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친구 하덕규 이야기”

 

 

살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고 친구 관계를 맺는다. 직장 친구, 학교 친구, 교회 친구, 동아리 친구, 취미 친구, 심지어 소셜 네트워크에서 만난 페북(Facebook) 친구 등 다양할 거다. 다양한 이유와 형편과 상황 때문에 맺어지는 경우가 많다. 어느 경우는 자발적으로, 어느 경우는 마지못해 어쩔 수 없이, 어느 경우는 외부적 압력에 의해 맺어진다. 그러나 모든 친구가 다 진정한 친구는 아닐 거다.

 

내게 있어서 사귀거나 꼭 만나고 싶은 친구가 있다면 영혼이 맑은 사람이다. 자신의 영혼에 대해 진솔하고 투명한 사람,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넉넉한 사람, 세상의 부조리와 모순에 대해 온 몸으로 고통하며 괴로워할 줄 아는 사람, 이 세상에는 결코 정글의 법칙만 존재하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즐거워 할 줄 아는 사람, 모든 것이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기를 소망하는 사람,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눈망울이 그렁그렁하고 영원한 세상을 생각하면서 무엇인가 목구멍으로 뭉클하게 넘어가는 것이 있음을 느끼는 사람, 하늘의 무지개를 보며 가슴이 뛰는 사람, 흐르는 강물에서 추억을 담아 노래할 줄 아는 사람… 이런 사람을 나는 그리워한다. 이런 사람을 떠 올릴 때마다 친구 하덕규가 생각이 난다.


내 친구 중에 시인과 촌장으로 더 알려져 있는 가수 하덕규가 있다. 물론 일상적인 의미에서 친구는 아니지만 그래도 서로가 서로를 잘 알고 싶어 하는 그런 친구다. 그는 노래하는 가수라기보다는 노래하는 시인, 음유시인(吟遊詩人)이라 불리는 편이 더 나을 것 같다. 언제나 가난한 마음을 담아 풍경을 그려내듯 노래하는 시인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미시간의 한 겨울 설국(雪國)에서 그의 ‘가시나무’, ‘풍경’, ‘자유’, ‘쉼’, ‘숲’, ‘집’, ‘한계령’, ‘길’, ‘돌아 가야할 때’, ‘사랑일기’ ‘다리’, ‘뿌리’, ‘별’ 등 주옥같은 노래들이 소리 없이 내리는 함박눈처럼 살포시 들려오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며칠 전에 있었던 일 때문이다.


그는 나와 함께 같은 학교에서 일하는 실용음악과 교수다. 작년 10월경 그는 오랜 세월의 뒤안길에 목사님이 되셨다. 내가 지은 책『순례자의 사계』를 그에게 헌정할 때 즈음이었다. 그러던 그가 성탄절 즈음에 내게 전화를 했다. “목사님, 이번 주일에 교회를 방문해도 되겠습니까?” 나를 만나고 싶다는 전화였다. 아무 생각 없이 “물론이오. 어서 오세요.”라고 답했다. “잠시 들릴게요. 그런데 오후예배가 몇 시죠?” “오후 2시입니다. 이왕 오시는 길에 특별 찬송을 해주시면 안 될까?” “예, 그러지요.” 망설임이나 사양이나 거절도 않고 긍정적으로 대답해주는 그가 언제나 고마울 뿐이다. “고맙고… 그럼 모레 오후 2시에 보지요.” 이것이 오고간 이야기 전부였다. 나는 왜 그가 이 시점에 나를 찾아오겠다고 했는지 생각해 보지 않았다. 나중에 이렇게 대답한 내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몰랐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는 이틀 뒤 주일 오후에 교회로 나를 찾아왔다. 평소와 같이 우리는 서로를 포옹하였고 서둘러 교회당 안으로 들어갔다. 마침 오후 예배는 지난 4년 동안 나와 함께 사역했던 두 명의 부목사들이 이임하는 송별 예배였다.

 

간단한 설교 후에 하덕규 교수를 교인들에게 소개했다. 강단에 올라선 그의 얼굴에는 애잔한 슬픔이 있었지만 나는 그것이 그의 트레이드마크 정도로만 생각했다. 하모니카를 입에 물고 통기타를 들고 사슴의 눈빛으로 청중들을 바라보며 ‘풍경’을 부르기 시작했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은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서정적이고 회화적인 가사와 함께 감미로운 그의 목소리가 자그마한 교회당 안을 포근하게 감쌌다. 마치 눈을 지그시 감은 채로 친한 사람들끼리 어깨 위로 팔을 넌지시 얹고 듣는 소박한 콘서트에 온 느낌이었다. “그렇지, 너무도 분주하고 각박한 세상이야, 모든 것이 뒤틀리고 일그러져 있는 세상이야. 인간관계로부터 사회의 구조로부터 피조물들의 고통에 이르기까지 이 세상은 너무도 시달리고 있어. 언제나 진정한 평화가 올까? 언제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지으신 원래의 상태로 돌아갈까?”하고 나는 중얼 거렸다.

 

그는 노래 사이에 자신의 삶에 대해서, 가족에 대해서, 세상살이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여든이 훌쩍 넘어선 미국에 계신 어머니의 치매에 관한 이야기를 할 즈음에는 그의 눈가가 촉촉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니지, 나를 비롯한 청중들의 마음에도 애잔한 흐느낌이 있었다. 나를 길러주신 어머니가 치매로 인해 당신의 자녀를 잘 알아보지 못하는 슬픈 현실, 어렸을 적 우리가 배가 아프다고 하면 당신의 손이 약손이라며 배를 쓰다듬어주시던 그 어머니가 이제는 더 이상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슬픈 사실, 그런 와중에서도 하나님 나라에는 반드시 가신다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또박또박 신앙을 고백하신다는 이야기에서 우리는 삶의 덧없음과 함께 뿌리 깊은 신앙의 아름다움을 공감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그의 불후의 명곡 ‘가시나무’를 들었다. 기타의 깊은 울림이 작은 공간을 가득 메웠다. “내 속에 내가 너무 많아”로 시작되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메아리쳐 왔다. 서로 부대끼는 가시나무의 울음소리도 들었다. 결국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그가 대신해서 부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다시 하모니카를 꺼내 입에 물고 기타의 깊은 베이스 음으로 “내 진정 사모하는 친구가 되시는 구주 예수님은 아름다워라”(찬 88장)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 곡은 하덕규가 평소 즐겨 부르는 찬송이었다.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모두가 따라 불렀다. 그때 즈음 우리 모두는 깊은 확신에 차 있었다. 두 손을 불끈 쥐고 목소리를 높여 불렀다.

 

        “내 몸에 모든 염려 이 세상 고락 간 나와 항상 같이 하여주시고

         시험을 당할 때에 악마의 계교를 즉시 물리치사 날 지키시네.

         온 세상 날 버려도 주 예수 안 버려 끝까지 나를 돌아보시니.”


        “내 맘을 다하여서 주님을 따르면 길이길이 나를 사랑하리니

         물불이 두렵잖고 창검이 겁 없네 주는 높은 산성 내 방패시라. 

         내 영혼 먹이시는 그 은혜누리고 나 친히 주를 뵙게 원하네.”


예배를 마치고 잠시 내 서재에 들렸다. 그가 책 한권을 내게 건넸다. 김훈의 신작 소설 “내 젊은 날의 숲”이었다. 제목이 멋지고 내 스타일이라서 호감이 간다고 했다. 그러자 하덕규는 책 제목이 원래 자기의 노랫말이라고 일러주면서 김훈이 책 표지 안에 하덕규에게 고마움을 표한 부분을 보여주었다. “소설의 제목 ‘내 젊은 날의 숲’은 가수 하덕규의 노래 <숲>의 마지막 구절에서 따왔다. 허락해주신 하덕규 님께 감사한다. 김훈.” 나는 하덕규가 내일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읽으라고 주는 선물로 알았다. 그리고 그는 서둘러 떠났다. 차 트렁크에 기타를 싣고 아무 말 없이 미소를 지으면서 떠났다. 손을 흔들며 인사를 나눴다. 나와 그는 내일 월요일에 인천 공항에서 미국행 비행기를 탈 예정이다. 그는 미국 캘리포니아로 나는 미시간으로 떠난다.


떠나던 날 인천 공항에는 아침부터 예사롭지 않게 눈발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에 함박눈에서 싸라기눈으로 변하더니 하염없이 내리기 시작했다. 비행기에 탑승하면서부터 눈이 펑펑 내렸다. 눈 때문에 비행기 출발은 서너 시간 지연되었다. 그리고 꼬박 24시간 만에 미시간에 도착했다. 하루 뒤에 전화가 걸려왔다. 하덕규의 목소리였다. 나는 그에게 잘 도착했냐는 말을 건성으로 건 낸 후에 그의 대답도 듣지 않은 채 눈 때문에 비행기가 지연된 내 이야기만 길게 늘어놓았다. 인천과 동경에서는 길고 지루한 지연에 대해, 시카고에서는 비행기를 놓치고 허둥거렸던 이야기를 주절댔다. 한참 후에야 그에게 그날 저녁 인천에서 비행기를 잘 타고 왔냐고 물었다. “아네요. 지금 한국입니다!” “뭐라고? 한국에 있다고요?”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당황스럽고 겸연쩍었다. “월요일 저녁에 비행기를 탄다고 했잖아요?” “사실은……” 전화기 너머로 잠시 침묵이 흘렀다. “사실은 내일 모레 수술하게 되었어요.” 나는 어떻게 말을 꺼내야할지 몰랐다. “목사님, 얼마 전에 암이라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위암이요!” 


하덕규가 그 날 교회로 나를 찾아 온 것은 며칠 뒤에 있을 위암 수술 사실을 내게 알리고 기도를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어려울 때 가까운 친구를 찾은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교회에 와보니 송별예배의 분위기 상 도무지 그런 이야기를 꺼낼 형편이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돌이켜 보니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그렇게 어려운 처지에 있었던 친구에게 너무도 쉽게 “오는 길에 특송을 해 주시게나”라고 한 내 자신이 더없이 한심스럽고 초라해 보였다. 국제 전화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괜찮은 말을 하려고 무던히 애를 썼지만 입속에서만 맴돌 뿐이었다. 버벅거리며 이런 저런 말을 내뱉었지만 결국 허공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는 격이 되었다. 힘이 쭉 빠졌다. 전화기에 대고 그를 위해 기도를 드렸다. 저쪽 너머로 작은 목소리로 아멘 소리가 들렸다. 내가 먼저 기도하자고 해서 드린 기도는 아니었다.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고 있는 사이에 저쪽 너머 하덕규가 내게 기도를 부탁한 것이었다. 부탁받은 기도는 더욱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러나 함께 간절하게 기도를 드렸다. 미안하기 때문에 더욱 간절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무정하고 자기중심적인 사람을 찾아와 기도를 부탁하려 한 친구 하덕규, 찾아 왔을 당시 교회 분위기를 흩뜨려 놓지 않으려던 배려심이 많은 친구 하덕규, 그가 위암 수술을 하게 되었다. 며칠 뒤 그는 수술을 마치고 회복 중에 있었다.


그는 영혼이 맑은 사람이다. 자신의 영혼에 대해 진솔하고 정직한 사람이다. 무엇보다 그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몸살을 앓는 사람이다. 그의 노래에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생생히 묻어난다. 고향상실로 인한 방황과 절망이 그에게 마지막 말일 수는 없다. ‘한계령’의 허무주의를 넘어 하덕규는 고향으로 돌아오는 꿈을 꾼다. 그는 자신의 노래 ‘풍경’의 가사, 사실 내가 그의 ‘가시나무’ 다음으로 좋아하는 노래 가사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은 바로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모습이라고 그렸다. 하나님이란 성스런 호칭을 불러내지 않아도 그는 이 세상의 진정한 평화는 모든 것이 그분이 만들어 놓은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노래한다. 그는 영원한 고향을 그리워하며 길을 떠난 순례자이다. 이점에서 그는 나의 좋은 길동무며 길벗이다. 친구 하덕규의 쾌유를 기도한다. 좋은 친구는 영혼을 맑게 해준다. 다시금 그의 “사랑으로 가득한 세상 풍경”을 꿈꿔본다.


        새벽 공기를 가르며 나는 새들의 날갯죽지 위에

        첫차를 타고 일터로 가는 인부들의 힘센 팔뚝 위에

        광장을 차고 오르는 비둘기들의 높은 노래 위에

        바람 속을 달려 나가는 저 아이들의 맑은 눈망울에

        사랑해요 하고 쓴다.


        피곤한 얼굴로 돌아오는 저 나그네의 지친 어깨 위에

        시장어귀에 엄마 품에서 잠든 아가의 마른 이마 위에

        공원길에서 돌아오시는 내 아버지의 주름진 황혼 위에

        아무도 없는 땅을 홀로 일구는 친구의 굳센 미소 위에

        사랑해요 라고 쓴다.


        수없이 밟고 지나가는 길에 자라는 민들레 잎사귀에

        가고 오지 않는 아름다움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에게

        고향을 돌아가는 소년의 겨울 밤차 유리창에도

        끝도 없이 흘러만 가는 저 사람들의 외로운 뒷모습에

        사랑해요 라고 쓴다.

 

                    - 미시간의 눈 오는 한 겨울 한 밤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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