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고대 이스라엘의 정치”

 

 

막스주의적 경향이 강한 구약성서학자 가운데 한 사람을 들라면 노만 갓월드(Norman Karol Gottwald, 1926년생)가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그가 써낸 책중에 가장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 책이 1979년에 출간된 “The Tribes of Yahweh: A Sociology of the Religion of Liberated Israel, 1250-1050 B.C.E.”입니다. 이 책은 바로의 압제에서 해방된 이스라엘인들이 갖게 된 야웨 종교를 사회학적 관점에서 기술한 책입니다. 달리 말해 사회학적 연구 방식을 사용하여 초기 이스라엘의 종교와 정치를 조명한 책입니다. 이 책의 핵심 주장은 이스라엘인들은 원래 가나안의 소작농민들이었는데, 그들은 당시의 부패한 기득권 지주 계급의 갑질 횡포에 맞서 봉기하였고 그렇게 해서 이스라엘인들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갓월드 박사가 2001년에는 『고대 이스라엘의 정치』라는 책을 출판했습니다. 이 책 역시 기존의 학계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바 있습니다. 이번에 CLC 출판사에서 내는 고대근동 시리즈 안에 담겨 출판 되었습니다. 출판사의 부탁을 받고 간단하게 비평적 추천사를 썼습니다. 아래를 참고하십시오. 영문 원서는 The Politics of Ancient Israel. Library of Ancient Israel.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2001입니다.

 

*****

 

전통적으로 성서학계에는 성경본문을 해석하는 주석적 연구가 주류를 이루어왔습니다. 이를 위해 다양한 학문적 비평들이 그들 나름대로 중요한 공헌을 해왔습니다. 자료비평, 문헌비평, 양식비평, 전승비평, 신문학비평, 문체비평, 구조비평, 수사비평, 독자반응비평, 이념비평 등에 이르기까지 온갖 통시적 공시적 연구들이 그러했습니다. 이와 더불어 고대근동학의 발달은 특별히 구약성서를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습니다. 지난 수십 년은 성서학과 고대근동학의 콜라보레이션이 그 어느 때보다 돋보였던 시기였습니다. 둘 사이의 접목을 시도하려는 노력들은 때론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때론 새로운 길을 열어주기도 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원용하게 된 학문적 방법이 사회과학적 연구였습니다. 성서에 등장하는 이스라엘이란 독특한 민족과 그들의 사회가 주변 여러 나라들의 사회상과 어떤 상관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대한 관심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회의 구조를 비롯하여 그들의 정치 경제 문화 종교 등 사회의 근간이 되는 각종 기관들과 형식들과 민속들과 정신적 기반을 이해하는 것이 성서의 세계를 이해하는데 시발점이 된다는 생각입니다. 텍스트 배경에 자리 잡고 있는 고대 이스라엘의 사회상을 연구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르쳐주는 계기가 마련된 것입니다.

 

본서는 그중 고대 이스라엘의 정치를 다룬 작품입니다. 이미 여러 권의 저서로 특별히 고대 히브리 민족과 이스라엘의 기원에 대해 가히 혁명적인 제안을 해온 노만 갓월드 박사가 고대이스라엘의 정치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 연구서입니다. 저자의 학문적 입장을 사전에 알고 있는 독자들은 이 책을 저술하는 저자의 입장이 어떠하리라는 정도는 예측할 것입니다. 갓월드 박사는 고대 이스라엘의 정치를 이해하려면 먼저 역사적 자료들을 선정해야한다고 말합니다. 몰론 고고학 유물과 성경 외부 사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구약성서 보다 더 고대 이스라엘의 정치연구를 위한 원자료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구약성서에 묘사되고 있는 고대 이스라엘 사회상을 심층적으로 살펴보면 그들의 정치를 읽어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해서 재구성한다면 고대이스라엘의 정치에 대한 일관된 그림을 그려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갓월드 박사는 이런 전통적이고 일반적인 방법을 단호하게 거부합니다. 그는 이런 방법을 “역사적 종교적 실증주의”라고 까지 매섭게 다그칩니다. 그리고 그러한 실증주의에서 해방시키기 위하여 비판적 상상력을 사용하여 고대이스라엘의 정치를 연구하겠다고 선언합니다. 그렇다면 그는 고대이스라엘의 정치를 연구하기 위한 원자료인 구약성서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갖고 있을까요? 그에 따르면 고대이스라엘 역사를 담고 있는 구약성서에는 그 역사를 기술하고 있는 역사가들의 편향된 이념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에 매우 비판적으로 읽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예를 들어, 구약성서가 선호하는 고대이스라엘의 정치 형태는 권력이 중앙에 집중되어 있는 체제이며, 이 점만 보아도 역사편찬자가 어떤 이념을 가지고 기록했는지 힐끗 엿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이런 결론에 이르는 것도 결코 만만치 않은 이유는 구약의 역사기록이 상대적으로 후대에 기록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의 말을 인용하자면, “히브리 성경에 기록된 모든 정치 전통이 전통주의자의 이념을 따라 윤색되고 틀이 잡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의해야 할 점은 특정한 성경 본문의 관점이 아무런 도전이나 질문 없이 이스라엘 정치에 관한 논의를 주도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렇다면 갓월드 박사의 접근 방법은 무엇일까? 이 책의 실질적 마지막 장에 해당하는 제 5장의 제목이 모든 것을 말해줄 것입니다. “고대 이스라엘 정치에 관해 비판적으로 상상하기”입니다. 갓월드 박사는 고대 이스라엘의 정치형태를 주변 국가들의 정치문화에서 분리하여 연구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어떤 상관관계가 있고 어떤 상호 영향을 받게 되었는지를 비판적으로 살피면서, 특별히 유다와 북이스라엘의 정치형태를 ‘공평하게’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스라엘 정치사 중에서 마지막 삼분의 일이 되는 기간(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이 남 유다 왕정 중심의 편향된 관점에서 서술되었다는 사실을 아무런 비판 없이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책의 결미에서 보여준 갓월드 박사의 반전 결론(?)은 다시금 이 책의 유용성을 되새기게 합니다. 이스라엘의 정치는 이스라엘 민족의 정체성 형성과 보존에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스라엘이 유지되고 보전된 것은 그들의 종교와 문화의 힘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핵심적인 종교적 문화적 정체성의 근원은 왕정 성립 이전 이스라엘 시대부터 오랫동안 지속된 가족적 공동체적 문화에 근거하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결론적으로 갓월드 박사는 이 책의 저술과정과 목적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지금까지 히브리 성경이 고대 이스라엘의 정치에 관해 증언하고 있는 바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스라엘 국가가 고대 근동 지역 안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성경 외부 자료와 명문은 물론 비교 사회학적 관점에서 본 관찰을 시도하였고, 문헌학 및 정치학 이론도 참고하면서, 지파 공동체에서 왕정으로 그리고 식민지로 변해왔던 이스라엘 정치권력의 변화 과정을 비판적인 상상의 눈으로 묘사하였다.”

 

추천자로서 독자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립니다. 이 책을 첫 장부터 읽는 대신에 먼저 마지막 결론인 제 6장을 읽은 후에 다시 첫 장부터 자세하게 읽으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고대근동학이 구약성서 연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시게 될 것이며, 갓월드 박사가 고대이스라엘 정치를 다루면서 어떤 사료들을 어떤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는지를 보게 될 것이며, 더 근본적으로는 성서의 역사관과 그 역사관을 해석하는 갓월드 박사의 역사관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것만이라도 제대로 파악한다면 이 책을 읽은 후에 얻은 소중한 가치와 보람으로 충분하리라 생각합니다. 이 책은 전통적인 신학에 서 있는 독자들이나 그렇지 않은 독자들 모두에게 상당한 도전과 충격을 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책은 우리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것입니다. “우리가 읽는 구약성경은 도대체 어떤 책이란 말인가?” “구약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한다는 것일까?” “구약성서는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인 동시에 신성한 경전(성경)이라?” CLC가 야심차게 기획한 고대근동 시리즈 출간을 축하하며 진지한 구약학 연구자들과 신학생들의 사랑받는 기획물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류호준 목사 |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 구약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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