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남의 나라 말 배우기”

 

 

외국에서 공부할 때 가장 힘든 것은 역시 그 나라 말 배우기다. 요즘 유학생들은 아주 똑똑하여 영어도 잘하지만 아주 오래 전(40년 전)에 내가 유학 시험을 치르고 미국에 공부하러 갔을 때엔 말이 통하지 않아 어처구니없는 일도 많이 겪었다. 수업 중에 선생님이 “a piece of cake”이라고 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뜬금없이 웬 “케이크 한 조각?”이라고 하시나 했던 기억이 난다(알다시피, “누워서 떡먹기”라는 뜻이었는데. ㅠㅠㅠ).

 

게다가 내가 공부하던 학교(미시간의 캘빈 신학교)는 주로 네덜란드계 미국인들과 캐나다인들이 주류였기에, 친구들의 네덜란드식 이름(성) 발음하기가 너무도 어려웠다. 훅스트라, 후크마, 플라스마, 자일스트라, 플랜팅가, 보센부르크, 카우젠스, 수위어랭가, 드브리스, 히멩가, 마이어, 드영, 밴다이크, 미네마, 맬리마, 와익스트라, 크루즈, 레커, 데커, 보어, 와우스트라, 드리더 등등... 그러니 친구들 이름 외우기가 방언통역 보다 더 힘들었다.

 

나중에 박사 학위 공부는 네덜란드에 가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에 캘빈신학교와 붙어 있는 캘빈 대학에 가서 네덜란드어를 배웠다. 그 때 8달러 10센트를 주고 1982년판 네덜란드어 사전(Dutch-English)을 하나 구입했다. 영어도 딸리는 인간이 네덜란드어 배우느라 혼쭐이 났다. 하나라도 집중해야했는데 말이다. 어제 오래된 책들을 뒤지다 보니 그 때 구입한 자그마한 포켓용 사전이 눈에 들어온다. 추억 냄새가 책장 사이에서 스멀스멀 올라온다.

 

10년 후 미국 디트로이트 공항을 떠나 대서양을 건너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도착했다. 암스테르담에 내리니 영어는 통하는데 내 짧은 네덜란드어는 도무지 통하지 않으니 미치겠더라. 10년 전 미국 대학에서 배운 네덜란드어로는 도무지 따라 잡을 수 없어, 할 수 없이 지역에 있는 외국인들을 위한 어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주로 터키, 동구권 유럽, 보스니아, 크로아티아, 네팔, 인도네시아, 수리남 등에서 온 이주민들이 대부분이었고, 아줌마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었다. 그곳에서 정착하기 위해 힘들게 언어를 배우는 사람들이었다. 박사과정에서 공부하는 고학력자(?)는 내가 유일했었다. 허름한 잠바차림에 일주일에 3일간 다녔는데, 가르치는 여선생님은 전형적인 네덜란드 여자로, 키가 크고 아주 멋쟁이 미녀 아줌마였는데, 매우 친절하고 다정다감하게 가르쳤다. 종종 숙제를 내주며 내가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인 줄 알고 질문하거나 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종종 숙제를 제대로 해가지 못해서 본의 아니게 선생님께 실망을 안겨드리거나 창피를 당하기도 했다. 이놈의 네덜란드 언어는 왜 그리 가래가 끓는 듯한 발음들이 많은지, 왜 이리 문법체계가 헷갈리는지, 정말 애를 많이 먹었다. 어제 책을 정리하다가 당시 사용했던 네덜란드어 교본과 간단한 퀴즈 시험 문제지를 발견했다. 퀴즈 시험 문제지를 보니 옛날 생각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시험시간은 20분. 사전을 사용해서 빈 칸에 한 단어를 적어 넣으라는 안내문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구약 공부하느라 별로 쓸모없는(?) 수많은 고대어와 현대어들을 배우느라 머리가 다 빠졌다. 히브리어, 헬라어, 아람어, 우가릿어, 영어, 독어, 네덜란드어 등. 그놈의 인간들이 “자, 성읍과 탑(지구라트)를 건설하여 그 탑(지구라트)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서 흩어짐을 면하자!”(창 11:4)라고 말하지만 않았더라면, 이렇게 내가 외국어 공부하느라 수많은 세월을 보내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한국어만이라도 똑똑하게 잘 배워 사용하면 최고인데 말이다. 그래서 최근 들어 신학생들에게 종종 “한국어라도 제대로 할 줄 알면 성경을 이해하는데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런데 한국어의 40%이상이 한자어라는 사실은 기억 하시게나!”라고 말한다. 더 이상 외국어 배우는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세상이 도래하고 있다. “여러분, 외국어 배우려고 기를 쓰지 마세요. 조금만 기다려보세요. 전지하신 구글과 네이버가 인공지능까지 탑재하는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외국어는 가라! 한국어 만세 만만세~~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류호준 교수의 무지개성서교실이 http://www.rbc2020.kr 로 리뉴얼하여 이전합니다. 류호준 2020.08.24 4396
공지 "무재개 성서교실은 여러분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5] 류호준 2018.03.29 2928
729 일상 에세이: “세상풍경 일화: 포장마차에서” [1] file 류호준 2018.12.05 489
728 “세계관과 나와 데이비드 노글” [2] file 류호준 2018.11.28 641
727 일상 에세이: “구치소 풍경과 영치금” [1] file 류호준 2018.11.23 557
726 시: “첨탑, 무덤. 하늘” file 류호준 2018.11.13 429
725 일상 에세이: “운명 위에서 썰매 타듯이” [2] 류호준 2018.11.09 628
724 일상 에세이: “한번쯤은 밤하늘 아래 앉아” [2] file 류호준 2018.11.07 462
723 일상 에세이: “좋게 말하다” [1] file 류호준 2018.11.06 424
722 일상 에세이: “감사하는 계절에” [3] file 류호준 2018.10.30 391
721 신앙에세이: “당신은 현대판 헤렘의 신봉자들인가요?” file 류호준 2018.10.24 387
720 부고: "하늘의 부르심은 받은 유진 피터슨 목사님" file 류호준 2018.10.23 463
719 일상 에세이: “신학생들이여, 제발 한국어라도~” [5] file 류호준 2018.10.17 752
718 일상 에세이: “가는 세월” [4] file 류호준 2018.10.12 413
717 신앙 에세이: “분깃”을 알고 계십니까? [2] file 류호준 2018.10.09 2125
716 시: 윌리엄 블레이크(1757-1827) [1] file 류호준 2018.10.08 634
715 일상 에세이: “자연을 사진에 담는 그리스도인” [1] file 류호준 2018.10.01 420
714 신앙 에세이: "당신은 성자(saint)입니까?" [1] file 류호준 2018.09.27 2736
713 일상 에세이: “인생은 견디는 거야! - 바이킹 유감” [2] file 류호준 2018.09.24 657
712 일상 에세이: “1 년짜리 유감” [2] file 류호준 2018.09.22 432
711 일상 에세이: “9.19 남북 정상회담을 보면서 스쳐가는 생각들” [2] 류호준 2018.09.19 335
710 신앙에세이: “거룩한 키스”라고? [1] file 류호준 2018.09.17 3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