 멈추어 서있었던 하루였다. 내가 지금 살아서 밤늦은 시간에 객지에서 이런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삶은 신비로운 것임에 틀림없다. 그 때 코모스타스 우스떼드?”(잘 지내니?)하며 내게 말을 걸어오던 그 멕시칸 술주정뱅이들은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주인 모르게 공짜 커피 한잔씩을 그들에게 건네주면 무초 그라시아쓰”(아주 고마워)라고 좋아하던 그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아마 이 세상 사람들은 아닐 거야. 그렇게 술을 퍼 마셨으니 말이다. 어쨌든 그들의 인사에 비엔 비엔”(좋아, 좋아!)라며 대답하는 나는 지금 여기에 있는데. 인생은 퍼즐 조각 맞추어가듯 흥미롭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코너마켓에서]

코너마켓.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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