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당신은 어느 신을 섬기고 계십니까?”

 

 

바울은 실라와 디모데와 함께 지중해 연안 제 2차 전도여행을 떠납니다(행 15:36-18:22). 제 1차 전도여행은 주로 시리아와 터키 지역을 중심으로 다녔지만(행전 13-14장), 2차는 유럽(마케도니아, 그리스)으로 가게 됩니다. 먼저 빌립보로 가서 첫 개종자를 얻습니다. 후에 빌립보 가정 교회의 창립 멤버가 된 루디아 권사님이십니다. 빌립보에서 데살로니가로 갑니다. 거기에는 야손 장로님이 가정 교회의 지도자였습니다. 다시 베뢰아로 갑니다. 거기에는 마음 밭이 고운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거기서 좋지 못한 일이 발생하여 바울은 실라와 디모데를 남겨두고 야반도주하듯이 아테네로 떠납니다.

 

아테네 스타일

 

도착한 바울은 아테네 시내를 관광합니다. 우람한 신전들, 아름다운 예술품들, 수려한 조각상들, 각종 제단들, 위대한 헬라의 철학자들과 그들의 서원들(에피쿠로스 철학과 스토아 철학), 수많은 종교적 인사들을 만납니다. 아테네는 시와 연극, 노래와 춤, 철학과 예술, 문화와 종교의 도시였습니다.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고 하는 일 외에는 달리 시간을 쓰지 않는 도시였습니다.”(행 17:21) 이게 자유분방한 “아테네 스타일”이었습니다.

 

아테네 시내를 두루 살펴본 바울에겐 아테네 스타일에 뭔가 공허함이 있어 보였습니다. 나사렛 스타일의 바울은 아테네 사람들에게 접근했습니다. “예수부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들과의 접촉점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그래야 말을 걸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먼저 그들에게 호의적인 말을 꺼냈습니다. “당신들은 모든 일에 매우 종교적이군요.”라고 말입니다. 이런 접근은 신학과 철학과 예술을 논하는 아테네의 자유민들에게 우선적으로 호감을 갖게 하였습니다. 바울은 아테네의 아레오바고 광장에 서서 일장 연설을 하게 됩니다. 종교에 관한 연설이었습니다. 행전 17:22-31에 연설 전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나는 바울의 이 아테네 연설 가운데 한 구절에 관심을 갖습니다. 이방신들과 기독교의 신(하나님)의 차이에 대한 바울의 연설 한 구절입니다. 25절입니다. “하나님은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니라.” 여기서 바울은 아테네 사람들이 섬기고 예배하는 신과 자신이 섬기고 예배하는 신(하나님)을 구별하는 척도로 “받다”와 “주다”라는 두 동사를 대조적으로 사용합니다. 이방신은 “받는 신”이고, 하나님은 “주는 신”이라는 것입니다.

 

이방 신들(gods)과 하나님(God)

 

이방신들은 인간으로부터 뭔가를 받기를 좋아합니다. 인간은 신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애를 씁니다. 비위를 맞추지 않으면 어떤 불행이나 재앙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신들의 식욕을 채워주려고 제사음식을 바치기도 합니다. 예절을 중요시 하는 신들에게는 절도 있고 품격 있는 제사행위로 기쁘게 합니다. 도덕을 중시하는 신들은 인간의 착한 행실에 흡족해 합니다. 신들의 성미와 비위를 잘 파악하는 일이 행복한 삶으로 가는 길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온갖 아양을 다 떨면서 신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합니다. 신들의 비위를 건드리면 큰 일 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신들의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인간은 부지런히 바쳐야 합니다. 신들은 인간으로부터 받습니다. 인간은 신들에게 줍니다. 이것이 일반 종교들의 특징입니다. 이방신들은 받는 신들입니다!

 

한편, 기독교의 하나님은 인간에게 뭔가를 주기를 좋아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비위를 맞추려는 온갖 몸놀림을 가엾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으로부터 뭔가를 받아내려고 협박을 하지도 않습니다. 아양 떨며 잘 보이려고 애를 쓴다고 해서 높은 점수를 주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은 뇌물성 예물을 혐오하십니다. 종교적 달리기를 하지 말라 하십니다. 착한 행실로 하나님의 눈도장을 받으려하는 모든 노력에 대해 “그러지 말라!”고 엄히 경고도 하십니다. 심지어 열정적인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애를 쓰지도 말라 하십니다. 뭔가 부족하여 사람으로부터 받으려는 신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받는 분이 아니라 주시는 분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을 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은 구원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마저도 내어 주십니다. 주시기를 아주 좋아하십니다. 하나님은 주시는 신입니다!

 

이것만 제대로 음미한다면 우리의 신앙의 모습을 재정립하여야 할지도 모릅니다. 종교개혁이전의 신앙은 이방신들을 섬기듯이 신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애를 쓰고 노력하는 신앙이었지만 종교개혁이후의 신앙은 하나님께서 먼저 은혜를 우리에게 주시고 우리는 그것을 감사히 받는 신앙입니다. 당신은 받는 신을 섬기고 계십니까? 아니면 주시는 신을 섬기고 계십니까?

 

Grinnell Hike, Glacier National Park, MO

Grinnell Hike, Glacier National Park.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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