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기억하라” 유감

 

 

구약성경 안에 지혜를 가르쳐주는 책이 있습니다. 일컬어 “지혜문헌”이라 부릅니다. 지혜문헌 안에는 잠언, 전도서, 욥기가 있습니다. 잠언은 이스라엘의 지혜 전승들 가운데 주류에 속합니다. 반면에 전도서와 욥기는 비주류 지혜전통에 서 있습니다. 전도서는 욥기보다 더 유별난 비주류 전통의 지혜문헌입니다.

 

먼저 “전도서”라는 이름이 헷갈립니다. 보통사람들은 전도서라 하면 전도를 하는 책인 줄 압니다. 나도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도 전도서가 전도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인 줄 알고 있었습니다. 물론 전도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하게 읽어본 적은 없었지만 말입니다. 기껏해야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는 구절이 전부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인생무상”(人生無常)을 가르치는 책이 전도서라는 게 뭔가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생은 덧없다”라는 말로 전도하라는 뜻인가? 으흠, 그럴 수도?

 

세월이 흘러 내가 구약을 공부하는 사람이 되고, 어느 때부터 전도서를 반복해서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제일 먼저 다시 눈에 띄는 것이 전도서란 이름이었습니다. 그리고 무릎을 치면서 우리 선조들 가운데 누가 이 책의 히브리어 제목을 기막히게 전도서라고 번역했을까 하고 탄성을 질렀습니다. 전문가인 내가 볼 때도 히브리어 제목인 “코헬렛”(“회중을 모은 자”란 뜻)이 가르치고 있는 지혜를 담고 있는 책을 “전도서”라고 번역한 것은 정말 탁월하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아시다시피 한자어 전도서(傳道書)는 “도(道)를 전하는 책”이란 뜻입니다. 달리 말해 “길(道)에 대해 알려주는 책”이입니다. 사람이라면 마땅히 알아야 할 길을 가르쳐주는 책, 인생의 길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책, 인생길의 종착역이 어디인지를 알려주는 책이 전도서입니다. 아니 전도서라는 이름 속에 들어 있습니다. 얼마나 기막힌 이름입니까? 잠간 언급했듯이, 전도서의 히브리어 명칭은 “회중을 모은 자”라는 뜻의 “코헬렛”입니다. 그는 회중을 모아 인생의 길에 대해 말을 하는 사람입니다. 지혜를 가르치는 선생입니다. 특별히 젊은이들에게 삶의 길에 대해, 삶의 지혜에 대해 가르치는 현자입니다. 그는 진정한 의미에서 전도자(코헬렛)입니다.

 

그럼 전도자인 코헬렛이 가르치고 있는 인생의 길은 무엇입니까? 앞서 말했듯이 그는 “인생무상” “덧없는 인생” “바람에 날려가는 인생”에 대해 말합니다. 때론 그 인생이 모순투성이요 부조리로 가득하다는 것을 알려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는 인생은 결국 무덤이라는 종착역을 향해 정거장도 없이 달려가는 버스와 같다고 말합니다. 버스 창문으로 스쳐가는 풍경의 아름다움을 힐끗 쳐다보며 순간적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라고 가르칩니다. 그것마저 없으면 인생이 얼마나 삭막하고 허무하겠냐고 하면서 말입니다. 일상의 소소한 기쁨들, 하늘이 그 때 그때 주는 소박한 선물들을 받아 누려보라는 충고입니다. 그럼에도 결국 인생은 죽음을 향해 날아간다는 것입니다.

 

******

 

전도자는 우리에게 두 가지 사실을 늘 기억하고 있으라고 말합니다. 이 두 가지 사실은 어찌 보면 서로 상반된 기억들입니다. 하나는 요즘 많이 알고 있는 라틴어 문구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입니다.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입니다. 다른 하나는 메멘토 크레아토리스(memento creatoris)입니다. “창조주를 기억하라!”입니다. 죽음과 생명, 파멸과 창조, 피조물과 창조주를 함께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해아래 있을 때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땅위에 있을 때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겸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도자가 인생살이에 대해 가르치는 지혜는 “겸손”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연약한 인생, 한줌의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인생, 정거장도 없는 길을 휙 달려가다 보니 죽음이라는 종점에 도착하게 되는 인생, 이것을 생각하면 겸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참고로, “겸손”이란 영어 단어 휴밀리티(humility)가 라틴어에 “흙”, “부식토”, “땅”을 뜻하는 후무스(humus)에서 나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겸손할 것입니다. 다른 한편, 사람을 히브리어로 “아담”이라고 합니다. 반면에 “땅”을 히브리어로 “아다마”라 합니다. "아담"은 "아다마"에서 나왔다는 뜻이지요. 즉 사람은 땅에서 나왔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흙인 줄 아는 사람은 겸손할 것입니다. 물론 우린 아침마다 흙에다 이것 저것 싸바르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하늘을 쳐다봅니다. 반면에 교만한 사람은 하늘을 쳐다보지 못합니다. 언제나 눈을 아래로 깔기 때문입니다. 겸손한 사람, 즉 인생무상을 알고,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하늘을 쳐다보며 자신의 창조주를 기억합니다. 반면에 교만한 사람, 즉 마치 죽지 않을 듯이 무엇인가 움켜쥐려는 사람은 하늘을 쳐다보지 못합니다. 그는 창조주를 기억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요약하자면, 전도자(코헬렛)는 우리에게 렘브란트 화풍처럼 서로 대조되는 두 가지 사실을 기억하면서 살라고 권고합니다.

 

     *  Memento Mori (메멘토 모리) =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  Memento Creatoris (메멘토 크레아토리스) = 창조주를 기억하라!

 

 

IG, rockytopskibum — at Whitefish Mountain Resort, 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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