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누군가를 위해 이런 기도를 드려봅시다.”

 

 

누군가를 위해 무릎을 꿇고 기도해본 일이 있습니까? 찔림이 있는 질문인 동시에 가슴 먹먹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대부분 자신만을 위한 기도에 함몰했던 우리 자신에게 던지는 비수 같은 물음이기도 합니다. 누군가를 위해 그것도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경건함이 무엇인지 엿볼 수 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한 곳에서 다른 사람을 위한 중보 기도의 본을 친히 보여준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과 저도 이런 기도를 마음에 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 그 이야기를 나눕니다. 에베소 지역에 있는 교인들을 위해 그가 로마의 옥중에서 드렸던 기도문입니다(엡 3:14-20). 그가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 드렸던 기도는 세 가지 간구를 담고 있습니다.

 

첫째, 사람의 겉은 이런저런 일로 시들어가고 약해지지만 적어도 속사람만은 아니 사람의 내면만큼은 날로 새로워지고 강건해지기를 기도합니다. 헤프게 보일 정도로 쏟아 부어지는 하나님의 임재의 풍성함에 따라서, 하나님은 여러분과 나와 우리 모두에게 성령의 능력과 힘으로 우리 속사람을 강하게 하고, 연약하고 힘이 없을 때 용기와 힘을 주시고, 사는 게 힘들고 모든 일이 불투명하여 막막하게 느껴질 때 삶의 분명한 목적의식과 비전을 주시고, 믿음이 흔들릴 때 견고한 확신을 주시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 때 그 무엇보다 성령의 위로와 용기와 격려가 절대로 필요하기에 바울 사도는 성령의 개입을 특별하게 언급합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속사람이 힘 있고 강건하게 하여 주세요”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연약한 신앙공동체에 속한 그 누구라도 서로 격려하고 사랑하면서 신앙의 뿌리를 내리게 되고 신앙의 터 역시 굳어지고 단단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를 위해 이렇게 기도한다고 합시다. “하나님, 내 신앙의 친구 K를 위해 기도합니다. 병약하여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걷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속사람만큼은 고난과 암흑의 시간을 넉넉하게 극복하고 이겨나갈 수 있도록 강건하게 해 주세요“라고 말입니다. 그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드려야할 매일의 기도요 갈망이며 바람입니다.

 

두 번째 간구는 신앙공동체의 구성원 모두가 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알고 깨달았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그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겠습니까? 사랑은 아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은 느끼고 그곳에 빠져야하는 것이 아닙니까? 오죽하면 사람들은 “사랑은 빠지는 것이다”(fall in love)라고 하겠습니까? 모두 다 이해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은 아니지요. 그리스도 안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사랑의 무한광대하심에 대해 우리는 힐끗이라도 눈치 챌 수 있고, 언뜻이라도 보게 될 수 있고, 살포시 내리는 그분의 사랑의 무게감을 묵직하게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 신앙 공동체가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을 조금이라도 알아갔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드려야할 매일의 기도요 갈망이며 바람입니다.

 

마지막 간구는 하나님의 넉넉하게 가득 채우시는 충만함으로 우리의 삶도 넉넉하고 가득차고 충만해지기를 기도합니다. 빡빡하고 건조하고 무미한 삶이 아니라 무엇인가 받아들을 수 있는 포용성, 빈곤가운데서도 넉넉함, 분주함속에서도 여백이 있는 여유를 갖게 되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나만을 위한 기도를 넘어 공동체를 위한 기도입니다. 왜 이런 기도를 드릴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넉넉한 분이시고, 충만함으로 채우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 것, 주의 성령이 함께 하심이라!”고 노래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드려야할 매일의 기도요 갈망이며 바람이요 노래입니다.

 

사도바울은 중보기도의 아름다운 본을 보여주고 친히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그는 이런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고 있습니다. 그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시기에 이런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까? 그분은 우리가 구하고 꿈꾸고 생각하고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아니 그 너머로 더욱 풍성하고 넘치도록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중보기도의 끝을 송영으로 마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 이상으로 넘치도록 능히 하실 그분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소원하노라! 아멘”

 

그렇습니다. 우리의 간절한 기도는 언제나 찬양의 송영으로 끝을 맺습니다. 에베소서에서 사도 바울이 그의 사랑하는 교인들을 위해 드렸던 기도는 여러분과 제가 매일 한 번씩 드려야할 공동체를 위한 기도이어야 할 것입니다. 이 기도문은 주기도처럼 마음 깊이 암송해야 할 기도입니다. 잠자리에 드는 어린 자녀들을 위한 부모의 기도들처럼 일상화 되어야 하는 기도입니다. 식탁에서 드리는 기도처럼 언제나 일반적인 기도가 되어야할 것입니다. 이런 기도를 매일 드리는 그리스도인은 복된 사람입니다. 그런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교회의 신앙공동체는 날마다 새로워지고 튼튼하게 될 것입니다. 천성을 향해 길을 떠난 모든 동료 크리스천들에게 하늘 위로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가을맞이 치장” Manchester, V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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