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종말론적 중앙공원

 


각 나라들마다 회색 도시들의 허파에 신선한 산소를 제공해 주는 중앙공원(Central Park)들이 있습니다. 삶에 지친 도시의 직장인들, 사랑에 빠진 연인들을, 인라인스케이트를 즐기는 틴에이저들,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하는 중년의 부인들, 지팡이나 휠체어에 의존하는 노인들을, 손자들을 데리고 산책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들, 캔버스위에 환상을 옮겨 그리는 화가들, 건강한 몸매 만들기를 위해 조깅하는 젊은이들, 거리의 악사들을 위한 공간입니다. 그뿐 아니라 우람한 나무를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다람쥐, 연못에 둥지를 틀고 사는 수달들, 작은 호수를 마음껏 유영하는 물고기들, 울창한 숲 사이를 소리 내며 나는 이름 모를 새들, 잔디 위를 풀쩍거리는 메뚜기들, 온갖 풀벌레들을 위한 공원입니다.

 

우리 삶에도 그런 중앙공원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듭니다. 그곳에 가서 마음껏 웃고 울고 뛰고 걷고 앉고 쉬는 안식처 말입니다. 그곳을 우리는 성소”(sanctuary)라고 하던가요? 피난처와 대피소, 야생보호구역, 쉼과 힘을 얻을 수 있는 안식처를 성소라고 하지 않던가요? 이미 주님은 우리에게 자기의 가슴을 열어 성소를 만들어주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 11:28)

 

우리의 삶에 그런 중앙공원이 필요하다면, 그래서 그런 중앙공원에서 삶의 의미와 기쁨을 발견하였다면, 이제 우리 역시 누군가에게 중앙공원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직장동료들에게, 동료 크리스천들에게, 이웃에게, 가까운 사람들에게, 멀리 있는 사람들에게, 아들과 딸과 아내와 남편과 부모에게, 그리고 사회와 민족에게 청정 산소를 공급해주는 중앙공원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것이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유가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이유는 그가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이 되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까? 누군가에게 복이 되라고 그리스도인들을 자신의 자녀로 부르신 것입니다(12:1-3).

 

장차 인종과 신분과 피부색과 성별과 지연과 학연의 경계선을 넘어 모두가 손에 손을 잡고 중앙공원을 거닐며 즐거워할 날이 올 것입니다. 이것이 구약의 예언자들이 꿈을 꾼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은 나뉘고 분열하고 집단적 이기주의로 뭉친 이 세상에 대항하는 대안세상입니다. 구약의 예언자들은 장차 모든 사람들이 종말론적 예루살렘의 중앙공원에서 샬롬을 누리게 되는 날의 도래를 꿈꾸었던 환상가들이었습니다.

 

주전 8세기의 예언자 아모스가 본 환상을 상상해 보십시오.

 

보라 날이 오고 있다. 그 때에 파종하는 자가 곡식 추수하는 자의 뒤를 이으며 포도를 밟는 자가 씨 뿌리는 자의 뒤를 이으며 산들은 단 포도주를 흘리며 작은 산들은 녹으리라. 야웨께서 자기 백성 이스라엘이 사로잡힌 것을 돌이키리니 그들이 황폐한 성읍을 건축하여 거주하며 포도원들을 가꾸고 그 포도주를 마시며 과원들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리라.” (9:13-14)

 

주전 8세기의 예루살렘의 예언자 이사야가 꿈꾸던 세상의 환상을 상상해 보십시오.

 

장차 사람들이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는 날이 도래하리라.”(2:4)

 

주전 6세기 후반 격랑의 시대를 살았던 예언자 스가랴의 환상은 더더욱 감동적입니다. 그에 따르면 장차 새롭게 회복될 예루살렘 도시 한 가운데 멋진 중앙공원이 조성될 것이며, 그 공원에 남녀노소 불문하고 평화롭게 활동하며 유유자적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들어보십시오. 아니 눈을 감고 그려보십시오.

 

예루살렘 광장에는 다시, 남녀 노인들이 한가로이 앉아서 쉴 것이며, 사람마다 오래 살아 지팡이를 짚고 다닐 것이다. 어울려서 노는 소년 소녀들이 이 도성의 광장에 넘칠 것이다.” (8:4-5)

 

이 보다 더 멋진 광경이 어디 있겠습니다. 억울함과 불의가 사라지고 그 대신 정의와 공평이 깃들을 것이며, 전쟁과 다툼과 분열은 평화와 평강으로 대체될 세상의 도래입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하단 말입니까? 예언자 스가랴는 야웨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여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내가 시온으로 돌아왔다. 내가 예루살렘에서 살겠다. 예루살렘은 '성실한 도성'이라고 불리고, 나 만군의 주의 산은 '거룩한 산'이라고 불릴 것이다.”는 것입니다. 즉 예루살렘 도시에 위대한 왕의 귀환이 있을 것이고, 그 대왕께서 온 나라에 평강을 하사하시며 수도 예루살렘 중앙에 누구든지 누리고 즐길 수 있는 대형 시민 공원(Public Park)을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여, 이런 세상이 오기를 기대해봅시다! 종말론적 희망의 끈을 놓치지 마십시다. 왕의 귀환을 기다립시다. 예루살렘의 중앙공원에 모여 기쁨의 함성을 지를 날을 기다려 봅시다. 대림절(Advent)이 저만치 모퉁이를 돌아오고 있습니다! 왕이여, 만세수 하시옵소서!


[Central Park at New York City, USA]

뉴욕Central Park.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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