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번역에세이: 희망 (바라는 것)

2007.12.07 17:54

류호준 조회 수:18689

                                                              희망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가?
                                                                          - 바람(願) -

                                                                     Dr. Lewis Smedes  
                                                                      번역: 류호준 목사

우리는 일요일에 골프를 칠까 아니면 그 동안 밀렸던 집안 청소를 할까 하고 결정하는 방식으로 희망에 대해 결정하지 않습니다. 내가 갖고 있는 희망이 잘 자라고 있는 가를 살펴보기 위해서 하루를 젖히고 직장에 나가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희망은 세 가지 평범한 내면적 경험들이 우리 안에서 하나로 어우러지기 시작할 때부터 생명력을 지니게 됩니다. 희망이 살아있으려면 우리는 이 세 가지 모두가 필요합니다. 하나는 두 개가 모자라고, 둘은 하나가 모자랍니다. 희망은 세 가지 모두를 함께 필요로 합니다. 불꽃이 살아있으려면 불은 열과 연료와 산소 세 가지 모두가 필요한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 어떤 종류의 희망이든지, 희망이 살아 있으려면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합니다: '바라고', '꿈꾸고', '믿는 것'입니다.

희망은 먼저 '바라는 것'(wishing)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바람(願)의 속삭임은 마치 갓 태어난 아기의 울음소리와 같아서 희망이 태어나고 있다는 첫 번째 징조입니다 ― 처음에는 동경(yearning)이, 그후에는 열망(longing)이, 그리고 간혹 열정(passion)이, 그리고 적어도 욕구(desire)가 나타납니다. 우리는 우리가 바라는 것을 향하여 희망할 뿐입니다. 바라지 않는다면 희망하지도 마십시오.

어디선가 시인 엘리옷(T. S. Eliot)은 속삭이듯 말하기를, 우주의 창조자는 새롭게 불어오는 온갖 바람(願)들에 대해 기뻐하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인가 바라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더 이상 바라야할 의욕이 없을 때, 우리의 희망 역시 채워지지 않은 채로 일찍 죽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토록 오랫동안 바라왔던 인생 최고의 것들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C. S. 루이스의 말,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최상의 것들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갈망들입니다"1)라는 말이 내 가슴에 다가옵니다.

모든 바람들은 만족하지 못하는 데서부터 잉태되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갖고 있지 못하는 것들을 바랍니다. 그것이 없이는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그것 말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어떤 상황가운데서도 만족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그런지 어떤 사람들은 너무 많이 바라는 것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냅니다. 한때 어머니는 나에게, "애야, 너무 많은 것을 바라지 말아라. 무엇인가를 바란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너에게 주신 것에 대해 만족하지 않다는 표시야"라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그것만이 아니다. 만일 네가 많은 것을 바란다면, 그리고 그 바람들이 네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 결국 너는 크게 실망하고 슬퍼하게 될 꺼야"라고 하셨습니다. 어머니의 말씀은 그 나름대로 옳았습니다. 불만족은 덫입니다. 불만족은 올가미와 같습니다. 우리가 불만족이라 불리는 가려움을 계속해서 긁기 시작하면, 긁을수록 불만족의 상태는 더욱 악화될 것입니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갈망들을 의심하라"고 섹스피어가 경고한 적이 있습니다. "탐내지 말라"고 토라(Torah)가 말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경고하고 있는 것일까? 바람 안에 그 어떠한 악한 것이 들어 있기 때문에 그렇게 경고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경고한단 말입니까? 아마 우리가 바라던 것을 일단 갖게 되면, 그전에 바라지 않았던 것들까지도 바라게되는 유혹에 우리 모두가 빠지게 되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현재 상태의 세상에 대해 어떻게 만족할 수 있겠습니까? 현재 우리 자신의 상태에 대해 어떻게 만족할 수 있겠습니까? 만족사면서 사는 사람은 현재의 상태에 대해 너무 쉽게 안주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와는 대조적으로, 희망과 함께 사는 사람은 해저를 흐르는 하얀 물살과 같은 바람들을 느끼고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풍성한 삶에 대한 만족을 찾을 때까지 만족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바로 그때까지는, 우리는 우리의 불만족에 대해 만족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불만족에 대해 만족하며 산다는 것은 희망하는 영혼에게만 주어지는 유일한 평화를 얻는 다는 것을 말합니다. 불만족에 대한 만족은 우리가 흔히 인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인내는 불만족에 대한 만족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영혼의 조용한 힘인 인내는 기다리는 힘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희망하는 것을 얻을 때까지 기다리는 힘입니다.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희망으로 가득 찬 삶의 이러한 심오한 역설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이 어떠하던지 그 상황에 대해 만족한다는 것은2)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것을 '지금 소유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인다는 지혜입니다. 이 사실을 잘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현실이 우리가 바라는 대로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해 '만족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대로 일이 이루어져 갈 때까지, 우리는 우리의 불만족에 대해 '만족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러한 만족하며 사는 불만족은 희망이 인내하면서 갖는 조급함이기도 합니다.

조심스럽지만 내 개인적인 경험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는 40년이 조금 못 미치는 세월을 선생으로 살아왔습니다. 지난 40년 동안 어느 하루도 나는 내가 그토록 바라던 선생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그런 선생도 아니었습니다. 매 학년이 마칠 때마다 나는 내 자신에 대해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마치 잘 나가던 어떤 야구선수가 어느 해 형편없는 시즌을 보낸 후 느끼는 감정 말입니다. 그러나 매 학기가 시작될 즈음이 되면 나는 새로운 희망이 솟구쳐 오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올해는 반드시 제대로 해야지 하는 강한 의욕이었습니다. 이처럼 가을에 들어서다가 갑자기 닥쳐오는 늦더위처럼 희망도 그렇게 다가오면서 나의 불만족에 대해 만족하고 살도록 하였습니다. 불만족스런 선생의 삶을 매우 감사하는 삶으로 바꾸어준 것이 바로 희망이라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바람이 없으면 갈망도 없습니다. 갈망이 없으면 희망도 없습니다. 그리고 희망이 없으면 삶도 없는 것입니다.

꼭 기억하십시오. 다음과 같은 사실을…

희망의 첫 번째 붓 놀림은 무엇인가를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희망하지 않는 단순한 이유는 우리가 반드시 희망해야할 그 무엇이 따로 있다고 가르침을 받아 왔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먼저 바라지 않고서는 그 어떤 것도 진짜로 희망하지 않습니다. 만일 당신이 진짜로 그 무엇인가를 희망하고 있는지에 대해 궁금하다면, 스스로에게 질문하여 보십시오: "얼마나 내가 지금 그것을 바라고 있는가?"라고.


출처: Lewis Smedes, Standing On the Promises: Keeping Hope Alive For A Tomorrow We Cannot Control (Nashville: Thomas Nelson Publishers, 1998)의 2장.

1) C. S. Lewis, Letters of C. S. Lewis, ed. W. H. Lewis (New York: Harcourtand brace, 1966), 289. ("Our best havings are our wantings").

2) 빌립보서 4:11에서, 바울은 자기가 처해 있는 모든 환경과 상황에 만족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합니다. 아마 내가 생각하기로,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지금 내가 '만족된 불만족'이라 부르는 것일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이 의미하고 있는 바는 이러한 만족은 오직 희망을 저버리지 않을 때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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