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희망 없이는 살 수 없어요!”
                                                                    류호준 목사

미국에 저명한 음악 평론가로 최근에 타계한 칼 하스(Karl Haas)라는 분이 있습니다. 자신이 직접 연주한 베토벤의 '비창'(“Pathétique” 소나타(소나타 8번 C단조)의 제 2악장을 주제음악으로 삼아 시작하는 그의 Adventures in Good Music은 전 세계적으로 청취되는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입니다. 크리스마스가 저만큼 가까이 오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날 주제는 헨델의 메시아 해설이었습니다. 이십여 년이 지난 오늘에도 제가 그 시간을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위트 넘치고 감동적인 메시아 해설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시작하였습니다. “여러분, 헨델의 메시아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곡이 어느 곡이지요?” “예! 할렐루야 합창곡입니다. 얼마나 장엄하고 감동적인 찬양입니까!” “영국에서의 첫 공연 때(1743년 3월 23일) 황제 조지 2세가 참석하였습니다. 연주의 절정은 할렐루야 합창곡에 이르러서였습니다. 할렐루야 합창곡을 듣고 있던 조지 2세는 도저히 그 자리에 그냥 앉아 있을 수 없어 벌떡 일어섰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왕권에 전율하였던 것입니다.” 칼 하스는 말을 이어갔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통치를 노래하는 할렐루야 합창곡은 지상 제국의 황제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떨리는 손과 철석 내려앉는 가슴을 부여잡고 하나님의 통치에 굴복하는 지상의 왕을 보십시오.” “그러나… 메시아의 절정은 여기에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곡이 있습니다. 오늘 저는 바로 이 곡에 대해 설명 드리려합니다.”

칼 하스의 허스키한 목소리는 계속되었습니다. “할렐루야가 끝나고 이어서 나오는 곡이 있습니다. 소프라노 독창곡입니다. 확신과 비애에 찬 고음의 소프라노가 적막을 깨고 노래하는 신앙고백의 노래입니다. 노래의 제목이기도한 가사의 첫 절은 ‘I know that my redeemer liveth’(“내 주는 살아 계시고”)입니다. 욥이 모진 시련가운데서 모든 것을 다 잃었을 때였습니다. 사랑스런 열 자녀들 모두 광란의 태풍으로 잃었습니다. 평생의 재산과 재물 역시 외적의 약탈로 인해 모두 잃었습니다. 그는 길거리의 거지가 되었습니다. 생의 반려자인 아내마저 그의 곁을 떠났습니다. 몸에는 심한 창질로 인하여 피골이 상접했으며 기왓장으로 온몸을 긁어야만 했습니다. 멀리서 온 친구들은 위로를 전하려 하였지만 그들의 말들은 갈수록 잔인한 하이에나처럼 욥의 살점을 찢어 먹었습니다. 그들이 내 뱉은 비정한 말들은 욥의 심장에 비수처럼 꽂혔습니다. 그의 한 맺힌 울부짖음을 들어보십시오.

“나의 말이 곧 기록되었으면, 책에 씌어졌으면, 철필과 연필로 영영히 돌에 새겨졌으면 좋겠노라. 그러나 나는 내 구속자가 살아계신 것을 아노라. 나는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을 아노라. 나의 이 기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볼 것이라. 내가 그를 친히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외인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오, 내 마음이 초급하구나!”(욥 19:23-27)

음악 평론가로서 칼 하스의 해설은 지금부터 빛났습니다. “여러분, 할렐루야 코러스는 D-major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나오는 소프라노 독창곡 ‘내 주는 살아계시고’는 Eb입니다. 그렇다면 소프라노 독창은 할렐루야 합창보다 그저 반음(just a half note!) 정도 높이 시작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아마 천국에서 우리들은 영원히 찬양할 것입니다. 마치 할렐루야 합창처럼 말입니다. 찬양 외에 달리 할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영원하신 왕권과 주권을 높이고 찬양하는 일이야말로 우리의 본업이 될 것입니다. 천국에서 말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는 찬양하는 일보다 약간 더 절실한 것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겠습니까? 소망하는 것입니다. 희망하는 것입니다. 마치 견딜 수 없는 시련의 화덕 속에서 욥이 내뱉은 고백적 외마디, ‘내 구속자가 살아 계심을 나는 압니다!’라는 절규 속에 담긴 희망, 바로 그 소망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우리가 소유해야할 가장 중요한 덕일 것입니다. 한 음도 말고 그저 반음(半音) 정도의 희망이라도 간직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마지막 말 한 마디에 숨이 멎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렇습니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찬양할 것입니다. 찬양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탄식의 기도로 시작하는 시편의 순례가 마지막에 할렐루야 찬양으로 끝난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은 마지막에 가서 될 영광스런 일입니다. 한편, 순례의 길 한 가운데 있을 때 우리는 희망을 배우고 살아야합니다. 희망이라 이름 하는 것, 이 세상에서의 삶에 의미와 힘을 공급하여 주는 것,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저 반음 정도의 희망이라도 갖고 살아야할 이 세상, 이 세상이 아직 하나님이 아들의 나타나심을 간절히 기다려야 하는 세상이라는 것을 생각하자 눈시울이 붉어짐을 느낀 것입니다. “반음 정도라도 약간의 희망을 더 갖고 살 수만 있다면……” 적어도 이 세상에서만은 희망은 찬양보다 더 강한 인력(引力)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은 희망 없이는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고난의 길”(via dolorosa)을 걸어가면서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그분께서 다시 여러분들에 희망의 손을 내밀고 계시기 때문이다.

                                  날마다 주님과 (SFC 격월간 묵상집, 2008년 3-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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