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일반(보통)은혜교리와 개혁신학 지형도   

 

I

 

일반(보통)은혜”(, De Gemene Gratie, algemene genade; , Common Grace) 교리는 네덜란드의 신학자들인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 18371920. 향년 83)나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 18541921. 향년 65)의 신학적 전통을 따르는 개혁파신학(Reformed Theology)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달리말해 개혁파신학을 말하면서 일반(보통)은혜에 관한 교리를 빼놓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일반(보통)은혜 교리는 무엇입니까? 간략하게 말하자면 세 가지로 축약될 수 있습니다. [참고로, 한국에선 Grace(Gratie, Genade)를 '은혜'로 번역하는데, 유별나게 Common Grace는 '일반(보통)은총'으로 번역합니다. 잘못 알아들으면 '은총'과 '은혜'가 다른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원어로 동일한 단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여기서는 '은혜'라는  용어로 통일합니다. 참고로 한국에서 "일반은혜"라고 통용되는 네덜란드 문구(algemene genade)는 "보통은혜"라고 번역하면 더 낫겠다는 강영안 박사의 제안에 따라 겸용해서 사용합니다] 

 

1. 하나님은 모든 죄인들을 향해 호의적인 태도를 갖고 계신다. 하나님은 자기가 만드신 모든 피조물에게 통상적으로 호의와 은혜를 나타내신다.

 

[“모든 죄인들에게라는 문구가 돋보일 것입니다. 특정한 부류에게만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른바 택함을 받은 자나 택함을 받지 못한 자 모두에게,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 모두에게 라는 말입니다.]

 

2.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지 않으면서도, 성령으로 인간사회에 죄가 퍼지는 것을 억제하신다. 따라서 인간 사회에서의 삶이 가능하게 된다.

 

[“죄의 억제라는 문구가 특징입니다. 동시에 중생한 사람, 거듭난 사람, 새로워진 사람이 아니더라도 하나님은 성령을 통하여 이 세상 안에서 악이 창궐하거나 편만하거나 마음대로 힘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억제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 사회가 미치지 않고 어느 정도 정상적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양심이나 혹은 국가의 법이나 제도와 같은 것을 통해 악이 억제되고 있다는 것이 좋은 예일 것입니다.]

 

3. 불신자인 죄인들의 경우라도 하나님의 영향력과 은혜로 말미암아 선한 행위를 할 수 있다. 이럴 경우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죄인들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지 않고도 이런 일이 가능하게 하신다.

 

[여기서도 중생, 거듭남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선한 행위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영향력과 은혜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일반은혜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참고로, "일반(보통)은혜" 교리에 관한 간략한 설명은 본 홈페이지 "신학"(Theology) 섹션 아래 9번째 글인 "장로교개혁신학의 특성들(10): 일반(보통)은혜에 관하여"라는 글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II

 

이 교리는 고통스런 역사적 흔적을 갖고 있습니다. 네덜란드와 미국의 개혁파 진영에선 오래전에 이 교리의 정당성에 관한 논쟁이 매우 치열했고 그로 인한 사상자들이 많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다치고 교회도 다치고 교단도 상처를 입었고 그 앙금은 아직까지도 남아있습니다. 그 아픈 상처의 흔적들이 불행하게도 한국교회(특별히 개혁파 전통의 장로교회)에도 스며들어 있음을 부인하지 못합니다. 위에서 예감하였겠지만 논쟁의 핵심은 은혜의 본질” “은혜의 본성에 관한 것입니다. “은혜란 무엇인가하는 본질적 질문에서 서로 의견이 갈라진 것입니다. 한쪽은 말하기를, 하나님의 은혜는 주권적이고 특별하고 따라서 선택받은 자에게만 제한되어 있다고 하였습니다. 또 다른 한쪽은 말하기를, 하나님의 은혜는 보편적이고 일반적이기도 하다. 따라서 어떤 의미에선 유기된 자(택함을 받지 못한 자)에게까지 확대된다고 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두 의견은 서로 등을 지고 각자의 길로 가게 된 것입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 논쟁은 개혁신학이 꽃을 피웠던 네덜란드 개혁교회와 네덜란드에서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으로 이민 와 정착한 미국의 개혁파 진영에서 열띠게 불이 붙었습니다. 미국 개혁파 교단(Christian Reformed Church)의 경우는 1924년 미시간의 칼라마주에서 열린 칼라마주 총회에서 일반은혜 교리에 대한 결정적 사건이 터지게 됩니다. 개혁교회에서 받아들이는 일반은혜 교리를 거절하고 부정하는 헨리 댄홉(Henry Danhof), 헤르만 훅스마(Herman Hoeksema), 조지 옵홉(George Ophoff) 목사들은 교단에서 축출되었고 그들은 결국 프로테스탄트 개혁교단(Protestant Reformed Churches in America. PRCA)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한편 네덜란드의 개혁파 교단(Gereformeerde Kerken in Nederland. GKN)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 카이퍼와 헤르만 바빙크의 신학적 후예라고 자처하는 네덜란드 개혁교단(GKN)의 목사들과 신학자들은 일반은혜 교리가 성경적으로나 신학적으로 옳지 않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일부의 목사들과 신학자들을 긴 논쟁 끝에 축출하게 됩니다. 이 논쟁의 핵심적 역할을 양쪽의 대표적 신학자를 들라면, 일반은혜 교리를 옹호하는 자유대학교의 교의학자 베르까우브르(Gerrit Cornelis Berkouwer, 19031996. 향년 93) 박사와 그와 대척점에 섰던 끌라스 스킬더(Klaas Schilder, 1890 1952. 향년 62) 박사였습니다. 결국 1944년에 스킬더 박사를 중심으로 신약신학자 시클 흐레이다누스(Seakle Greijdanus)와 몇몇 교수들이 네덜란드 개혁교단(GKN)에서 축출되었습니다. 그들은 그 논쟁에서 해방되었고 자유의 몸이 되었다는 의미에서 일명 해방파 개혁교회”, “자유파 개혁교회”(Gereformeerde Kerken Vrijgemaakt)라고 불렀으며 네덜란드의 중부에 자리 잡은 깜쁜(Kampen)이라는 자그마한 도시에 신학교를 세우게 됩니다.

 

III

 

흥미로운 사실은 깜쁜 도시엔 이미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교단신학교인 깜쁜신학교(Theologische Universiteit Kampen)가 있었는데 그곳에 동일한 이름으로 신학교를 세우게 된 것입니다. 학교가 헷갈리지 않기 위해서 사람들은 학교가 위치해 있는 길 이름으로 다르게 불렀습니다. 하나는 아우더스트라트(Oudestraat)에 있는 깜쁜신학교라 불렀는데 2004년에 깜쁜개신교신학대학(De Protestantse Theologische Universiteit. PThU)으로 개명했습니다. 이 학교 출신으로는 총신의 고 정훈택(신약), 최홍석(조직신학), 김지찬(구약), 한천설(신약), 이상원(윤리), 안인섭(역사신학), 김영욱(구약), 장신의 최윤배(조직신학) 교수, 독일 카셀의 홍성훈 목사 등이 있습니다. 한편 끌라스 스킬더 박사로 시작된 부르더벡(Broederweg)에 있는 깜뻔신학교는 자유파 혹은 해방파(Liberated, Vrijgemaakt) 신학교로 알려져 있는데 한국에선 고신교단과 신학적 연계성이 깊습니다. 이곳 출신으로는 고신신대원의 변종길(신약), 유해무(교의학), 고신대의 신득일(구약), 백석대학교의 김병국(신약) 교수, 고신 목회자인 임경근박사, 그리고 오래전 총신대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치신 원로 차영배 박사 등이 있습니다. 그후에 공부한 후배 박사들은 내가 잘 기억하지 못하므로 거명하지 못함을 양해바랍니다.

 

                                                                                   IV

 

깜쁜이란 도시는 중세 한자동맹에 속한 오래된 도시로 인구는 3만 5천정도의 고색창연한 소도시입니다. 게다가 들리는 말에 의하면 깜쁜이 네덜란드의 예루살렘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정도로 종교적 도시라는 것이지요. 게다가 그곳에 저명한 개혁파 신학교(깜쁜신학교)가 두 개나 있으니 그 분위기가 어떠한지 여러분도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로 유학을 간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이었습니다. 한국에선 예장 합동의 총신 출신이었던 나는 여러 후배들이 공부하고 있다는 깜쁜신학교(아우더스트라트)를 방문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암스테르담에서 깜뻔까진 자동차로 1시간 반 정도 거리였는데(아마 80-90킬로), 지도 한장을 펴들고 깜쁜까지 찾아 갔습니다. 요즘 같았으면 내비양의 도움을 받았겠지만 그 때는 그저 지도 한장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했습니다. 깜쁜 도시에 들어가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총신출신들이 주로 유학와서 공부하는 깜쁜신학교(아우더스트라트)와 고신 출신들이 주로 공부하는 깜쁜신학교(부르더벡)가 지도상에 나와 있기는 한데, 문제는 학교이름이 똑같다는 것입니다! 한 수퍼마트의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지도를 펼쳐들고 오가는 사람들에게 되지도 않는 네덜란드말로 어디로 가야 깜쁜신학교를 찾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알아듣는지 못하는지 상관없이 여러 사람들이 유창한 네덜란드말(!)로 대답을 해주는데 도무지 알아 들을 수가 있어야지요. 앞이 깜깜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어떤 중년의 여자분이 친절하게 지도 위에 손가락을 짚어가며 "여기가 당신이 찾는 학교입니다!"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꾸벅 허리를 숙여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차를 몰고 가니 겨우 3-4분 거리에 있는 아담한 골목길에 들어섰습니다.

 

찾아간 신학교는 아주 작고 아담했으며 고풍스러웠습니다. 주차를 하고 헐레벌떡 학교 건물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혹시나 후배 총신출신 한국 학생들을 만날 수 있을까 해서 도서관으로 들어갔습니다. 저만치 한국인의 얼굴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반갑고 기쁘던지! 그런데 내가 만나리라 기대했던 그 한국인 후배는 아니었습니다. 얼떨결에 그 한국학생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아주 어색한 순간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내가 일부러 작정하고 이 학교를 찾아온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은 25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그 때 초면에 만난 학생이 지금은 고신대에서 구약을 가르치고 있는 신득일 목사였습니다. 당시 신 목사는 깜쁜신학교에서 구약학 독두란두스(Drs.) 과정을 이수하고 있었는데, 초면인 나를 보자마자 정말 해같은 환한 얼굴로 반겨주었습니다. 부산 출신의 신목사님은 특유의 갱상도 사투리를 써가며 친절하게 학교 구석구석을 안내해 주었습니다. 환대의 힘은 초면의 서먹함을 햇살에 눈녹듯 녹게 해주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솔직히 내가 찾아가려던 신학교는 다른 깜쁜신학교(아우더스트라트)였지만 시치미를 떼고 이곳 신학교(부르더벡)를 방문하러 왔다고 부득이 거짓말을 하면서 당황스런 위기를 벗어났습니다. 친절과 환대로 가득한 신득일 목사는 학교의 역사와 건물과 교수들에 대해 소개해주었습니다. "신 목사님, 이 자리를 빌어 그 때 거짓말한 것을 고백하고 용서를 빕니다! ㅎㅎㅎ" 

 

점심 식사 때가 가까이 오자, 신 목사는 내 팔을 잡아당기며 꼭 식사를 하고 가라고 간청하였습니다. 고맙고 고마운 나머지 나는 얼떨결에 그러겠노라 하고, 신 목사는 자건거로 나는 차로 신 목사의 집으로 갔습니다. 아마 집에 계신 사모에게 특별한 손님이 오신다고 미리 이야기를 했는지 식탁에는 삼계탕이 올려져 있었습니다. 사모님께서 음식을 정성껏 준비해 놓고 우리를 기다린 것입니다. 힘든 유학생 생활에 이런 진수성찬을! 지금 생각해도 미안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나에게 불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유인 즉, 헐.. 나는 삼계탕을 전혀 못 먹기 때문이었습니다. (베드로의 후계자로 자칭하는 나는 옹기속에 살포시 쭈구리고 앉아 있는 삼계탕을 바라볼 때마다 주님을 배반했던 기억이 되살아나 도저히 삼계탕을 먹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 클린조크). 어쨌든 차려주신 삼계탕에 대해 극진한 찬사와 고마움을 표하면서 나는 즐겁고 행복한 표정을 지으면서 꾸역꾸역 삼계탕을 입에 한조각씩 찢어 쑤셔 집어 넣고 꿀꺽 삼켰습니다. 식탁 대화에서 신목사님은 여러번 나에게 자기가 다니는 깜쁜신학교를 찾아주시고, 또한 자기와 같은 후배를 찾아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또 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나는 그 대로부터 신 목사님을 좋아하게 되었고 지금도 깊은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일반(보통)은혜 교리 때문에 교단이 갈라지고 깜쁜에 동일한 이름의 신학교가 두 군데 있게 된 사건은 오히려 나에게 고신에 귀한 친구를 하나 만들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손님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한 이들로 있었느니라!"(히 13:2) 물론 내가 천사라는 말은 아니고! 

 

네덜란드의 자그만 도시 깜쁜에 동일한 이름의 두개이 깜쁜신학교가 있다는 사실은 여러가지 웃지 못할 유머들을 남겼습니다. 그 중 하나입니다. 어느 날인가 내 학위 논문 지도 교수님과 함께 네덜란드 구약학회에 참석한 일이 있었습니다. 네덜란드 여러 국립대학의 신학부에서 오신 구약학 교수들과 티를 들면서 서로를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 때 우연히 인사를 나누게 된 교수님이 있었습니다. 초면이었던 관계로 내가 그분에게 어디서 가르치냐고 물었습니다. 그분이 웃으면서 깜쁜신학교라고 대답을 하면서 하시는 말이 정말 일품이었습니다. "네덜란드에선 깜쁜을 네덜란드의 예루살렘이라고 부릅니다. 이에 대해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결정되지 않는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대답이 궁금했던 나는 "그게 뭡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분이 하시는 말, "깜쁜이 네덜란드의 예루살렘이긴 한데, 어느 곳에 야웨의 보좌가 있는 지성소가 있는지는 아직도 격렬하게 논쟁 중입니다!" 동일한 이름의 신학교가 서로 정통성을 주장하고 있다는 유머러스한 이야기였습니다. 그 교수는 아우더스트라트에 있는 깜쁜신학교의 구약학 교수 드 무어(J. C. de Moor)박사로 미국 캘빈 신학교의 내 동기동창인 William Koopman(Joshua 24 As a Poetic Narrative의 저자)과 총신에서 구약학을 가르치는 후배 김지찬 교수의 학위논문 지도 교수였습니다.       

 

V

 

이제 이야기를 마치려 합니다. “일반(보통)은혜교리라는 주제를 통해서 개혁파의 신학적 지형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이 흥미롭지 않습니까? 같은 개혁파 안에서도 서로 다른 집을 짓고 살고 있다는 것 역시 흥미롭습니다. 그렇다면 거의 한 세기가 지나가고 있는데도 이 논쟁으로 인해 아직도 서로 얼굴을 붉히고 있을까요? 세월이 한참 지난 후 어느 날 베르까우브르 박사(내가 네덜란드 자유대학에서 공부할 당시 90세가 되는 베르까우브르 박사(사진1)가 한 시간을 서서 강연하는 모습에 놀란 적이 있었다) 는 오래전에 있었던 개혁교단의 분리에 대해 아쉽게 생각하며 자신이 끌라스 스킬더 박사(사진2. 엽궐련 cigar담배를 물고 있는 모습에 놀랄 분들도 있겠지만, 네덜란드 사람들은 17세기에 해상무역으로 전세계를 석권하던 시절에 시가 Cigar 교역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Cigar담배의 이름들 중에 Dutch Master니 Flying Dutch니 하는 것도 있습니다. 네덜란드 크리스천들에게 흡연은 아디아포라 ἀδιάφορα, indifferent things의 문제였기 때문에 흡연이나 간단한 음주는 교회에서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건강상의 이유로 금연과 금주를  권하게 된 것입니다)를 너무 심하게 모퉁이에 몰아세운 것에 대해 깊이 후회한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물론 일반(보통)은혜 교리를 포기한다는 말은 아니었습니다.

 

[참고로 베르까우브르 박사는 20세기가 낳은 위대한 개혁파 신학자인 칼 바르트의 방대한 교의학 저서에 버금가는 교의학 저서를 출판했는데, 네덜란드어로 된 19권의 교의학총서(Studies in Dogmatics)가 그것입니다. 이 책들은 모두 13권 전집으로 영어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옛날 미국 캘빈신학교에서 공부할 때 조직신학의 교과서로 루이스 벌콥과 베르까우브르의 책을 사용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베르까우브르의 방대한 조직신학책들은 루이스 벌콥의 책과는 달리 교리를 설명하기 위해서 관련된 성경본문을 개혁주의 전통의 해석 방식에 따라 자세하게 주석하고 있는 성경주석적 조직신학의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참고로, 총신의 서철원 박사는 베르까우브르의 제자이며 후임자인 자유대학교 신학부의 조직신학자 얀 페인호프(Jan Veenhof) 밑에서 학위를 했습니다.]

 

미국 개혁교단의 경우도 1924년 칼라마주총회에서의 논쟁으로 인한 교단 분열에 대해 깊은 아쉬움을 표하면서도 일반은혜 교리에 대한 입장은 그대로 유지할 뿐 아니라, 그 교리 위에 일반학문의 강화와 신학의 공공성과 사회성에 대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최근에 아브라함 카이퍼의 공공신학(Public Theology)에 관련한 책, 예를 들어 그의 일반(보통)은혜론이 영어로 번역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추세의 일환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교리논쟁은 때론 학문적 영역에선 피할 수 없는 일이기 하지만 그 일로 인해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자매가 된 사람들 속에 미움과 증오 혹은 자기 의나 교만이라는 독소가 퍼지도록 허락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교리가 사람을 구원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을 받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은혜는 특별은혜를 가리키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어쨌든 일반(보통)은혜교리 유감(有感)이었습니다.

 

[베르까우브르 박사와 스킬더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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