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함께 춤을 추실래요?"

 

 

******

 

 

기독교인들에게 종종 은 좋지 못한 느낌을 줍니다. “춤바람이 났다!”는 말이 그런 뜻일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기독교에선 춤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해왔습니다. 이교주의와 연계성, 성적 자극 등으로 인해 그랬습니다. 또는 헬라 철학의 영향을 받은 영육 이원론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근데 이라 하면 부정적이면서도 댄스라면 덜 부정적인 것은 웬일일까요? 아마 서양의 포크댄스”(folk dance)가 떠올라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근데 웃기는 것은 민속춤이나 민속무용도 영어로 포크댄스”(folk dance)라 한다는 사실입니다. 서양 것에 대한 맹목적 동경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럼 기독교인들은 예배 시에 춤을 출 수 있을까요? 이른바 예배의 춤”(worship dance)말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예배의식인 예전”(禮典, liturgy)의 일부로 행해지는 예전적 춤”(liturgical dance)말입니다. 20세기 후반부터 서구 교회에선 예전적 춤이 예배 시에 시행되기도 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예전적 춤에 대한 성경적 근거가 있을까요 없을까요? 있습니다! 언약궤가 다윗 성으로 귀환할 때 다윗은 너무 기쁜 나머지 타인의 눈을 상관치 않고 을 추지 않았던가요? “여호와의 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올 때에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었더라!”(삼하6:16; 대상15:29) 근데 다윗의 춤은 막춤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ㅎㅎ 달리 말해 여호와의 영에 이끌린 자연스런 막춤이 아니었을까 상상해봅니다.

 

 

한편, “예전적 춤의 원조는 다윗이 아니라 그 보다 한참 위로 출애굽 때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애굽을 탈출하여 홍해에 이르렀을 때 망연자실했던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홍해를 가르십니다. “바로의 말과 병거와 마병이 함께 바다에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바닷물을 그들 위에 되돌려 흐르게 하셨으나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지나간지라.” 기적적으로 홍해를 건넌 후에 모세는 그 유명한 모세의 노래”(15:1-18)를 지어 훗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전적으로 노래하도록 명했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승리를 목도한 미리암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아론과 모세의 누이인 미리암이 소고 악기를 들고 나오자 모든 여인들도 미리암을 따라 나오며 소고를 잡고 춤을 추었다는 것이다!(15:20). 춤만 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노래하는 내용으로 작사까지 한 것입니다. 가사와 악기와 신명나는 춤이 함께 어우러진 기쁨 충만한 예전적 춤마당이었다. “아론의 누이 선지자 미리암이 손에 소고를 잡으매 모든 여인도 그를 따라 나오며 소고를 잡고 춤추니 미리암이 그들에게 화답하여 이르되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하였더라”(15:19-21)

 

 

교회에서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춤을 추실래요? 성령에 이끌린 막춤도 상관없어요. 왜 흑인 교회에서 몸을 흔드는지 아시겠습니까? 아프리카의 그리스도인의 예배를 목격해 보신 일이 있습니까? 몸과 영 모두를 사용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노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게 성령과 진리 안에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송축하고 예배하는 모습일 겁니다.

 

추신: 지금도 잊어지지 않는 기억은, 예수원의 대천덕 신부님께서 어느 집회시에 덩실덩실 춤을 추시던 모습입니다. ㅠㅠ 성령님에 이끌려 어린아이와 같이 천진난만하고 소박하게 웃으시며 춤을 추시던 모습을.

miriam-and-women-dancing.jpg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류호준 교수의 무지개성서교실이 http://www.rbc2020.kr 로 리뉴얼하여 이전합니다. 류호준 2020.08.24 4395
공지 "무재개 성서교실은 여러분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5] 류호준 2018.03.29 2928
789 사순절 묵상: “저는 괜찮은 죄인인데요?” file 류호준 2020.03.04 244
788 신앙 에세이: “길(道)의 사람들” file 류호준 2020.03.03 199
787 일상 에세이: “예배 취소” 류호준 2020.02.28 350
786 신학 에세이: “교회공동체와 전선(戰線)” 류호준 2020.02.26 212
785 오늘의 기도: “주님, 바다를 가르시고 풍랑을 잠재워 주소서” 류호준 2020.02.22 265
784 신문사 대담: “목회자는 성경 무시하고 교인은 성경에 무지… 이래서야” [4] 류호준 2020.02.14 291
783 신앙 에세이: “한결같이” file 류호준 2020.02.11 212
782 신학 에세이: “기억하고 기념하라!” 류호준 2020.02.07 372
781 신앙 에세이: “약속의 땅을 바라보며” file 류호준 2020.01.28 413
780 신앙 에세이: “오래전 어떤 조언” 류호준 2020.01.27 206
» 신앙 에세이: "함께 춤을 추실래요?" file 류호준 2020.01.24 350
778 클린조크: "뚜레쥬르" [1] 류호준 2020.01.12 794
777 클린조크: "나도 종말론 집회를 할까?" [1] 류호준 2020.01.08 262
776 신앙 에세이: “경이로운 하나님의 선택” [2] file 류호준 2020.01.04 269
775 신앙 에세이: "경쟁의 사각 링에 던져진 교회들" [1] 류호준 2019.12.16 634
774 대림절 이야기: “비극 속에 은혜의 빛줄기가” file 류호준 2019.12.10 397
773 신앙 글: “좁은 길” 류호준 2019.12.05 264
772 일상 에세이: "볼 배급" 류호준 2019.12.04 669
771 일상 에세이: “함께 살지 않아서…” 류호준 2019.11.25 198
770 신앙 에세이: “하나님의 평강과 생각거리” file 류호준 2019.11.25 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