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없는 크리스마스 저녁 모임”

 

 

벌써 십 삼사년 전 이야기다. 당시 미국 미시간 그랜드래피즈 캘빈신학교에 유학 온 백석출신의 여러 제자들이 있었다.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지금은 다 박사님들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유학생들이었던 조용순, 주현규, 원택진 목사 가족들을 당시 미국의 우리 집으로 불러 크리스마스 공동 식사를 하고 신라면 한 박스씩을 하사품(!)으로 주었던 시절이 있었다. 옛날이 생각나는지 최근에 조용순 목사가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한국의 우리 집에서 모임을 가지면 어떻겠느냐고 물어서 아주 좋다고 했다. 오늘 그 모임을 우리 집에서 가졌다. 성탄예배를 마치고 오후 4시에 우리 집으로 모이기로 한 것이다. 부부가 올 경우는 접시 하나씩 준비해오기로 하고 홀로 오는 사람은 입만 가지고 오기로 했다고 나의 총무 목사 조용순박사가 말했다.

 

오늘 나도 성탄예배를 인도하고 우리 집사람과 함께 집에 돌아와 부지런히 집안 청소하고, 자리를 세팅하고, 음식 하는 아내를 쪼금 거들어 주고, 이것저것 사오라는 아내의 분부를 받들어 가게로 심부름 다녀왔다. 얼마 후 딩동 초인종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드디어 저녁 식사 친구들이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정진성 목사와 김순영 박사와 아들 지윤, 조용순 목사와 배희정 사모와 아들 승원과 현우, 원택진 목사와 사모, 방정열 목사와 이성미 사모와 딸 주영, 김상훈 목사와 사모, 이범의 목사와 성기문 목사가 차례로 입장하였다. 아쉽게도 캐나다의 아픈 딸 온유 때문에 참석하지 못한 주현규 박사가 있다. 그러고 보니 굴러다는 사람들이 박사님들 천지다. 모두 8명이네!

 

스파클링 주스로 목을 축이고, 옛날이야기들로 꽃을 피운다. 거의 2시간동안 폭풍수다를 떨고 저녁 6시경에 식사를 시작하였다. 조용순 목사의 짧지 않은 간절한 식사기도와 함께 식사가 시작되었다. 사모님들이 만들어온 접시들을 펼치니 진수성찬이 되었다. 적어도 3번 접시를 비우지 않으면 나와 상관이 없다고 내가 협박하자 성기문 박사는 “더 이상 못 먹겠습니다. 먹는 일에는 더 이상 지도 받지 않겠습니다.”라고 항명을 하였다. 이제 박사가 되었으니 나도 더 이상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어서 그냥 봐줬다!

 

한국 시편 연구에 새로운 장을 펼친 자랑스런 제자 방정열 박사는 이번에 출간한 《새로운 시편연구》를 가지고 와서 친필 싸인과 함께 나눠졌고, 모두 진심으로 축하의 마음을 전하였다. 몇 달 후에 김순영 박사도 전도서에 관한 책을 동일한 출판사에서 낼 것인데, 아무래도 책 제목을 《새로운 전도서 연구》라고 하라고 모두들 아우성들이다. 얼마 전 절판한 내 《아모스 주석》도 내년 즈음에 제자 주현규 박사가 “최근의 12 소선지서 연구 동향”이란 논문을 준비해서 그 책 안에 집어넣어 두 사람의 공저로 개정판을 낼 계획에 있으니, 이래저래 제자들의 활동에 내 기분이 업하고 있는 중이다. 성기문 박사는 자기가 나의 첫 제자 박사인 김순영 박사 다음으로 나의 마지막 제자 박사가 된 줄 알고 기분이 좋았는데, 이범의 목사가 내 3번째이자 마지막 제자 박사가 된 것에 대해 심히 유감을 표하며, 어찌하여 자기도 모르게 숨겨 놓은 자식(이범의)이 있었느냐 하며 따져들었다. 내가 왈, 김순영-성기문-이범의 순서대로이니 성 박사는 아무래도 중간자녀 신드롬(middle child syndrome)이 있는 것 같거덩! 그 증세가 심하면 병원에 가야할지도 모른다고 웃어넘겼다. 이범의 목사는 학문적으로 막내아들과 같아서 늘 마음에 짠함을 더해 애정이 더 많이 간다.

 

조용순, 주현규, 원택진 목사는 백석신대원 M.Div.에서 가르치고 미국 캘빈신학교로 유학을 보낸 오리지널 제자들이다. 삼총사는 캐나다 토론토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재원들로, 미국에 있을 때 종종 들판에 데리고 나가 골프까지 가르친 전천후 제자들이다. 조용순 목사는 내가 세상을 하직할 때까지 나의 총무 목사로 자임하였기 때문에 언제나 든든하다. 조 목사를 통하지 않고는 나에게로 올 자가 없느니라! 게다가 라식 수술을 하고 안경을 안 쓰고 오늘 오니 훨씬 더 젊어진 듯하여 기쁘다. 정진성 목사는 아내 김순영 박사 그늘에 스스로 가리기를 즐겨하는 아내 사랑 지극 정성인 남편이다. 내 홈페이지를 봐주는 컴퓨터 전문가인데 고마울 뿐이다. 근데 언제나 헌신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돌보고 배려심이 깊은 나의 숨겨놓은 진주 같은 제자 목사가 있으니 김상훈 목사다. 이범의, 원택진 목사와 신대원 동기인데 학생시절 반장이었고, 아직도 반장으로 통한다. 동기들의 모든 사정들을 챙기고 돌봐주는 파라클레토스다! 최근 이범의 목사와 김상훈 목사는 각각 나의 교회에서의 마지막 설교와 학교에서의 마지막 수업에 사전 허락도 없이 들어와 수십 컷의 사진으로 기록을 남기는 감동적인 사랑을 보여주었다. 정말 고마운 제자들이다.

 

올해 크리스마스는 참 행복하고 즐거웠다. 식사 후에 불을 끄고 “참 반가운 성도여”(찬송 122장)을 함께 불렀는데,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성탄절 저녁 식사였다. 사는 게 별거 있나요? 이런 사소하지만 정겨운 시간들을 갖는 것이 은혜를 경험하는 시간들이 아니겠나? 다들 간 후에 나와 아내는 제자들이 가져온 케이크들과 떡과 알코올 끼가 들어 있는 스파클링 포도주를 가지고 길 건너 파출소에 들이 닥쳐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치고 케이크와 떡을 전달하고 포도주를 한잔씩 따라주고 길을 나오니 약간의 차가운 하늘에 보름달이 휘영청 밝게 비추고 있었다. 속이 시원하고 기분 좋은 성탄의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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