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서 문

* 필자의 신간 [정의와 평화가 포옹할 때까지]에 실린 '서문'을 독자들과 함께 나눈다. *


1960년대 초등학교 시절 매년 여름 방학이 되면 아버지는 한 달간 휴가를 내어 온 가족을 데리고 지금의 북한산인 삼각산의 제일 기도원으로 들어갔다. 청교도적 독실한 신앙을 가지신 아버지는 가족의 영적 재충전과 신앙훈련을 위해 본인의 직업인 시외버스 운전사직을 잠시 뒤로하고 산속으로 가족을 이끌고 휴가를 떠나신 것이다. 전적으로 아버지의 의도에 따라 기도원에 이끌려온 우리 네 남매는 여름 내내 계속되는 각종 부흥회와 사경회에 참석해야만 하는 무거운 의무가 주어졌다. 물론 집회는 하루에도 여러 번이었다. 새벽 집회, 오전 성경공부, 간혹 오후 집회도 있었고 마지막으로 밤 집회가 있었다.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철야 산기도 훈련도 받았다. 저녁집회 후에 손전등을 들고 산 정상 쪽으로 올라가다가 앉아 기도하기에 적당한 널찍한 바위가 보이면 한 사람씩 여기저기 앉아 밤이 맞도록 기도하는 훈련이었다. 어린아이들에게는 보통 끔찍한 경건훈련이 아니었다. 기도하러 눈을 감고 있으면 뒤에서 누군가 조용히 서 있는 듯한 소름끼치는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렇게 우리는 기도훈련을 받았다.

낮 집회와 밤 집회에는 당시 정상급 부흥사 목사님들이 총 출동하였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나신 신현균 목사님의 기차 소리 흉내로 시작되는 흥겨운 천막 부흥회는 종교적 별천지처럼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일사불란하게 박수를 치며 찬송을 부르며, 소리 높여 ‘주여!“라 외치면서 열렬하게 시작하는 통성기도 등은 1960년대의 산상집회의 전형이었다. 물론 그것이 여름철 산상 부흥집회의 전부는 아니었다. 그 다음 주에 시작되는 사경회는 신비한 고요와 적막감이 돌 정도였다. 당시 서울 명륜 교회의 담임목회자였던 이병규 목사님의 사경회는 매우 인상적이었고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참석교인들은 대부분 검정색 치마저고리를 입은 여신자들과 머리를 짧게 깍은 남자 신자들이 대부분이었고, 대략 2시간씩 계속되는 성경강해를 경청하며 공책에 무엇인가 빽빽하게 적고 있었다. 지금도 내 서재엔 돌아가신 선친께서 그 당시 집회 때 설교말씀을 적어놓은 까만 비닐 공책이 꽂혀있다. 이런 식으로 나는 어린 시절부터 전술한 목사님들이나 한경직, 이성봉, 김창인, 최훈, 홍근섭 목사님 등과 같은 기라성 같은 당대의 목회자 부흥사들, 그리고 이제는 이름마저 까맣게 잊어버린 수많은 부흥사들과 목회자들의 설교를 무한정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그러나 다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그 당시 전문 부흥사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이 공통점 때문에 내가 성경을 가르치고 설교하는 목사와 학자가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부모에 이끌려 참석한 수많은 집회와 설교 시간은 내게 많은 은혜를 주기도 하였지만 동시에 한숨과 아쉬움 그리고 간혹 남모를 분노를 끓어오르게 하였다. 말도 되지 않는 성격해석과 설교 때문이었다. 성경을 읽어 놓고는 본문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잡담이나 장황한 사족을 달거나, 아니면 청중들의 감정에 호소하여 종교적 경험이나 감정적 황홀경과 같은 어떤 특정한 분위기로 몰아가는 모습이 어린 눈에도 뻔히 보였기 때문이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전혀 말도 되지 않는 방식으로 성경본문을 해석하는 일이었다. 문법을 조금만 제대로 알아도 성경본문의 의미를 그렇게 엉뚱한 방식으로 해석하지는 않았을 터인데 하는 아쉬움이 내게는 분노로 익어가고 있었다. 우리가 어린 시절, 초등학교 선생님의 국어 숙제가 주로 무엇이었는지 기억이 난다. 준말과 본딧말 알아오기, 단어 뜻풀이, 문단나누기, 글의 주제 파악과 같은 것이었다.

그런 경험 때문인지는 몰라도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와 인도로 나는 성경을 읽고 해석하고 설교하는 일을 최상의 즐거움으로 여기게 된 사람이다. 성경을 보고, 성경을 읽고, 그 의미를 파악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거나 말해주는 것을 삶의 보람으로 여기는 사람이다. 그래서 누군가 성경을 풀어달라고 하면 밤이 맞도록 앉아서 성경 이야기나 신학 이야기하기를 즐기는 사람이다. 여기에 실린 글도 대부분 이런 마음에서 나온 것들이다.

본서 안에 실린 글들은 지난 십여 년 동안 필자가 여기저기에 써놓은 글들 중 “성경과 교회”라는 제목에 부합한 것을 선별하여 모은 것이다. 실린 글 중에 어떤 것은 학술적 논문들이고 다른 글들은 좀 더 대중적인 글들이다. 그러나 이 글들은 모두 성경 사랑과 성경 해석의 중요성, 그리고 교회가 교회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위의 개인적 이야기에서 말했듯이 성경을 조심스럽게 귀하게 다루고 싶은 간절한 소망이 있었기에 나는 지금 성경학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부르심에 대한 충실한 대답은 여전히 성경을 귀하게 여기고 올바로 해석하여, 드러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려는 의지라고 생각한다. 성경에 의해 형성되는 삶이 진정한 제자도가 아닌가 싶다.

본서는 2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 “성경과 신학”, “교회와 목회”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1부에서는 약간 학문적이며 전문적인 글들을 실었고 2부에서는 일상의 일들을 신앙적 관점에서 바라본 내용들을 담고 있다. 나는 성경은 신학의 기초가 되고, 올바른 신학은 올바른 성경 해석위에 선다고 믿는다. 올바른 신학은 반드시 삶 속에 구현되어야 하며, 삶은 신학의 반영이어야 한다. 본서에 실린 대부분의 글들은 이러한 생각을 반영하고 있다.

책 제목은 본서에 실린 글의 제목을 그대로 따왔다. 그러나 이 제목은 저명한 기독교 철학자 니콜라스 월터스톨프(Nicholas Wolterstorff)가 1981년 네덜란드 자유대학교에서 행한 카이퍼 강연 제목이기도하며 후에 어드만 출판사에서 동일한 이름으로 출판된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세상을 교정하고 새롭게 만들어가는 기독교를 주창하는 니콜라스 월터스톨프 박사는 전형적인 신(新)-칼빈주의(Neo-Calvinism) 철학자로서 문화변혁에 관심이 많은 실천적 철학자이다. 그의 주된 논제는 굴절되고 왜곡되고 오염된 이 세상에 하나님의 정의(正義)가 편만하게 만들어야하며, 정의의 실현은 종국적으로 하나님의 샬롬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정와 평화가 포옹할 날을 간절히 소망하며 우리는 이 세상에서 정의의 실천자로 자신의 소명을 인식해야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나에게도 동일하다. 이런 생각을 이루기 위해 나는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인 성경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크리스천의 삶을 구성하는 메커니즘은 성경에 의해 형성되고 만들어져가는 신학과 그러한 신학에 따라 걷고 말하고 먹고 사는 삶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런 메커니즘이 올바로 작동될 때 이 세상에서는 자그마한 샬롬이 곳곳에 만들어져 갈 것이다.

끝으로 감사할 차례이다. 지난 십여 년 동안 강의실 안팎에서 예리한 질문을 던진 나의 학생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그들 때문에 이만한 선생이 되었기 때문이다. 선생과 학생은 함께 부침(浮沈)한다는 말은 사실인 듯하다. 이제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두루마리는 덮어놓고 읽지 말고 열어 놓는 읽어야 하느니라”는 경구가 다니엘(류호준 교수의 영문 이름!)서에서 나왔다는 말에 넌지시 웃을 줄 아는 목회자가 되어있을 것이다. 그런 좋은 습관이 한 평생 계속되기를 바란다.

류호준 목사
서울 방배동 8층 연구실
2006년 8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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