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신 비”

St. John Chrysostom

번역: 류호준 목사

 

 

[아래는 초기 기독교의 교부이며 콘스탄틴노플의 대주교였던 성 요한 크리소스톰(c.349–407)의 글 가운데 성탄의 신비를 번역한 것입니다. 출처는 Watch For the Light: Readings for Advent and Christmas (Plough Publishing House: Walden, New York, 2001), 225-231]

 

*****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누가 2:13-14)

 

 

나는 새롭고 경이로운 신비를 봅니다. 목자들의 노래에 귀를 기울입니다. 부드러운 멜로디가 아니라 천상의 고양된 찬미를 장엄하게 부르는 천사들의 대 합창입니다. 천사들이 노래합니다. 천사장급 천사들은 하모니를 이루어 장엄한 음색을 냅니다. 천사들(그룹 cherubim)은 기쁨으로 가득한 목소리로 노래합니다. 또 다른 천사들(스랍, seraphim)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높입니다. 모두가 하나가 되어 이 거룩한 탄생의 축제를 노래합니다. 이곳 땅위에 내려오신 신이시며 하늘에 계신 인간이신 어린 아기를 보면서 찬양을 드립니다. 위에 계신 그분, 이제는 우리의 구속을 위해 이곳 아래에 거하시는 분, 하나님의 자비로 높이 들리심을 받으셨지만 낮아지셨던 그분이십니다.

 

오늘 베들레헴은 천상의 세상을 닮았습니다. 별들로부터 노래하는 천사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입니다. 태양이 떠있던 자리에 사방으로 그 광채를 펼쳐가는 ‘정의의 태양’(Sun of Justice)이 떠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냐고 묻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뜻하시는 곳이라면 어디서든지 자연의 질서는 순복하기 때문입니다. 그가 뜻하셨기에 그에겐 능력이 있고, 그는 내려오셨고 구속하셨습니다.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오늘 그분이신 그분께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분이신 그분께서 그가 아니었던 것이 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셨던 그분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하나님의 신성으로부터 떠나신 것은 아닙니다. 신성을 조금이라도 상실하지 않고도 그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동시에 신성을 더함으로써 그가 사람에서 하나님이 된 것도 아닙니다. “말씀”(Word)이신 그는 육신이 되셨으며 그의 본성은 변하지 않은 채 그대로입니다.

 

성부는 성령 안에서 아들을 낳았습니다. 동정녀는 오염되지 않은 채로 출산했습니다. 성부는 육신의 제약성들 없이 아들을 낳았습니다. 임신 중에 동정녀가 오염과 부패를 견디어낸 것은 아닙니다. 기적적으로 출산했기 때문입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이 천상의 출생은 어떤 방식으로도 묘사될 수 없습니다. 이 날에 그분께서 우리 가운데 오신 사실을 극한 호기심에 조사하려는 어떤 노력도 허락될 수 없습니다. 나는 처녀가 오늘 출산을 했다는 사실을 압니다. 또한 나는 하나님께서 모든 시간에 앞서 태어났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출생의 방식을 침묵 가운데 숭상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배웠습니다. 또한 이러한 출생은 호기심에 이끌려 수많은 말로서 증명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에 관하여 우리는 자연의 질서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그분의 일하심의 능력 위에 세워져야하기 때문입니다.

 

처녀가 결혼하여 새 생명을 낳게 되는 것은 자연의 순리입니다. 그러나 결혼하지 않은 처녀가 아이를 낳은 후에도 처녀로 있다는 사실은 자연이 신의 의지에 압도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자연의 이치에서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에 대해선 물어볼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자연을 초월하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침묵가운데 그 사실을 존중해야 합니다. 침묵가운데 존중한다는 것은 피해야 할 것이나 지나쳐야할 것으로 간주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침묵가운데 숭배하고 존중한다는 것을 우리의 모든 생각과 사고를 넘어서는 숭고한 그 무엇으로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에게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할까요? 무슨 말을 여러분에게 해야 한단 말입니까? 나는 새로운 생명을 낳은 한 어머니를 보고 있습니다. 나는 태어남으로서 이 빛으로 온 한 아기를 보고 있습니다. 그가 임신된 방식을 나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자연은 극복되고 있으며, 기존의 질서가 갖고 있는 수많은 경계선들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뜻하셨기에 다 허물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 일이 일어나게 된 것은 자연에 따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자연은 잠시 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만이 일하고 있었습니다. 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은혜여! 유일한 독생자, 모든 세대에 앞서신 분, 만져질 수도 없는 분, 인식될 수도 없는 분, 유별하신 분, 몸은 없으신 분, 이 분이 이제 보이기도 하고 썩을 수가 있는 나의 몸을 입으신 것입니다. 무슨 이유 때문에? 우리들 가운데 오심은 그가 우리를 가르치시고, 그분의 손으로 우리를 인도하여 필연적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 인간이 볼 수 없는 것들에 이르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귀보다 눈을 더 신뢰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기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은 의심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사람의 몸으로 임재하여 자신을 보여주신 것은 사람들의 모든 의심들을 제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동정녀로부터 태어나셨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분의 목적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분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산고를 겪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또한 그분이 이루신 것에 그녀가 조금이라도 보탠 것도 없었습니다. 그녀는 그분의 숨겨진 능력을 나타내는 단순한 도구였습니다. 그녀가 가브리엘 천사에게 던진 질문 속에는 이 사실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합니다.” 그때 그가 말했습니다. “성령이 그대에게 임하게 될 것이고 지존하신 분의 능력이 그대를 덮을 것이다.”

 

그녀로부터 나오신 전능하신 분께서 어떤 방식으로 그녀와 함께 계셨는지요? 그분은 공예가이십니다. 적당한 재료를 가지시고 아름다운 그릇을 빚습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는 동정녀의 거룩한 몸과 영혼을 찾아 자신을 위해 살아있는 성전을 지으십니다. 그분이 뜻하신 바대로 거기 동정녀에게서 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그를 세우신 것입니다. 우리의 본성의 비천함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그가 자신을 위해 만드셨던 것을 입으셨다고 해서 그가 낮아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손으로 만든 그 작품이야 말로 영원히 영화롭게 되어야 할 것입니다. 손으로 만든 그 작품이야말로 그 작품을 만든 창조자의 멋진 외투가 된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육신을 만들던 첫 번째 창조 때 진흙이 그분이 손안에 있기 전까지는 사람은 만들어지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이 썩어지는 몸이 영화롭게 되는 것은 그 썩어질 몸이 먼저 그것을 만드신 창조주의 의복이 될 때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내가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까요? 이 출생을 내가 어떻게 여러분에게 묘사할 수 있을까요? 이 경이는 나를 놀라게 할뿐입니다. 옛적부터 계신 분께서 갓난아기가 된 것입니다. 장엄하고 숭고한 천상의 보좌에 앉아계신 분께서 지금 구유에 누워있는 것입니다. 결코 터치 할 수 없는 분, 순결하신 분, 형체가 없는 분이 이제 인간의 손에 닿게 누워있는 것입니다. 죄인들을 묶고 있는 사슬들을 깨뜨리셨던 분께서 이제는 갓난아기의 포대기에 싸여 묶여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수치가 영예가 될 것이며, 오명이 영광으로 옷을 입을 것이며, 절망적인 굴욕은 그분의 선하심을 측정하는 가늠자가 될 것이라고 이미 선포하셨습니다. 이 일을 위해 그분은 나의 육체를 입으셨으니 이것은 내가 그분의 말씀에 합당하게 되기 위해서입니다. 즉 그분은 나의 육체를 가져가심으로써 그분은 내게 그분의 영을 주십니다. 베푸는 그분과 받는 내가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그분은 내가 생명의 보화를 받도록 준비시키는 것입니다. 그분은 내 육체를 받으심으로써 나를 거룩하게 하십니다. 그분은 나에게 그분의 성령을 주십니다.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탄생의 전체 이야기는 진정으로 놀랍고 경이롭습니다. 오늘 옛적 노예생활이 끝이 났고, 마귀가 혼란스러워하게 되었고, 귀신들이 도주하였고, 죽음의 힘이 깨뜨려졌기 때문입니다. 오늘 낙원은 다시 개방되었고, 저주는 떠나갔고, 죄는 제거되었고, 잘못들은 쫓겨나갔고, 진리는 다시 돌아왔고, 친절한 말이 널리 발산되고 사방으로 펴져나가게 되었습니다. 즉 천상의 삶의 방식이 이 땅위에 심겨지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두려움 없이 천사들과 소통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천사들과 대화를 나누게 된 것입니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요?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게 되었단 말인가요? 하나님께서 지금 이 땅 위에 계시고 사람은 하늘에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면에서 모든 것들이 혼합되어 있습니다. 그분은 하늘에서도 충만하게 계시면서도 이 땅위에 오신 것입니다. 하늘에서 온전하신 상태로 계시면서도 그분은 이 땅에서도 전혀 감소되심이 없으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시지만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 되심을 부인하신 것은 아닙니다. 변하지 않는 말씀이시기만 그분은 육체가 되셨습니다. 우리 가운데 거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합니까?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습니까?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뉘인 아기를 보라.” 동정녀이면서 어머니인 마리아가 그 곁에 있었습니다. 아버지라 불리는 요셉도 있었습니다. 그는 남편이라 불렸고 그녀는 아내라 불렸습니다. 이 명칭들은 합법적인 명칭들입니다. 그러나 그 이상의 다른 구속력은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냥 용어들에 대해 말하는 것이지 “실체들”에 대해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제 우리 모두는 혼란으로부터 분명한 길을 만드신 그분께, 즉 그리스도께, 성부에게, 성령에게 모든 찬양을 드리십시다. 지금부터 영원까지.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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