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클린조크: 광야에서 고스톱을 즐기십시오!]


 

아주 오래전 중학교 시절이었습니다. 내가 다니던 중고등학교(서울 신대방동 성남중고등학교)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학생 교련(敎鍊)과목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학생에게 가르치는 일종의 군사훈련시간이었습니다. 후에 교련과목은 전국 고등학교로 확대되었는데 그 때 우리 학교가 교련시범학교로 지정되었으니 나는 중고등학교 6년 동안 군사훈련을 받는 셈입니다. 내가 그마나 절도 있는 사람이 된 것도 다 이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ㅎㅎㅎ). 중고등학교시절의 교련 제도는 나중에 대학에서 학도호국단 제도로 다시 태어나게 된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물론 군사독재시절의 유물이긴 하지만.

 

군사훈련의 기본은 제식훈련(制式訓鍊)에 있습니다. 제식훈련은 집단적이면서도 통일성이 필요한 군인에게 절도와 규율을 익히게 하는 훈련으로, 기본적인 훈련은 맨손으로 하는 도수동작(徒手動作)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차렷’ ‘열중쉬어’ ‘쉬어’ ‘편히쉬어’ ‘편히앉아’ ‘우향우’ ‘좌향좌’ ‘뒤로 돌아’ ‘우향 앞으로’ ‘좌향 앞으로’ 등이 있습니다. 제식훈련을 마치면 그 다음으로는 사열식과 같이 집단으로 행진을 하게 되는데 종과 횡의 열을 맞추어 일사불란하게 걷는 일이 있습니다. 이것 역시 어떤 사람들에겐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잘 걷던 사람들도 집단의 일원이 되어 함께 발을 맞춰 오른발 왼발을 정확하게 내딛는 일이 고역이었던 고문관들도 종종 눈에 띄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왼발을 내딛는데 혼자 오른 발을 띤다든가, 아니면 발과 손이 같이 올라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훈련소 교관이나 교련선생님은 그 사람을 대열에서 따로 불러내어 망신을 주어가며 발걸음을 가르쳐주지만 그게 마음대로 안 되는지 진땀을 흘리며 눈물을 보였던 친구도 생각이 납니다.

 

제대로 걷는 일이 생각보다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것도 단체 안에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신앙도 비슷하지 않은가요? 신앙은 본질적으로 혼자 걷는 행동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함께 걷는 일입니다. 다른 사람과 보조를 맞춰 함께 멋지게 질서정연하게 걷는 것입니다. 그래서 훈련이 필요한 겁니다. 앞뒤로 좌우로 줄을 맞춰 보무(步武)도 당당하게 절도 있게 걷는 행진 대열을 보면 때론 소름이 끼칠 정도로 멋지기까지 합니다.

 

걷는 일, 서는 일, 쉬는 일, 다시 일어나 걷는 일, 멈춰서는 일, 휴식하는 일, 모두 일상의 동작들이지만 결코 만만한 동작들은 아닙니다. 모두 훈련이 필요한 동작들입니다. 가고서고 하는 고스톱은 결코 재미로 하는 오락프로그램이 아닙니다. 신성한 예식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걷는 일, 하나님과 함께 멈추는 일, 하나님과 함께 쉬는 일, 가다 서다의 반복적 리듬을 몸에 익히는 일이야 말로 때론 고된 훈련처럼 느껴지지만 훈련을 마친 후에 제2의 본성이 되어 자연스럽게 몸에 배는 날이 될 때 사람들은 그들을 가리켜 격조 있는 하나님의 군병들이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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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민수기(Numbers)에 따르면, 광야(Wilderness)는 오합지졸 같은 히브리인들을 여호와 하나님의 정예군사로 훈련시키기 위한 최적의 야전 훈련장이었습니다. 물론 갓 훈련소에 입소한 철없는 장정들은 끊임없는 불평불만을 표출했지만 지휘통제소(Command Post)의 총사령관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을 강하게 훈련시켰습니다.

 

훈련은 단순하였고 반복적이었습니다. 일사불란(一絲不亂, 한 오라기의 실도 흐트러짐이 없다!)하게 행군하는 일과 멈추어 전열을 가다듬고 휴식을 취하는 일이었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천지 창조 때 보여주셨던 패턴처럼 그들에게 일과 휴식의 균형 있는 리듬을 타며 광야생활을 즐기도록 훈련시킨 것입니다. 한 마디로 40년 동안 하나님은 그들에게 고스톱(Go-Stop)을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불행히도 그들은 고스톱(가다서다)의 묘미를 즐길 줄 모르고 그저 기계적 훈련으로만 알고 괴로워했던 셈입니다. 경지에 오르면 고스톱은 예술(art)이지 단순히 기술(skill) 습득에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나 그들이나 너무 늦게 배우게 되어서 참으로 유감입니다. 어쨌든 피할 수 없다면 즐기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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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전통에 따르면 모세오경의 넷째 권의 제목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칠십인경(LXX, 히브리어 구약성경의 헬라어 번역본) 전통에 따라 “민수기”(Numbers)라 제목을 붙였습니다. 민수기(民數記)는 전쟁에 나갈 수 있는 장정들을 계수한다는 뜻입니다. 다른 하나는 히브리어로 된 제목인데 “바 미드바르”(“광야에서”)입니다. 두 제목 모두 오경의 네 번째 책이 담고 있는 내용과 메시지를 다각도에서 암시하고 있는 징표들(signs)입니다.

 

Badlands National Park, South Dako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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