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예수님을 따르는 삶: 마가복음서 묵상]

                                                                           저자 서문

“복음서”란 좋은 소식을 담고 있는 책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최초의 복음서로 알려진 마가복음서는 겉으로 보기에는 그리 좋은 소식을 담고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네 복음서 가운데 가장 긴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기사(passion narrative)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난'(受難)과 ‘복음’(福音)은 함께 하기에는 매우 어색한 동반자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마가복음서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사역에 대해 오해하기 일쑤였습니다. 마가복음서 연구에서 빠질 수 없는 소위 “메시아의 비밀”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해하거나 몰이해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예수가 누구이신지, 왜 이 세상에 오셨는지, 그분의 사명이 무엇인지에 관해 반복적으로 오해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에 대한 오해에서 제외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의 육신의 부모나 형제나 친족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예수가 미쳤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붙잡으러 오기도 했습니다(3:21). 예루살렘의 성경학자들인 서기관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구약성경을 그렇게도 많이 읽고 연구하였지만 구약에서 수없이 말씀하고 가리키고 있는 메시아가 정작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예수가 귀신에 지폈다고 비난하기 일쑤였습니다(3:22). 그뿐 아니라 그를 따라 다니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의 맏형격인 베드로의 경우를 보면 이 점이 분명해집니다.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으로 가던 도중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신 일이 있었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메시아)이십니다”(8:29)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생각했던 그리스도(메시아)는 전혀 다른 메시아였습니다. 그 대답이 아직도 베드로의 입 주위에서 맴돌고 있을 때. 예수님은 자기가 지금 예루살렘으로 죽으러 올라가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그럴 수는 없다고 항변하면서 가로 막아섰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베드로를 엄하게 꾸짖으시면서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보아도 제자 중에 누구도 예수가 누구이신지, 어떤 일을 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아마 이것이 마가복음서의 독자들인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지는 질문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 정말로 아십니까?”

마가복음서는 이 질문, 즉 “예수는 누구이신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점진적으로 드러냅니다. 마가는 특별히 세 가지 중요한 사건을 중심으로 그의 독자들에게 예수의 정체성에 관한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반면에 마가복음서 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분의 정체성에 대해서 반복적으로 눈이 멀고 있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예수의 정체성과 관련이 있는 마가복음서의 세 가지 이정표는 1장과 9장과 15장입니다. 1장은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신 사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요단강에서 세례자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위로 올라오실 때에 하늘에서 소리가나서 말씀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1:11)고 하였습니다. 예수의 정체성, 즉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하나님께서 직접 그의 아들인 예수에게 알리신 것입니다. 예수는 그의 지상 사역 내내 이 사실을 마음 속 깊이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던 사람은 예수 자신 외에 아무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1:1)는 마가복음서의 서두와 예수의 수세사건을 읽고 있는 마가복음서의 독자들은(여러분과 나를 포함하여) 이미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알고 마가복음서를 읽고 있을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여러분과 나는 예수님의 정체성과 그분의 사역을 올바로 이해함에 대해 피할 수 없는 책임이 주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이렇게 까지 예수의 정체성을 마가복음의 초두에서부터 알려주는데도 그를 몰이해하거나 그를 따르지 않는다면 그 책임이 얼마나 클 것인가를 두려운 마음으로 기억하라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정체에 관한 두 번째 사건은 “예수님의 홀연한 변화”를 기록하고 있는 9장에 있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그곳에서 홀연히 변형이 되시더니 엘리야와 모세가 나타나 한참 동안 그들과 말씀을 나누게 됩니다. 얼마 후 제자들은 높은 산 구름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9:7)는 소리였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정체를 알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 사실은 바로 이 사건에 앞서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주는 그리스도시라”고 고백하면서도 곧 바로 그가 “사탄아 물러가라”는 예수님의 무서운 책망을 듣게 되었는지를 이해하라고 요청합니다. 그 때까지도 베드로는 예수가 누구인지 몰랐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정체에 관한 마지막 계시는 놀랍게도 마가복음의 끝부분 십자가 주변에서 이뤄집니다. 더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한 발표가 더 이상 하늘의 하나님이나(1장) 구름 속의 하나님(9장)의 목소리가 아니라 이방인인 한 로마군 장교의 입을 통해서라는 사실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면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서 그는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15:39)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요약하자면, 예수님의 정체성에 관한 소식은 처음에는 하늘에서, 그 다음에는 변화산의 구름 속에서, 마지막으로 십자가가 서있는 땅에서 전파되었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예수님의 정체성에 관한 소식은 처음에는 예수님에게, 그 다음에는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이방인에게까지 알려지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 가운데 예수님의 정체성에 관한 사람들의 오해가 자리 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가복음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이 보내신 분이시며, 참 하나님 자신이시라는 것을 가르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끝마치는 것은 아닙니다. 만일 여기에 마가복음의 목적이 있다면 마가복음서는 교리서는 될 수 있어도 복음서는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가복음서는 어떤 의미에서 우리에게 좋은 소식을 알려주는 복음서인가요? 참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고난을 받고 죽기까지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출발입니다.

마가복음은 로마의 황제 네로에 의해 억울한 누명을 쓰고 희생양이 되어 무수한 고난과 죽음에 이르게 된 로마의 소수 기독교인들을 위해 저술된 책입니다. 주후 64년경 로마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대형 화재가 발생하였습니다. 로마시의 상당 지역을 삼켜버린 대화재였습니다. 시중에는 화재가 로마 황제 네로 자신의 짓이라는 소문이 떠돌기 시작하였습니다. 로마시민들은 술렁거리기 시작했고 민중 봉기의 조짐마저 보였습니다. 겁에 질린 네로는 희생양이 필요하였고 불행하게도 기독교인들이 그 희생양으로 지목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기독교인들을 향한 무서운 박해와 피비린내 나는 숙청이 시작된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의 풀무불 속에 던져진 것입니다. 그들이 어떻게 로마의 칼과 창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그들이 어떻게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지켜낼 수 있었겠습니까? 고난과 박해의 날들은 계속되었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점점 의심과 배도의 깊은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되었으며 신앙의 극대점인 인고(忍苦)의 힘을 잃어가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런 시기에 마가복음서라는 자그만 책이 로마의 교인들 사이에 회람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자그마한 책은 매우 아이러니하면서도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 문구로 시작되는 작지만 힘 있는 책이 마가복음서였습니다. 그 메시지는 분명했습니다.
   ․ “십자가는 죽음이 아니라 생명으로 가는 길입니다!”
   ․ “당신들은 당신들의 주님보다 위대하지 않지 않습니다!”
   ․ “그렇다면 주님이 가신 길을 제자들도 따라 가야하지 않겠습니까?”
   ․ “당신들이 당하는 고난은 당신들 혼자 당하는 고난이 아닙니다!”
   ․ “그 고난은 이미 당신들의 주님께서 걸어가셨던 길이었습니다!”
   ․ “당신들이 겪고 있는 고난 길에 당신들의 주님이 동행 하고 계십니다!”
   ․ “주님께서 슬픔의 길, 고난의 길을 여러분과 함께 걷고 계십니다!”
   ․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분은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 “성도들이여, 힘을 내십시오!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마십시오!”

이것이 복음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처럼 복음은 언제나 우리에게 힘과 용기를 줍니다. 이 복음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이 복음을 전파하십시오.  


본서에 실린 글들은 내가 시무하는 지역 교회에서 설교했던 내용들을 다듬어서 좀 더 많은 독자들을 위해 신학적 에세이 형식으로 갈아입힌 것들입니다.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 경청했던 교우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수십 년 전 신학교를 다니던 시절 은퇴를 앞둔 노 스승의 충고가 지금도 귓가에 맴돕니다. 설교하려는 성경본문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존중하고, 그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서게 되는 강단을 가볍게 생각지 말며 생명의 양식을 얻기 위해 회중석에 앉아 있는 성도들을 마음으로 존경하라는 가르침이었습니다. 목회자로서 설교자로서 나는 지난 20여년 이상을 설교단에 서왔습니다. 뒤돌아보니 매 주일 강단에 서는 일이 얼마나 두렵고 떨리는 사역인지를 조금씩 알게 되는 나이에 이르렀습니다.

이 자그마한 책이 나오기까지 도움과 격려를 아끼지 않은 여러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먼저 나의 저술활동에 정신적․기술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이레서원의 여러분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또한 50대 중반을 넘어서는 나에게 아직까지도 “요즈음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 것 같구나”라고 부드러운 말씀으로 회초리를 드시면서도 “아니야, 뭐니 뭐니 해도 건강이 최고야”하시면서 아들의 건강을 채근하시는 노모께 감사를 드립니다. 끝으로 지난 일 년 이상을 암과의 버거운 전쟁을 치루면서도 믿음으로 잘 견디어내는 제수(弟嫂) 홍경주 교수와 그녀를 위해 눈물겨운 간병을 하고 있는 그녀의 남편이며 나의 사랑하는 동생 류호영 목사를 기억하며 이 책을 그들에게 헌정합니다. 특별히 마가복음서를 전공한 신약학 교수 류호영 박사에게 마가복음서를 다룬 이 책을 헌정하는 일이 오늘따라 유별스럽게 보입니다. 그가 쓰고 있는 마가복음 주석이 하루 속히 완성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지난 일 년여 동안 우리 가족 식구들은 삶과 죽음과 고난의 모순적 의미를 터득하려고 무진히 애써왔습니다. 그리고 그런 구도(求道)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루 속히 병석에서 일어나 그녀가 그렇게 좋아하는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의 시들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기를 소원한다. “아버지시여 우리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소서. 아멘”

2007년 5월 성령강림절에
류호준 목사

추신: 홍경주 교수(숙대 영문학과)는 이 서문을 쓴지 한 달 후에 소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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