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새해 둘째 날에: 이삿짐 싸는 날”

 

어제는 양력설(新正)이라 집에서 푹 쉬고 오늘은 방배동에 있는 학교에 정상적으로(?) 출근했다. 방학 중이라 학교는 한산했고 직원들만 근무 중이다. 먼저 다이소에 들려 노끈을 여러 개 구입했다. 책을 싸기 위해서다. 은퇴를 했으니 연구실을 빼주기 위해서다.

 

교수생활 25년에 이런 저런 이유로 연구실을 17번씩이나 옮겨 이사했으니 아마 기네스북에 등재될 찌도 모른다. 이사하는 데는 이력이 붙었다. “방배동은 방을 빼는 동네”라는 자조 섞인 말도 이젠 사진첩의 한 귀퉁이에 아련한 추억으로 기록될 것 같다. 근데 싸도 싸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뭔 쓸데없는 책들이 이리 많은가?” 먼지를 털어가며 한 권 한권 만져본다. 적어도 35년 이상 소장한 책들이 많다. 원서의 경우 1980년에 시작한 유학시절에 절약해가며 구입한 책들이기에 정이 많이 들었다. 한권씩 쓰다듬어 준다. 먼지도 떨어준다. 서너 시간 책을 쌌지만 별로 티가 안 난다.

 

누군가 연구실 문을 두드린다. 도옹(주도홍 교수)이다. 형님 책을 싸는 것을 보니 안 되어 보였는지, “제자 많다고 자랑질 하더니 다들 어디 있는 거요?” 나는 제자들 많다고 자랑질 한 적이 없는데 헐. 어쨌든 제자들을 소집하란다. 아무래도 그럴까 하는데. ㅎㅎㅎ 그래도 같이 나가는데 뭐를 줄 것이 없을까 하고 있던 참에 마이크로웨이브 오븐이 내 연구실 안에 붙어 있는 탕비실에 있어서 “도옹, 가져갈래?” 하고 물으니 냉큼 가져가겠다고 한다. 그리고 뒤도 안 돌아보고 들고 나간다. 집에 있는 오븐이 고장이 나서 어찌해야 하나하고 있던 참에 잘 되었다는 것이다. 아마 오늘 사모님께서 저 무거운 것을 들고 들어오는 남편을 보면, 괜히 나를 욕하는지 모르겠다. 구식인데... ㅎㅎㅎ

 

인생이란 이삿짐 쌌다가 풀고, 다시 쌌다가 풀고, 그러다가 다시는 짐을 싸지 않을 영원한 집에 갈 날이 있으리라

 

사랑은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하는 것이니, 나를 존경하고 사랑한다고 말로 했던 제자들이여! 들으라, 이삿짐 싸러오면 내가 짜장면 사줄게... ㅎㅎㅎ

이삿짐2.jpg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류호준 교수의 무지개성서교실이 http://www.rbc2020.kr 로 리뉴얼하여 이전합니다. 류호준 2020.08.24 4586
공지 "무재개 성서교실은 여러분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5] 류호준 2018.03.29 2930
769 라헬의 죽음과 유복자 (창세기 큐티) 류호준 2008.05.14 12704
768 신학에세이: "설교를 통해 하나님을 뵙는 일" (코넬리우스 플랜팅가) file 류호준 2005.11.23 12490
767 생활 에세이: "물 먹이시는 하나님!" [8] 류호준 2010.08.06 12486
766 설교: "왜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가?" (눅 22:31~34, 54~62) file 류호준 2006.05.19 12349
765 신학 에세이: "하나님, 당신께 실망했습니다"(예레미야의 고백) [2] 류호준 2010.07.26 12261
764 설교: “그냥 야곱으로 남아 있게나!” 류호준 2010.05.30 12155
763 설교: "잃어버림의 경험" (눅 15:1~10, 딤전 1:12~17) file 류호준 2006.05.17 12115
762 요약: “세 가지 형태의 설교” 류호준 2006.10.26 11999
761 설교: “성령께서 하시는 일들”(성령강림절) 류호준 2010.05.23 11911
760 신학에세이: "'율법'에 관하여: 간단한 해설" [1] 류호준 2006.09.17 11807
759 에스겔서 강론 (1): “하나님은 어느 곳에든지 계신다!” 류호준 2010.03.13 11745
758 로마서 묵상 (21): “크리스천의 슬픔” [1] file 류호준 2010.08.31 11679
757 신학에세이: "신약은 어떻게 민수기를 다루고 있는가?" file 류호준 2006.10.07 11602
756 설교: “예수: 사람의 아들(人子)” 류호준 2010.09.05 11576
755 에스겔서 강론 (2): “에스겔의 싸인(sign)-설교들” 류호준 2010.03.15 11562
754 신학에세이: "열 가지 재앙에 관하여" 류호준 2006.09.20 11456
753 신앙교육(50): "세례의 의미" 류호준 2010.05.09 11411
752 야곱의 유언 (창세기 큐티) 류호준 2008.10.06 11307
751 서문: [정의와 평화가 포옹할 때까지] [1] 류호준 2006.10.26 11201
750 신학에세이: “하나님은 몇 분인가?”(이정석 교수) 류호준 2008.10.05 111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