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1.25 13:21
"하나님의 선택과 우리의 믿음"
시간을 내어 시편 139장을 읽어보십시오. 그 가운데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눈은 어머니의 태속에서 아직 사람모양을 갖추지 않은 우리의 모습을 보고 계셨다고 말합니다. 우리에게 할당된 날들이 우리에게 오기 이전에 그 날들이 하나님의 책에 기록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다른 말로, 여러분과 나는 그저 어쩌다 우연히 생겨난 존재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우리의 부모님으로부터 태어나기는 했지만, 실제로 우리는 영원으로부터 온 존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생각과 뜻에서부터 나온 존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마음 안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마치 “야경꾼”(Night Watcher)이란 대작이 이미 렘브란트의 마음속에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가 캔버스에 그의 대작을 그리 전에 이미 그의 마음속에 그 그림이 있었던 것처럼, 여러분과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오래 전 이미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속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숨을 죽여 들어야 할 말씀은 이것입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어찌 여러분과 나를 생각하지 않으시고 어찌 사랑하지 않겠습니까하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셨다는 뜻입니다. 몇 명을 지옥에 보내고 몇 명을 천국에 보낼 것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이라고 생각하신다면 그건 사실도 진실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에 관한 좋은 이야기가 누가복음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신만만한 베드로, 모든 사람이 주님을 버리더라도 자기만은 끝까지 주님을 따르겠노라고 호언장담했던 베드로, 스스로에게 감동을 받았던 베드로, 그에게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해 보십시오. “시몬아, 시몬아, 사탄이 너를 밀 까부르듯이 까부르려고 너를 청구했단다. 그러나 나는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해달라고 너를 위해 기도해왔다”(누가 22:31-32). 예수를 향한 베드로의 격정적인 헌신과 열정 때문이 아니라 베드로를 향한 예수님의 끊임없는 헌신과 애정 때문에 베드로의 믿음의 떨어지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달리 말해 베드로가 예수님이 붙잡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오래 전부터 베드로를 붙잡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예는 하나님의 선택(“하나님이 나를 붙잡으셨다”)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선택 교리"를 믿는다는 것은 다음과 같이 신앙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 하나님이 나를 붙들고 계시기 때문에 나는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 하나님이 나를 영원부터 사랑하고 계시기 때문에 나는 결코 무시되거나 경멸받지 않는 것이다.
․ 하나님이 먼저 나를 아시고 내 이름을 생명책에 기록해 놓으셨기 때문에 나는 결코 버림받지 않을
것이다
이 사실을 알 때, 다시 말해,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 선택의 책에 기록되었다는 것을 알 때, 우리는 모든 인간적인 이해를 넘어서는 진정한 평화(샬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이란 내가 그분을 붙잡으려고 애를 쓰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나를 붙잡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를 점지하시고 우리의 이름을 부르시고 우리를 붙들고 계시다는 성경의 가르침 - 이것이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을 풀어 설명한 것입니다 - 은 우리에게 가장 강력한 용기와 희망을 주며, 또한 이 세상에서 우리의 삶과 인생이 흔들리거나 요동치지 않게 하는 영혼의 닻(anchor)입니다.
[미시간 호수의 겨울 석양 풍경, Bellaire, M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