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대한민국호의 고질병 (2)

- “빨리빨리 문화” -

 

 

세월호 침몰사건과 같은 대형 사고가 터지면 가장 바쁜 사람들 중에 언론기자들이 있습니다. 어느 방송의 어느 기자가 제일 먼저 그 사건을 보도하느냐에 따라 그의 업무능력은 높이 평가될 것이고 근무평가에 높은 가산점을 받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이번 세월호 사건을 보면서 역시 우리나라에선 빨리빨리라는 것이 얼마나 한국인의 몸속에 배인 유전인자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대형사고가 나면 우리나라에선 보통 속보”(速報), 혹은 급보”(急報)라고 합니다. 모두 빠르다는 의미를 지닌 용어들입니다. 한편 외국에선(영어권) 이런 뉴스를 “Breaking News”라고 합니다. 일상의 흐름을 깨뜨리는 뉴스라는 뜻이지요. 이런 의미에서 특보”(特報)에 해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세월호 사건은 특보일 수는 있어도 속보이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속보를 내다보니 정확성을 확인하기가 힘듭니다. “신속정확해야 하는데도 이번 세월호 사건을 취재한 뉴스매체들은 대체로 빨리빨리의 무의식적 발동 때문에 사건의 정확도와 현장의 슬픔은 뒤로 한 채 타사보다 먼저 특종보도를 위해 허접한 소식을 무책임하게 올리고 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것을 보고 베끼기 일쑤이니 그 파급은 일파만파로 번집니다. 이런 비전문가적이고 유치한 보도경쟁에서 결국 유가족들과 국민들은 깊은 상처를 입게 되었습니다.

 

이미 외국에선 한국 사람들의 빨리빨리라는 단어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시장거리의 상인들, 이집트의 시내 산자락의 베두인들, 요르단의 페트라의 노점상들, 혹은 터키의 파묵칼레나 갑바도기아의 장사하는 사람들은 한국인 관광객들 어깨너머로 빨리빨리라는 말을 제일 많이 들어 안다고 합니다. 아마 빨리빨리라는 단어는 대한민국인의 사고와 행동의 기호학적 용어가 되었습니다.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하던 무리들도, 식당 종업원들도, 다그치는 직장 상사도, 가르치는 선생이나 교수들도, 자전거를 타는 어린아이들도, 입시학원의 속성반도, 길게 늘어선 경부고속도로에서도, 모두 빨리빨리입니다. 심지어 신학교에서도 빨리빨리 속성으로 졸업시켜 빨리빨리 목사 안수를 주는 이상한 곳들도 많이 있습니다.

 

인생은 얼마나 빨리 가느냐가 아니라 그렇게 빨리 가봐야 죽는 일 밖에 뭐가 있겠습니까? - 제대로 방향을 잡았느냐가 중요한데도 말입니다. “빨리빨리라는 단어는 한국 사람의 입에 강력 접착제로 붙어있습니다. 다그치고 재촉하고 몰아치고 밀어 붙입니다. 이러다 보니 인간관계는 언제나 무례하기 일쑤입니다. 무례한 한국인! 남이 뭐라 하든 상관없습니다. 내가 제일 먼저 빨리 가면 됩니다. 이것이 사람들을 무례하게 만듭니다.

 

물론 빨리빨리정신이 우리나라를 세계 제일의 일류 정보기술(IT, Informational Technology) 강국으로 만들었는지 모릅니다. 세계에서 인터넷 속도가 가장 빠른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한국에 있다가 잠시라도 외국에 나갈 기회가 있으면, 그 나라가 얼마나 답답한지 모릅니다. 우리나라에선 자동차가 고장이 나면 당장 달려와 정비소에 입고시키고 웬만하면 그날 고쳐 되돌려 줍니다. 외국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몇 날 며칠을 기다려야 합니다.

 

어쨌든 빨리빨리는 사람의 성격을 급하게 만들어 참을성 없는 동물적 인종으로 퇴화시킵니다. 마치 분초를 다투는 광속의 카레이스에 참예한 선수들처럼 모든 한국인들은 출발 신호등에서 서서 초록색 불이 들어오기를 노려다 봅니다. 일단 달리면 최고의 속도를 냅니다. 굉음을 내며 악세레터를 밟습니다. 누군가 끼어들거나 나보다 앞서면 견딜 수 없어 합니다. 죽음의 레이스를 펼치는 것입니다. 그렇게 빨리 가 봐야 죽는 일 밖에 뭐가 있다고 그렇게 다그치고 몰아치는지 모르겠습니다. 성공주의의 환상에 이끌려 죽음의 속도전을 치르는 것입니다.

 

이제 대한민국사람들이여, 좀 천천히 걸어갑시다. 느려도 됩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걷는 훈련을 합시다. 천천히 걸으면서 푸른 하늘의 광대함도, 길가에 핀 이름 모를 야생화의 아름다움도, 황혼녘 일몰의 장엄함도, 연인들의 속삭이는 사랑의 다정함도, 고단한 나그네의 설움도, 자녀를 잃은 어머니의 애끓는 심장의 터짐도 함께 느끼면서 걸어봅시다. 오늘따라 루이스 암스트롱의 이 얼마나 멋진 세상인가!”(What a Wonderful World!)라는 노랫말이 그의 트럼펫 소리와 함께 귀에 깊숙이 익어옵니다. 문화란 우리가 들이마시는 공기와 같습니다. 빨리빨리 문화는 이산화탄소로 가득한 치명적 공기입니다. 우리에겐 천천히 산소가 필요합니다.

 

이 글도 제발 빨리빨리 읽지 마시고 천천히 읽으세요. ㅋㅋㅋ

 

[박정현 사진 작가의 사진. 천천히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박정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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