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모든 것들 안에서 계시는 하나님” 

롬 8:28-30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스포츠 명예의 전당”


“명예의 전당”(Hall of Fame)이란 것이 있습니다. 원래 미국에서 생긴 제도인데 요즈음 한국에도 들어왔습니다. 스포츠의 각 분야에서 커다란 족적을 남긴 유명 선수들을 기념하고 그들의 위대한 기록들을 후세에 알리게 위해 만든 건물입니다. 얼마 전에는 여성골퍼인 박세리 선수가 미국 여자 프로 골프 협회(LPGA)의 “골프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는 영예를 누렸습니다.


사실 영어 문구(Hall of Fame)를 자구적으로 번역하자면 “명성(名聲)의 전당” “유명(有名)의 전당”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름을 날렸던 사람들의 전성기 활동 기록물들을 수집 보관해서 일반인들에게 보여주는 곳입니다. 한편 한국어로는 “명예의 전당”이라고 부릅니다. 이 점에서 영어 명칭이 좀 더 실제적이고 솔직한 듯 보입니다. Hall of Fame이란, 그 전당 안에 입적하게 된 사람들은 대중에서 잘 알려진 유명한 사람들이란 뜻이지, 그 유명세가 반드시 그들의 인격과 도덕성과 관련이 있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편 우리나라는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고상하거나 품위가 있다는 뜻을 내포하는 “명예”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명예의 전당”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 사람들이 그저 유명한 사람들인지 아니면 명예로운 사람들인지는 잘 구별이 가지 않습니다. 때론 어떤 사람들의 경우, “명예”가 아니라 “멍에”가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구절 명예의 전당”


성경 안에도 대표적인 신앙 위인들을 위한 “명예의 전당”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이 그런 곳입니다. 위대한 신앙의 사람들을 뽑아 그들을 기념하는 전당입니다.


한편 교인들이 가장 많이 애송하거나 암송하는 구절들을 모아 “성경구절 전당”을 차리는 것은 어떨까요? 어느 구절들이 명예의 전당에 입성할 것 같습니까? 여러분의 입에서 자연스레 나오는 성경 구절들을 대 보십시오.

   ․ “하나님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요한 3:16)

   ․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신 6:5)

   ․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가 6:8)

   ․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 (마태 28:19)

   ․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자”

    (히 12:1)

   ․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한 나를 믿으라.”

    (요한 14:1)

   ․ “내게 능력 주시는 자(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노라.”

    (빌 4:13)


그리고 아마 오늘의 말씀 중 한 구절도 들어 갈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8)


우리가 보통 아는 대로 쉽게 풀어서 말하자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모든 일들이 함께 잘 되어갈 것입니다.” 로마서 8:28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줄 우리는 압니다.” 그렇습니다. 암송하고 또 암송해야할 귀중한 구절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 구절은

   ․ 교회 홍보용 포스터에도,

   ․ 교회 십대 청소년의 티셔츠에도,

   ․ ‘긍정의 힘’을 선전하는 사람들의 입술에도,

   ․ 기복신앙을 외쳐대는 설교자의 입에도,

   ․ 성경에 밑줄 친 몇몇 구절중의 하나로,

   ․ 여름 성경학교 때 암송구절로,

   ․ 경건한 할머니 권사님의 권면의 말씀에도 자주 등장하는 구절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들의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처음에 저는 이 구절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정말로 그랬습니다. 좀 심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구절이 제 머리 주위를 떠나본 일은 없었습니다. 늘 제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내 암송 구절 기록에 따르면, 이 구절 앞에는 별표(*)를 달아 놓았습니다.

   ․ 이 구절은 좀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한 말씀이라는 표시였습니다.

   ․ 아니면 이 별표는 경고 표시이기도 했습니다. 즉 이 구절을 잘못

    사용할 가능성이 높은 구절이라는 뜻이었습니다.


특별히 교인들의 어떤 특정한 삶의 상황에 목회자로서 제가 권면이나 위로를 해야 할 경우 이 구절을 남용하거나 오용할 가능성이 높은 성경구절이라는 뜻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모든 일들이 결국 좋게 될 것입니다.”


누군가 너무 어려운 일을 당했거나, 고난이나 비참한 지경에 있을 때, 뭐라고 위로해야합니까?

   ․ 차라리 “참으로 유감입니다. 뭐라고 말해야할지 모르겠군요.”라고 말하거나,

   ․ 아니면 “저도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라고 말하거나

   ․ 그것도 아니라면 “제가 얼마동안이라도 당신과 함께 있어도 괜찮겠습니까?”

    라고 말하는 편이 훨씬 나을 것 같은데,

   ․ 그만이야 너무도 쉽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입니다!”라고 말하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우선 본문의 구절에서 몇 가지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즉 이 구절을 신학적으로 약간 손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구절이라는 말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선’에 관한 이해입니다. 다시 말해 바울 사도가 “선을 이루다” “좋게 일이 되어간다”라는 말을 했을 때 그가 무슨 의미로, 무슨 뜻으로 했을 것입니까? 여기서 말하는 ‘선’을 대문자화시켜 ‘지고의 선(善)’이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 ‘선’, ‘좋음’을 ‘영원한 선’, ‘영원한 좋음’ ‘궁극적인 선함’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 달리 말해 시간과 순간을 초월하여 있는 선, 오늘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갈등과 고민을 넘어서 있는 ‘선’(좋음)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 ‘구원의 좋음’입니다. ‘구원의 선함’입니다. ‘좋은 구원’입니다. ‘하나님의

    좋으심’입니다. ‘좋으신 하나님’입니다. ‘영원한 좋음’입니다.


마치 성경의 저자들이 우리에게 권면하는 말씀들 속에서 발견되는 선함입니다.

   ․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라”

   ․ “하나님은 선하시도다.”

   ․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원하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대대에 이르리로다.”

   ․ “나는 산자의 땅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보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혹은 복은 찬송가 중에 “좋으신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 참 좋으신 나의 하나님”이란 찬송도 있습니다.


로마서 8:28은 나와 여러분과 이 세상이 좋다고 생각하는 선(좋음)을 훨씬 뛰어넘는 최상의 선(善)을 위해 모든 일들이 진행되어간다는 것입니다. 모든 일들이 최상의 선을 위하여 기여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말하고 있는 ‘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종말론적 관점에서, 재림의 관점에서, 영원한 생명의 관점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모든 일들”을 살피고 있는 것입니다. 장차 있게 될 온전한 좋음, 최종적으로 도래할 궁극적인 선함의 상태가 있일 것이라는 확신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입니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지금 고단한 삶의 현실 속에 앉아 있습니다. 이런 일 저런 일, 예측한 일들뿐 아니라 예측하지도 않은 일들이 여기저기서 터져나는 헷갈리는 삶속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럴 때, 우리 가운데 누가 이 꿀떡같은 약속의 말씀을 붙잡지 않을 사람이 있겠습니까? 너무도 매력적이고 위안이 되는 말씀처럼 들리지 않습니까? 어떤 약속입니까? “여러분이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모든 일들이 곧 잘 될 거야”라는 식의 약속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오로지 좋은 일만이 ‘지금 곧’ 일어나게 될 것이야”라는 식으로 읽는 약속 말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잘 될 거야”라는 식으로 본문을 이해하는 것은 본문의 약속을 판촉 광고나 바겐세일 문구나 아니면 주거니 받거니 하는 협상문구이거나 아니면 닳고 닳은 약장수의 유혹적 선전 문구와 같은 것으로 취급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대부분의 하나님의 백성들의 집단적인 마음들 저변에는 이런 유의 생각들이 깔려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다리 밑으로 물이 점점 불어나고 있는 위험스런 장면입니다.


라디오 설교자들이나 기독교 텔레비전 방송의 설교자들을 시청하는 사람들, 싸구려 부흥회를 따라 다니는 사람들, ‘적극적 사고방식’이나 ‘긍정의 힘’과 같은 값싼 심리적 치료와 확신에 마음을 두는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보통의 선량하고 순진한 많은 크리스천들이 점점 수위가 높아가 마침내 다리마저 떠내려가게 할지도 모르는 이런 위험천만한 다리위에 서 있습니다.


본문이 이렇게 사용되어야하는가요? 저와 같은 장로교 목사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윌리엄 바클레이(William Barclay) 박사의 주석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설교에 설교들을 준비하였습니다. 1950년대에 바클레이 박사는 로마서 8:28에 관해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들어보십시오.

“만일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뢰하고 의지하고 그분을 받아들인다면, 만일 사람이 하나님은 온전하게 지혜로우시고 항상 사랑하시는 아버지라는 확신을 갖는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보내시는 모든 것들, 모든 일들을 겸허하고 겸손하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의사에게 갔다고 합시다. 의사가 진단을 한 후에 치료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치료하는 과정이 환자에게 불편하고 심지어 괴롭고 고통스러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 사람이 의사의 지혜와 신실함을 믿고 의지한다면 그는 그 치료의 과정에서 겪어야하는 모든 일들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뢰하고, 모든 일들이 선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에게만 그럴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에게는 모든 일들은 완전한 지혜와 사랑과 능력으로 최상을 위해 일하고 계시는 아버지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로마서 8장은 말씀합니다. “하늘 아버지가 제일 잘 아신다!” “아버지는 무엇이 좋은 것이지, 자기 자녀를 위해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아신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에게 무엇이 최상인지 나는 잘 알고 있어. 네가 지금 고통스럽고 아프지? 네가 아픈 것 이상으로 나도 아파. 자, 어서 쑥~ 들이켜(쓴 약을 어린 자녀에게 먹일 때 하는 말!) 이제 괜찮을 거야!”


잘못된 이해들


글쎄요, 이렇게 설명해드렸는데, 보통 크리스천들의 마음에 너무도 깊게 잘못 심겨진 롬 8:28에 대한 대중적 이해가 바뀔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저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롬 8:28을, “하나님을 사랑하면 인생을 잘 될 거야! 모든 일들이 잘 될 거야!” 라는 식의 조건적 약속으로 알고 있는지요! 그렇게 알고 있다가 실제로 일이 그렇게 돌아가지 않을 때 분노하거나 입술을 깨물거나 신앙의 침체에 빠지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요!


많은 크리스천들은 짧은 못들과 같아서 뒷심이 없습니다. 달리 말해, 모든 일들이 [잘못 이해된] 롬 8:28의 약속의 말씀대로 그렇게 쉽게 풀리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후에는 “될 대로 되라!”는 식의 체념이나 신앙적 무관심에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일로 상처를 입고 신앙에서 멀어져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좋은 의도로 그들에게 권면하는 사람들, 즉 “집사님, 집사님이 하나님을 정말로 사랑한다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좋게 될 것이에요!”라고 하는 크리스천들에게 많은 상처를 입었거나 지금도 입고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하는 사람들은 로마서 8:28을 가지고 삶의 신비와 고통들과 고난들과 심지어 죽음을 그냥 쉽게 설명해 버리려는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들이 함께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라는 말씀으로 말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성경구절들 가운데 많은 크리스천들의 투표에 의해 암송해야할 유명한 구절들을 선정했다고 합시다. 그리고 그 구절들을 모아서 “암송구절 명예의 전당”(the memory verse hall of fame)에 각인시켰다고 합시다. 그런데 저는 그 명예의 전당에서 빼내야할 구절이 이 구절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들이 함께 선을 이룬다!”


그러나 정말로 빼낼 의사는 없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바는, 그 구절을 똑바로 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구절 ‘전체’를 읽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읽어보십시오.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먼저!


여기서 요한 칼빈은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란 구절을 가리켜 ‘교정 틀’ 혹은 ‘개선책’(corrective)이라고 불렀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우리가 잘못 생각할 수도 있는 가능성을 교정하고 고쳐주기 위해 덧붙여진 구절이라는 뜻입니다. 설명하자면, 우리와 같은 신자들이 혹시라도,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달리 말해 우리가 애쓰고 힘써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런 신앙적 노력과 공로 때문에, 우리는 고난을 통해 익은 열매들을 마땅히 받을 자격이 주어진다!”라고 잘못 생각 할까봐, 그런 잘못된 생각을 교정해주기 위해 “당신들은 하나님에 의해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라고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심이 있은 후 그 다음에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을 이루다”는 구절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부르심과 사랑과 선택이란 커다란 문맥 안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달리 말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출하시는 ‘구원이야기’, 즉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라는 ‘구원 이야기’를 가리키는 바울의 핵심적 논지와 연결하여 이 구절(“선을 이루다”)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정-부르심-의롭다하심-영화롭게 하심.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의 삶에서 이런 ‘선’을 이루기 위해 지금도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다”는 현재 본문 대신에 고대의 다른 사본에는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하여 선을 이루신다.” “하나님은 모든 일들 가운데서, 모든 것들을 통하여 우리를 위한 선을 이루신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매우 적절한 의미 파악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들을 합하여 선을 이루신다!” 곧 하나님의 섭리에 관한 말씀입니다.


하이델베르그 신앙교육서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주의 날 10주)

하나님의 섭리란 하나님의 전능하시고 항상 존재하는 능력입니다. 이 능력으로 하나님은 마치 자신의 손으로 하시듯이, 하늘과 땅과 모든 피조물을 붙드시며 다스리십니다.

이렇게 하심으로써 나무의 잎새들과 풀들, 비와 가뭄, 풍년과 흉년, 먹을 것과 마실 것, 건강과 병고, 부유함과 가난함 등등… 이 모든 것들이 우연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돌보시는 손길로부터 우리에게 온다는 것입니다.


섭리의 목적: 하나님 아들의 형상


한걸음 더 나가, 우리가 덮어 놓고 인용하고 암송하는 이 구절(“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다”)은 연이어서 나오는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기 위해”라는 것과 분리해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 구절은 바울의 메시지의 중심부입니다. 즉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 구절, 즉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기 위해서다”라는 말은 “우리가 예수처럼 보여야 한다,” 혹은 “예수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모습)은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아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와 부활하신 그리스도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와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이며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를 부르신 이유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하심에 의해 만들어져가고 형성되고 빗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영광스럽게 될 것입니다. 이 상태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다”라고 말할 때의 ‘선’(좋음)입니다. 최상의 선(좋음)이 무엇인지를 새롭게 규정되는 순간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각인과 흔적을 모델로 삼아 우리도 그와 같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바로 이렇게 되어가는 것이 선을 이룬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되어가기 위해 모든 일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지금의 좋은 일과 나쁜 일들, 힘든 일과 괴로운 일들, 잘되는 일과 안 되는 일들 모두를 통해 우리는 죽음과 부활을 경험하면서, 궁극적으로 우리는 영화롭게, 명예롭게, 빛나게 만들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일들을 통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위한 ‘선’을 이루어 가시는 분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먼저 부르시고 사랑하시고 택하시고 더러움을 씻어주시고 “괜찮아!”(稱義) 라고 선언하시고, 흙덩어리로 토기를 빗듯이 그렇게 우리를 빗으시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은 명품으로 만들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의 삶을 시작하신 분이 그분이시고, 우리의 삶을 지탱하고 유지하시는 분도 그분이시고, 우리의 삶을 만들어 가고 교정하시는 분도 그분이시고, 마침내 최상의 상태로 명품으로 완성시키실 분도 그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누구의 형상에 따라 우리를 만들어 가십니까? 십자가와 부활로 뚜렷하게 새겨진, 하나님 아들의 형상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누구십니까? 우리가 모델 삼아 빼 닮아가야 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십니까?

   ․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구원 이야기를 요람삼아 그 안에서 태어나신 분입니다.

   ․ 그분은 미리 정하신바 되고-부르심을 입었고-의롭다 칭함을 받았고- 마침내

    영화롭게 되신 분이십니다.   

   ․ 그분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포대기에 감싸졌습니다.


우리를 명품으로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


바로 이와 같은 방식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 이야기’ 속에 태어나게 하시고, 우리의 이름을 부르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먼저 베푸시고 사랑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하나님께 응답하고 사는 사람들, 그리고 그 하나님을 간절하게 사랑하고 높이고 섬기는 사람들, 그들 모두는 하나님께서 모든 일들을 통해서, 모든 일들 가운데서 선을 이루기 위해 일하고 계신다는 것을 압니다. 이것이 신앙고백입니다. 이것이 찬양입니다. 이것이 뿌리 깊은 확신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이 설교를 듣고 난 후에, 더 이상 덮어놓고 이 구절을 암송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이 구절을 기억하거나 암송할 때마다 기계적으로가 아니라 샘물 곁에서 암송하듯 하십시오. 상징적으로 말해서, 세례의 물 그릇 옆에서 세례를 기억하면서 암송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과 죽음의 마지막 한 치까지도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의 흔적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으로 점찍어 놓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것으로 표시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 이야기를 요람삼아 그 안에 넣어 기르시고, 하나님의 사랑이란 손으로 우리를 처음 안으셨습니다. 모든 일들 안에서, 모든 것들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존재들입니다. 즉 하나님은 모든 것들 안에 계신 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일들이 함께 어울려 선을 이룬다는 것을 압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뽑아주시고(선택하시고)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의 비천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괜찮아!’라고 말씀하시고 이런 저런 일들(모든 일들)을 통하여 우리를 그리스도의 형상을 모델 삼아 빗어 가시고, 마침내 “내가 보기에 좋다~”(창 1장)라고 하실 명품으로 만드실 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뿌리 깊은 확신으로서 참 믿음입니다.


우리 삶의 이니셔티브는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잡고 계시다는 확신을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 우리 삶의 운전사는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 우리의 항해의 선장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 우리의 비행의 조종사는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을 마음에 간직하십시오. 그러면 롬 8:28이 새롭게 들려올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일들 가운데 계서서 그 일들을 통하여 자기가 미리 점지하여 선택하시고 불러내시고 사랑하신 우리들을 위해 최상의 선을 이루실 것입니다”라는 신앙고백입니다.


기억하라!


다시금 말씀드립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이 설교를 듣고 난 후에, 더 이상 이 구절을 기계적으로가 아니라 샘물 곁에서 암송하듯 기억하라고 권합니다. 세례의 물 그릇 옆에서 세례를 기억하면서 암송하라는 것입니다.


세례식을 기억해 보십시오. 세례식 때 무엇을 기억합니까?

   ․ 하나님께서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기억합니다.

   ․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그 사랑을 요청하기 전에, 우리가 그 사랑을 받기

    위해 노력하고 애쓰기 전에 먼저 우리에게 쏟아 부어졌다는 사실을

    기억합니다.

   ․ 세례식 때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물은 오늘과 내일과 미래에 주어지는

    하나님의 용서를 말하고 있습니다.

   ․ 그 물은 예수님과 그분의 십자가와 부활을 기억하게 합니다.

   ․ 그 물은 우리가 설명할 수 없지만 성령께서 지금 여기에 임재 하신다는 것을

    기억하게 해줍니다.

   ․ 그 물은 성령은 우리의 일상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동행 하시는

    방식임을 기억하게 해줍니다.


그렇습니다. 세례의 흔적은 그 어떤 것으로도 지울 수도, 변하게 할 수도, 떼어갈 수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으로 영원하게 각인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세례식의 물 그릇 옆에서 우리는 기억합니다.

   ․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으로 영원히 각인된 사람들이다.

   ․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도장이 새겨진 사람들이다.
   ․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 이야기라는 요람 안에서 영원히 보살핌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다.

   ․ 우리는 미리 뽑히고(예정)-부르심을 받고(소명)-괜찮다는 말(칭의)을 듣고-

    영화롭게 되었습니다.

   ․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 곧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들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줄 압니다. 아멘.


무지개 교회 주일 예배 설교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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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 큐티를 위한 스가랴서 해설 (7) 류호준 2009.11.03 7090
» 설교: "모든 것들 안에 계시는 하나님" 류호준 2009.11.01 10079
181 신앙교육(36): "여러분은 예수님이 누구라고 말합니까?" 류호준 2009.11.01 9813
180 신앙교육(35): "신앙이 성장하는 길" 류호준 2009.10.24 7361
179 신앙교육(34): "왜 선한 일을 해야하는가?" 류호준 2009.10.17 7244
178 큐티를 위한 스가랴서 해설 (6) 류호준 2009.10.16 7784
177 큐티를 위한 스가랴서 해설(5) 류호준 2009.10.16 8296
176 스가랴서에 들어가면서(0) 류호준 2009.10.15 9853
175 큐티를 위한 스가랴서 해설(4) 류호준 2009.10.15 7780
174 큐티를 위한 스가랴서 해설(3) 류호준 2009.10.15 7297
173 큐티를 위한 스가랴서 해설(2) 류호준 2009.10.13 7209
172 큐티를 위한 스가랴서 해설(1) 류호준 2009.10.13 7600
171 설교: "한 아버지와 두 아들" [1] 류호준 2009.10.11 7165
170 신앙교육(33): "왜 하나님은 당신을 택하셨을까?" 류호준 2009.10.10 72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