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신학 박사 학위 표기 유감”

2014.12.11 11:10

류호준 조회 수:5891

신학 박사 학위 표기 유감

- Ph.D인가 Th.D인가, 이게 문제로다! -

 

 

신학대학원에서 일하다보니 학생들의 향학열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특별히 배움에 대한 열정은 종종 나이가 든 학생들의 경우가 더 많습니다. 철이 들었다고나 할까? 늦바람이 난 셈이지요. 뭔가를 알아가는 즐거움, 발견의 즐거움, 그리고 놓았던 공부를 다시하게 되었다는 설렘, 늦은 밤까지 머리 싸매가며 대학생 자녀들과 함께 경쟁하며 공부합니다. 괴롭지만 즐거운 시간들입니다.

 

신학분야에서 가장 힘들고 고단하지만 가장 중요한 과정이 목회학 석사(M.Div)과정입니다. 보통 3년인데 신학전반을 다 배우는 과정이므로, 신학으로는 학부과정에 해당합니다. 이미 대학을 마치고 신학대학원에 들어왔기 때문에, 석사학위를 수여하기는 하지만 신학으로는 학부과정의 고단한 단계입니다. 신학의 기초를 놓는 아주 중요한 과정이지요. 신학의 다양한 분야를 다 섭렵해야하니 3년도 짧습니다. 구약학. 신약학. 조직신학, 교회역사를 비롯하여 예배, 설교, 교회교육, 목회상담, 선교 등을 포함하는 실천신학 등 배울 것이 너무 많습니다. 이렇게 3년을 공부하면 비로소 목회자가 될 수 있는 기본적 틀을 갖추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물론 제대로 성실하게 이 과정을 마쳤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개인적으로도 나는 내가 이수한 M.Div 과정을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기초와 골격과 틀을 세우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허술한 사람들은 그 이상의 학위들을 덕지덕지 많이 붙여도 모래 위에 세운 집과 같습니다. 특별히 한국에서 각 신학대학원은 M.Div 과정을 철저하게 교육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내가 생각할 때 목회학 석사(M.Div)이상의 학위는 목회할 때 필수적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요즘 많은 학생들이 목회학 석사 이상의 학위 프로그램에 진학하려고 합니다. 배움에 대한 열정은 다시금 찬사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선생으로서 걱정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신학석사(Th.M)나 신학박사(Ph.D & Th.D)의 학비가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재정적 능력이 있어서 공부를 더하겠다고 하면이야 말릴 이유는 없지만, 그래도 선생으로서 제자들에 대한 미안스러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하겠다면 할 수 없지요. 재정적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지적 연구능력의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박사학위 프로그램에 들어가겠다는 것은 전공하려는 분야의 특정한 주제를 심도 있게 파고들어 다른 사람들이 가지 않은 길로 들어서겠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열정적이고도 치밀한 학문적 지적 추구심이 없이는 가지 않는 게 좋을 것입니다. 단순히 강의만 듣는 것이 아니라 나름 전공분야의 학문적 방법론을 터득하고 그에 따라 연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느냐를 점검해야합니다. 이것이 아카데믹 학위(Academic degree)입니다.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좀 더 실용적이고 실제적인 전문가 학위(Professional degree)를 시도하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카데믹 학위는 특정분야에서 학문적 업적을 남기고 교수요원으로서 한 평생 그 길로 걸어가겠다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학위이겠습니다. 물론 배움 자체가 좋아서 공부하겠다면이야 누가 뭐라지 않겠지만, 교수나 전문적 학자가 될 생각이 없다면 굳이 아카데믹 학위 프로그램에 진학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신학의 경우를 놓고 보자면, 목회학 석사를 마친 분들에게 굳이 상급 학위 프로그램을 추천한다면 나는 전문가 학위 프로그램을 추천합니다. 목회학 석사를 마친 학생들은 바로 목회현장에 나가서 일하는 것이 옳다고 보지만, 혹시라도 목회 사역을 위해 더 공부하겠다면 전문가 학위 프로그램을 추천한다는 말입니다. 신학에서 아카데믹 학위는 종종 영어로 Ph.D 학위를 수여하고 전문가 학위는 종종 Th.D 학위를 수여합니다. 이런 학위 구분은 영어권 특별히 미국식 전통입니다. Ph.DDoctor of Philosophy의 약어인데 문자적 번역은 철학박사입니다. 그러나 그런 뜻은 아닙니다! Ph.D는 박사에 대한 일반적 호칭(generic term)일뿐입니다. 따라서 Ph.D는 한국어로 학문적 박사라는 뜻일 뿐입니다. 이것을 철학박사라고 하는 것은 무지의 소치입니다. 예를 들어 생물학으로 박사를 취득했을 경우 Ph.D in Biology라고 합니다. 종교학으로 박사를 취득 경우도 Ph.D in Religion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누군가 Ph.D를 취득했다면 그저 박사가 되었다는 뜻이고, 특별히 그가 전공한 분야의 박사라는 뜻입니다.

 

한편 미국식 전통으로 Th.D가 있습니다. 말 그대로 Doctor of Theology입니다. 신학박사입니다. 매우 구체적인 학위 명칭입니다. 그런데 미국에선 많은 경우 이 학위가 신학분야의 전문 학위입니다. 예를 들어 하버드 신학대학원에서 전문분야로 학위를 했을 경우 Th.D를 수여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 학위가 다른 대학에서 수여하는 Ph.D보다 낮다는 말은 아닙니다. 오히려 더 쳐줍니다. 하버드 학위이기 때문입니다. 매우 학문적인 학위입니다. 한편 미국에선 일반적으로 Th.D는 전공분야를 하나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분야와 접목시켜서 융합적으로 공부하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구약이나 신약이나 조직신학을 실천신학과 함께 연결하여 박사학위논문을 쓰면 Th.D를 수여합니다. 어찌 보면 한 분야만을 파고들었다는 뜻에서 Ph.D는 아니지만 두 학문간 융합을 했기 때문에 Th.D를 수여하는 것입니다. 어쨌든 한국에선 미국식 학제의 과도한 영향 때문에 Th.DPh.D보다 낮게 평가하는 생각이 많습니다.

 

그러나 유럽으로 가면(남아공도 포함) 상황은 전혀 달라집니다. 유럽에선 Th.DPh.D보다 더 상위 학위처럼 높게 평가합니다. 매우 위엄이 있는 학위입니다. Th.D는 말 그대로 신학박사입니다. 하나님에 관한 학문을 전공해서 받은 학위니 얼마나 압권입니까! 한편 유럽에선 Ph.D는 말 그대로 철학박사입니다. 특정한 학문 분야인 철학을 전공해서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뜻입니다. 영미 권에서 Ph.D가 일반적인 의미의 학문박사라는 뜻이라면 유럽에서 Ph.D는 말 그대로 철학박사입니다. 반면에 유럽에선 Th.D는 신학을 학문적으로 심도 있게 공부하여 취득한 학위를 뜻하며, 자랑스럽게 신학박사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신학교수들 가운데, 영어권에서 학위를 한 사람들은 Ph.D라고 적습니다. 이 학위는 철학박사가 아니라 신학박사라는 뜻입니다. 한편 유럽이나 남아공에서 학위를 한 사람들은 Th.D 혹은 D.Th. 라고 적고 신학박사라고 읽습니다.

 

어쨌든 한국에서 외래식(영어) 학위 표기 때문에 혼란스럽거나 마음에 갈등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 글을 통해 약간의 위로가 있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백석대학교 기독교전문대학원 박사 과정에 입학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위의 글을 곱씹어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가급적 Th.D 프로그램에 지원을 하고, 유럽식 자부심(!)도 함께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 미시간 겨울호수, Frankfort, MI]

Frankfort, MI.jpg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류호준 교수의 무지개성서교실이 http://www.rbc2020.kr 로 리뉴얼하여 이전합니다. 류호준 2020.08.24 4397
공지 "무재개 성서교실은 여러분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5] 류호준 2018.03.29 2928
649 신학 에세이: “죽음, 낯선 친구” file 류호준 2018.02.26 842
648 신앙 에세이: “순결한 마음” file 류호준 2018.02.26 837
647 평신도를 위한 성경공부: “베드로의 투옥과 교회의 간절한 기도” file 류호준 2018.02.22 786
646 신앙 에세이: “비움과 채움의 리듬” file 류호준 2018.02.17 900
645 클린 조크: 끔찍한 용어들, 그 맛을 잃다! file 류호준 2018.02.14 542
644 평신도를 위한 성경공부: “그리스도인, 영광스런 호칭” 류호준 2018.02.14 549
643 신앙 에세이: “헤어짐은 언제나 낯설어요!”(목회 일화 3) [2] file 류호준 2018.02.12 1480
642 신앙 에세이: “주소지가 잘못된 겸손”(체스터톤) file 류호준 2018.02.03 529
641 신앙 에세이: “슬픔을 짊어지는 사람” [1] file 류호준 2018.01.29 2463
640 일상 에세이: “50년 만에 피는 야생화” [4] file 류호준 2018.01.25 738
639 평신도를 위한 성경공부: “같은 그리스도인들끼리 다투지 마세요” file 류호준 2018.01.24 508
638 “고대 이스라엘의 정치” (Norman K. Gottwald) file 류호준 2018.01.24 621
637 다니엘의 펀치 라인: "세개의 단상" 류호준 2018.01.23 418
636 평신도를 위한 성경공부: “고넬료 집에서 일어난 일” 류호준 2018.01.17 529
635 특강요약: “마음의 습관” file 류호준 2018.01.15 719
634 시: "빨래줄"(Clothesline) [1] file 류호준 2018.01.13 1984
633 신앙 에세이: “누가 알아듣겠나? 누가 이해하겠나?” 류호준 2018.01.13 531
632 클린조크: "하나님의 손 가방" 류호준 2018.01.06 524
631 신학 에세이: “가슴(심장)으로 성경을 읽다!” [1] 류호준 2018.01.06 711
630 신앙 에세이: "울지마 주안아!" (목회 일화2) 류호준 2018.01.04 1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