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설교문: “재고조사와 결산”

2017.12.19 17:22

류호준 조회 수:822

“재고조사와 결산”

미가 6:6-8

 

류호준 목사

 

6.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7.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8.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재고조사

 

1980년에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여러 달 동안 슈퍼마켓(super market)에서 일했습니다. 말이 슈퍼마켓이지 약간 규모가 있는 동네 식료품 가게입니다. 집에서 필요한 공산품들로부터 부엌용 세제들, 우유들과 치즈들로부터 각종 채소들, 콜드 샌드위치, 자그마한 주류 섹션, 각종 담배들 - 아마 미국 담배이름을 저보다 더 많이 아시는 분들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당시 수십 가지의 담배 이름(Chesterfield, Camel, Doral, Kent, Kool, Lucky Strike, Marlboro, Maverick, Max, Merit, Misty, More, Newport, Natural American Spirit, Parliament, Salem, True, Vantage, Virginia Slims, Viceroy, Winston) - 각종 와인과 맥주들, Coke, Pepsi, Canadian Ginger Ale, Sprite, 7-Up, Mountain View, Root Beer와 같은 청량음료 등이 있었습니다. 학비를 조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매년 여름 3개월 동안 부지런히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일했습니다. 아침 6시에 가게 문을 열었습니다. 아침 출근하는 손님들을 위해 커피를 내립니다. 점심은 마켓 한쪽에 쭈그리고 앉아 샌드위치와 스프라이트 캔 하나로 때웠습니다. 그래도 돌이켜 보면 가장 행복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몸으로 때우는 시간이었기 때문에 지금처럼 정신적 스트레스는 덜 받았습니다.

 

가끔 주인의 명에 따라 “재고조사”(Inventory management)라는 것을 했습니다. “재고 조사”는 사업에서 사용하는 비즈니스 용어로, 보유하고 있는 물품들의 양과 위치들을 구체적으로 점검하여 앞으로의 상황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일입니다. 재고조사를 해야 하는 이유들로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따라서 물량들을 “제 때”에 사용하도록 비축할 뿐 아니라, 특별한 절기나 계절에 더 많은 공급이 필요할 물품들을 특별하게 관리하고, 앞으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는 불확실성에 대비하는 것입니다. 때론 어떤 특정한 상품들이 계절에 따라 세월에 따라 가치가 상승하거나 하락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에라도 재고조사는 반드시 시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재고조사는 보통 손님이 없는 밤늦게 합니다. 매장뿐 아니라 주로 매장 뒤쪽에 있는 창고에 들어가서 하는 일이었습니다. 재고조사를 위해 창고 구석구석을 뒤지게 됩니다. 근데 재고조사하기도 전에 먼저 해야 할 일들이 눈에 띱니다. 창고구석에서 발견되는 쥐똥들, 바퀴벌레들, 썩은 과일들, 부패한 채소들, 찌그러진 담배 상자들, 터진 청량음료 캔에서 흘러나온 액체들 때문에 끈적거리는 물품들, 때론 훔쳐가려고 종업원들이 몰래 숨겨 두었던 물건들.

 

청소하는 일이 우선입니다. 그 후에 어느 정도 창고를 정리정돈 합니다. 비로소 재고조사가 시작됩니다. 물품들을 종류별로 분류하여 가지런히 놓는 일, 남아있는 물품들의 수량들을 기록합니다. 전체적으로 어느 품목이 빠졌는지, 더 주문해야할 것이 무엇인지, 물론 앞으로 어떤 특수가 있을 것이지를 예상하고 주문하는 일입니다.

 

********

 

이제 한해가 저물어갑니다. 적어도 일 년에 한두 번 정도는 우리도 신앙적인 재고조사가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 인생 최종 결산하는 하나님의 날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영적 훈련으로 영적 재고조사를 해야 할 것입니다.

 

영적 재고조사는 우리에게 어떤 영적 자원들이 있는지(예, 기도생활, 성경읽기, 구제와 봉사생활) 얼마나 남아 있는지, 어떤 자원들이 보충되어야 하는지를 살피는 것입니다. 그렇기 위해 먼저 마음의 창고를 깨끗하게 청소하는 일이 우선되어야합니다. 우리의 마음 안에 어떤 것들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썩어 있는지, 냄새가 나는 곳이 어디인지, 끈적거리는 것들이 무엇인지. 먼지가 쌓여 작동이 되지 않는 선들은 어디에 있는지, 신앙생활의 불균형은 없는지, 영적음식을 편식하는 것은 아닌지, 먹기만 하고 운동을 하지 않아서 비만하지는 않는지, 좋지 않은 것을 먹어서 영적으로 허약해졌거나 빈혈현상은 없는지, 영적 근육들이 없어서 비실 비실대는 것은 아닌지, 영적 면역력들이 급속히 떨어져서 조그마한 시험이나 유혹에도 쉽게 넘어가는지, 혹시 토피(TOFI)크리스천은 아닌지? [Thin-Outside-Fat-Inside. 외형적으로는 날씬한데, 내장은 비만인 상태를 토피라고 합니다.] 즉 겉으로는 겸손하고 경건하고 신앙적인 사람 같은데, 실제로 그 사람의 속을 들여다보면 온갖 욕심으로 비만해진 사람입니다.

 

신앙의 적폐목록

 

요즘 적폐(積幣)라는 말을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적폐는 쌓인 폐단들이라는 뜻입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쌓인 폐단입니다. 우리 안에 축적된 영적 더러운 폐단들은 영적 뇌신경을 마비시켜 영적 중풍에 걸려 똑바로 걷지 못하게 할뿐 아니라 나중엔 목숨마저 잃게 됩니다.

 

제가 작성한 신앙적 적폐들의 목록들을 들어 보시겠습니까? 개인적 적폐와 공동체의 적폐들입니다. 들으면서 동의하시거든, 혹은 자신에게 맞는 적폐 이름이거든 속으로 “아멘”해 보십시오.

 

“신앙의 개인화, 자기중심적 신앙, 자기만족적 믿음과 자기도취적 신앙, 종교적 열정의 강조, 감정 중심의 은혜론, 구원의 개인화와 믿음의 공로사상, 물신숭배의 저변 확대, 건강과 번영의 신학, 기복적 신앙형태, 가벼워진 예배, 영혼 없는 예배, 편의주의, 온갖 형태의 우상숭배, 자기-의에 가득한 원리주의자들,

 

도덕성의 저하, 사회로부터 지탄받는 도덕성, 고장이 난 도덕적 센서, 신앙과 생활의 이원론적 사고, 신앙과 윤리의 결별과 괴리, 교회 내에서의 유교적 관료주의, 성경적 원리보단 전통적 습관과 관행의 우선시,

 

개 교회 성장주의, 영혼 없는 전통주의의 고수, 교회간의 양극화 현상, 구원의 사회성에 대한 무지와 외면, 목회자 중심의 교회사역, 제왕적 권위주의, 사회적 이슈에 대한 외면, 일상 속의 신앙에 대한 무관심, 공교회성의 약화와 공동체성의 몰락,

 

교단내의 소모적 주도권 싸움, 무차별적 고발고소, 치졸한 교권 싸움, 비효율적이고 교단 운영, 상아탑에 머무는 신학교육,

 

성경에 대한 무지와 문맹, 실천적 신앙인의 희소성, 삶으로 살아내는 일상 신학의 부재, 값싼 은혜, 사라진 제자도 등등.”

 

실천적 무신론자

 

이런 것들의 밑바탕에는 “실천적 무신론자”들이 있습니다. 실천적 무신론자들은 이론적 무신론자들과 다른 용어입니다. 이론적 무신론자들은 신의 존재를 도통 믿지 않는 자들입니다. 세상은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이 아니라 우연에 의해 존재하게 된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반면에 실천적 무신론자는 하나님의 실질적 다스림에 순종하려 들지 않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시편 14장은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1절)란 구절로 시작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어리석은 자, 곧 “하나님은 없다!”라고 하는 자들이 실천적 무신론자들입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을 가볍게 여기고, 하나님의 말은 수없이 인용하고 설교하고 말하면서도 실제의 삶에서는 하나님의 자리가 없습니다.

 

집에 식구들이 밥을 먹을 때 집의 가장은 어디에 앉습니까? 가장자리죠! 요즈음 신앙의 공동체에서도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입으로는 가장자리요 하면서, 실제로는 가장자리로 밀어내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이 가장이십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십니다.” “하나님이 왕이십니다.” 이게 하나님의 언약백성들의 고백이 아닙니까? 즉 하나님의 온전한 다스림에 복종하겠다고 고백하는 것이 신앙의 핵심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성경이 가르치는 가장 중요한 가르침을 상기해봅시다. 세례요한이 사역을 시작하면서 던진 일성,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어 외치신 첫 마디를 기억해 보자는 것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나라가 지금 이 세상 속으로 진군하여 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세상입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입니다. 죄악으로 물든 세상입니다.

 

이 세상은 어떤 세상입니까? 하나님이 그토록 사랑하기 때문에 자기의 독생자 예수를 보내어 죽게 하여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시는 세상 말입니다. 불행하게도 이 세상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인정하지 않는 세상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우습게 여기는 세상입니다. 하나님이란 분이 계시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세상입니다.

 

따라서 자기들 마음대로 하는 세상입니다. 돈으로 사는 세상입니다. 온갖 힘(力)으로 – 학력으로, 금력으로, 권력으로, 직위가 높다고, 갑질하는 세상입니다. 억울한 일들이 많은 세상입니다. 정의와 공의가 실종된 세상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정의와 공의가 기초가 되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통치)는 우리 신앙인의 삶 전체를 대상으로 합니다. 단순히 신앙의 영역에만 국한 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불러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 그리스도의 제자, 왕 같은 제사장적 역할을 맡기신 것은 우리의 가정생활, 직장생활, 학교생활, 각종 인간관계, 심지어 정치 경제 문화 사회 교육 등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심, 하나님의 정의로우심, 하나님의 공의로우심,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적극적으로 반영되도록 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편향된 종교인들

 

오늘의 본문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 하나님을 믿고 그의 지시를 따르겠다고 하는 자, 아주 열정적인 신자들, 교회에 빠지지 않고 열심히 기도하는 자들, 헌금도 잘하는 사람들, 명색이 아주 훌륭한 종교 신앙인들을, 말을 할 때마다 “하나님”, “믿음”, “성령 충만”, “기도” “봉사” “충성”과 같은 단어를 접속사로 사용할 정도로 헌신적인 사람들에게 날리는 돌직구입니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갈까?

내가 무엇을 가지고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드릴까?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자식)를 드릴까?

 

이게 누구의 말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의 말입니다. 하나님께 나와 예배드리는 사람들이 한 말입니다. 열정적인 신앙인들입니다. 제물로써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품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드리는 예물은 사실상 뇌물성 예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사려는 예물이었습니다. 그들의 열정도, 기도도, 찬송도, 심지어 금식도 뇌물성 예물드림이었습니다. 실제의 삶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지 않으면서 신앙적 열정으로 때우려 드는 신앙이었습니다. 예언자 미가는 이것을 신랄하게 비난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일상의 삶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무엇을 요구하십니까? 기도생활 많이 해라, 헌금 생활 잘하라, 열정적으로 찬송해라, 입에서 찬송이 끊이지 않게 하라. 성경을 많이 읽으라. 교회 일에 열정을 내라. 교회 결석하지 말라, 예배를 중하게 여기라, 교회 생활 잘하라, 신앙생활 잘하라. 뭐 이런 것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지금 말씀드린 것들은 사실상 기본입니다. 이런 것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춘다면 그건 자기과시나 자기만족을 위한, 혹은 조직을 위한 충성일지는 몰라도 신앙의 본질, 하나님의 원하시고 요구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세 가지 요구 사항들

 

하나님은 무엇을 자기 백성에게 요구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언약백성이라면 – 여러분은 세례를 통해 하나님의 언약백성이 되었습니다. -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이 자기의 언약백성들에게(공동체) 요구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들어보십시오.

 

“사람아, 하나님께서 너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지 아느냐? 그가 너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오직 세 가지니, 첫째는 정의롭게 행동하는 것이고, 둘째는 친절과 배려와 긍휼의 신실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것이고, 셋째는 겸손하게(조심스럽게, 지혜롭게) 네 하나님과 함께 인생길을 걸어가는 것이다.”(미가 6:8)

 

이 구절은 구약성경 가운데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설정을 분명하고 명확하게 정의 내리는, 가장 깊게 뇌리에 남는 구절입니다. 미가 선지자는 그의 동시대 선지자들인 아모스와 호세아와 이사야의 메시지들을 요약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좋습니다.

            · 아모스에게는 “정의롭게 행동하라!”(암 5:24)

                    오직 정의를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 호세아로부터는 “신실함을 실천하라!”(호 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않으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인정)을 원하노라

           · 이사야로부터는 “겸손하게 하나님과 함께 걸으라!”(사29:19)

                    겸손한 자에게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쁨이 더하겠고

                    가난한 자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라

 

하나님께서 그의 언약백성들에게 요구하시는 세 가지 순종 행위입니다(Justice, Mercy, Faithfulness). 그런데 이 세 가지는 모두 일상의 삶과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요구사항들이 적용되는 시간과 장소는 일요일보다는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 교회에서보다는 가정과 직장과 학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붙어살기

 

이렇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어사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여러분과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우리 학교의 교훈으로도 사용되는 말씀입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1-32)

 

달리 번역해 들려드리겠습니다.

 

너희가 내 가르침을 꼭 붙잡는다면,

너희가 내 가르침 안으로 이사해 들어와서 그 안에 거주한다면,

너희는 정말로 내 제자들이다.

그러면 너희는 진리(진실)를 알게 될 것이고,

그 진리(진실)가 너희를 자유인이 되게 할 것이다.

 

미가의 말씀에 비추어 요한복음에서 말하는 예수의 가르침을 붙잡고 산다는 뜻은 이렇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붙잡고 있다는 것은 궁핍함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넉넉하게 베푼다는 뜻입니다. 또한 관대하게 베풀면서도 자기가 그렇게 했다는 사실을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붙잡고 있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실수와 잘못과 약점을 보면서도 그것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것을 두고두고 티내는 어떤 사람과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붙잡고 있다는 것은 음탕한 눈으로 다른 사람을 보느니 차라리 오른쪽 눈을 뽑아낸다는 뜻입니다. 누군가를 음탕한 눈으로 쳐다본 그 사람은 이미 마음으로 간음을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붙잡고 있다는 것은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기 전에 먼저 껄끄러운 사람이나 보고 싶지 않는 사람과 화해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붙잡고 있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잘못과 죄를 용서한다는 뜻입니다.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여러분의 잘못과 죄를 용서하지 않으심을 알고, 먼저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붙잡고 있다는 것은 여러분의 원수를 사랑하고 그를 위해 기도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을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한다면, 여러분에게 돌아갈 공로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것은 이방인들도 다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붙잡고 있다는 것은 여러분의 보화와 재물을 이 땅에 쌓지 않고 하늘에 쌓는다는 뜻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러분의 재물이 있는 바로 그곳에 여러분의 마음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붙잡고 있다는 것은 공중의 새와 들판의 야생화를 삶의 모델로 삼고, 내일을 걱정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너희가 내 가르침을 꼭 붙잡는다면,

너희가 내 가르침 안으로 이사해 들어와서 그 안에 거주한다면,

너희는 정말로 내 제자들이다.

그러면 너희는 진리를 알게 될 것이고,

그 진리가 너희를 자유인이 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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