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창세기 26:12-35
제목: 일상에서 드러나는 경건
찬송: 423장 (새 374장)
묵상 포인트: 악을 선으로 갚을 수 있는 역량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기도: 주님, 악을 선으로 갚을 수 있는 영적 도덕적 역량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이삭이 살고 있던 땅은 하나님께서 그의 선친 아브라함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그 약속의 땅에서 이방인처럼 떠돌면서 살아갑니다. 마치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양태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약속을 받았지만 아직 그 약속이 온전하게 실현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는 것입니다. 어쨌든 이삭은 블레셋 인들 사이에서 살면서 엄청난 부를 얻게 됩니다. 본문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복을 주시므로 그가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었더라”(12-13절)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이 실현되고 있음을 암시하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곧이어 하나님의 언약적 약속은 그 땅에서 강한 도전을 받게 됩니다. 이삭의 번성을 시기하는 블레셋 인들이 이삭의 우물들을 흙으로 메우는 사건들이 연속적으로 터진 것입니다. 목축을 생업으로 하고 있었던 이삭에게는 우물은 생명줄과도 같았습니다. 그런데 우물을 메우는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이 일 이후로 이삭은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서 우물을 팠습니다. 우물 파는 것이 그의 삶의 전부였다고 말해도 과언을 아닐 것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우물 이름들을 보면서 - 에섹(다툼), 싯나(대적함), 르호봇(장소가 넓음) - 우리는 이삭의 온유한 성품을 기억해냅니다. 갈등이 발생하면 양보하고 또 다른 곳으로 옮기곤 하였습니다.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얻는다는 말이야말로 이삭에게 잘 들어맞는 말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과는 달리 일상(日常)의 사람이었습니다. 아내의 임신을 위해 20년 동안 조용히 기도한 사람이었고, 생계를 위해 우물을 파고 양들을 먹었던 “보통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에는 경건성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이었습니다(25절).
이삭과 아비멜렉의 계약체결 사건을 보면 이삭의 사람됨이 또 다시 드러납니다(26-33절). 그는 그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들이 있을 때마다 대항하여 싸우지 아니하고 양보하거나 피하여 다른 곳으로 갔습니다. 악을 선으로 갚은 사람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그의 이전 대적자들은 여호와께서 이삭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고 고백합니다. 그들이 볼 때 이삭은 “여호와께 복 받은 자”였습니다. 우리의 껄끄러운 대적자들이 훗날 우리에 대해 “아, 그 사람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이야! 정말로 하나님께 복 받은 사람이었어!”라고 한다면 이보다 더 큰 기쁨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삭은 이전에 원수들이었던 사람들과 평화의 언약을 체결한 후에 그들을 위해 성대한 잔치까지 베풀었습니다. 악을 선으로 갚는 자가 진정으로 이기는 자라는 것을 배워야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