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목회단상: "수난주간 토요일"유감

2007.04.07 18:41

류호준 조회 수:7136

                                                            “수난주간 토요일” 유감

                                                                   I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 수난 주간에 함께 붙어있는 영원한 삼총사 삼일. 가장 안정적인 상태의 삼위 일체적으로 놓여있는 삼일. 그러나 저 유명한 두 날 사이에 끼어있는 토요일은 별반 각광을 받지 못한다. 그래서 지루하고 긴 토요일이라 부른다. 마치 어제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았고, 내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날, 그저 일상적인 일들로 가득한 재미없는 날이 토요일이다. 이것이 최초의 수난 주간에 외롭게 서있던 토요일의 모습이다.
                    
                                                                   II
사순절(四旬節, Lent)의 절정은 종려주일(Palm Sunday)로부터 시작되는 수난주간(受難, Passion Week)이다. 그리고 수난주간의 절정은 성금요일(Good Friday)이다.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날이다.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이라! 그래서 성금요일은 엄청난 일이 발생한 날이다. 온 세상이 떠들썩하고 뒤집어진 날이다. 하나님이 십자가에 죽는 날이라! 태고로부터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이 되려고 했다. 사람이 하나님처럼 되려는 욕망은 에덴동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의 집요한 노력은 마침내 하나님이 인간이 됨으로써 반전(反轉)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인간됨의 궁극적 상황인 죽음에까지 내려간다.

                                                                    III
좌우간 예루살렘이 소동하고, 온 땅이 진동한 성금요일도 황혼녘이 찾아오자 사방이 조용해졌다. 분주한 병정들의 발걸음도 자취를 감추고, “그를 죽여라!”하며 독기로 가득 차 외쳐댔던 군중들의 소리들도 믿기지 않을 만큼 조용해졌다. 긴 어둠 자락이 영문 밖 골고다 언덕에 찾아왔을 때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 저녁준비에 분주하였다. 그들은 오늘 일어났던 일들을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망각의 늪 속으로 서서히 빠져들고 있었다. 그래서 성금요일의 저녁은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은 듯이 적막하기만 했다. 그리고 밤이 찾아들었다.

                                                                    IV
밤이 끝나고 토요일 아침이 밝아왔지만 어제 일어났던 사건을 아무도 기억하지 않은 듯, 예루살렘의 사람들은 다시금 일상의 분주함으로 돌아왔다. 밀렸던 집안일을 하고, 부족한 잠을 채우기 위해 침대에 누워있었다. 애들은 토요일 오락 TV 프로그램을 보고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었다. 창 너머로 봄 가족나들이를 위해 채비를 서두르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도 했다. 어제 있었던 엄청난 일, 하나님이 십자가에서 처참하게 처형당하는 일은 나사렛 촌 출신의 한 젊은이의 광기의 측은한 결말 정도로 치부되었다. 어제 일을 기억하는 사람은 예루살렘에 아무도 없었다. "business as usual!" 토요일은 항상 그랬던 것처럼 그렇게 돌아간 하루였다.

                                                                    V
오늘은 토요일이다. 그러나 내일은 일요일이다. 그날이 인류역사에 가장 중요한 날이 될 것이라고 꿈에도 그려본 사람은 예루살렘에 아무도 없었다. 물론 그려볼 수 없었겠지! 하나님의 기적과 같은 선물이 아니면 가능하지도 않는 부활의 날을 어찌 죽을 수밖에 없는 흙덩어리 인생(mortal being)이 알리요! 그날이 어떤 날인가?
    - 사람에게 죽음이 마지막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복음의 날,
    - 죽음 너머에 새로운 삶과 생명이 있다고 선언하는 날,
    - 날카로운 칼날처럼 인간의 역사 속으로 파 헤집고 들어온 저 생(生)의 날,
    - 인간의 두 눈과 귀로는 듣지도 보지도 못할 피안의 세계가 이 생(生)안으로 돌입하던 날,
    - 그 부활의 날이 최초의 일요일이 아니던가?

                                                                    VI
그러나 토요일의 사람들은 그저 지루하고 반복되는 일상의 무료함속에 갇혀 어제와 내일의 경이를 기억하지도 기대하지도 못한다. 아니 성금요일과 부활의 일요일 사이에 갇혀 살고 있다고 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리라. 길고도 지루한 토요일에 사람들은 경이와 경탄의 의미를 망각한 채 정말로 재미없게 살아간다. 그러나 ‘기억’과 ‘기대’ 사이를 오가며 조용한 흥분으로 살아가야하는 '성만찬 공동체'(sacramental community)가 진정한 토요일의 그리스도인들이다. ‘이미’(already)와 '아직'(not yet) 사이에서 오늘 토요일을 의미로 충만하게 사는 종말론적 그리스도인과 그들의 교회들, 이것이 토요일에 대한 나의 이중적 유감이다. 토요일 유감!

                                          2007년 4월 7일(토) ― 성금요일과 부활절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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