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일상 에세이: "추억 불러내기"

2017.11.24 21:05

류호준 조회 수:447

"추억 불러내기"

 

89세인 노모는 과거를 기억하는 일에 너무 힘들어 하신다. 부축하지 않고서는 거동을 할 수 없고 최근엔 인지능력이 상당히 떨어지셨다. 아내가 사진첩을 정리하다가 나 어렸을 적 엄마 아버지 동생들 모두 함께 찍은 가족사진을 찾아서 어머니 방에 놓았다. 저녁 즈음 가족사진을 보여드리면서 한 사람씩 누구냐고 물었다. 언어상실증이 있으셔서 말을 무지 더듬으신다. 눈으로 잘 모르겠다고 하신다. 조금 후에 다시 보여드렸더니 내 여동생만 알아보시고 “주옥이!”라고 하신다. 여동생 어렸을 적 이름이다. 당신의 남편도 나를 포함한 나머지 자녀들도 못 알아보신다. 하기야 60년이 넘은 사진이니.

 

조금 후에 다시 보여드렸다. 사진을 한참 뚫어지게 보신다. 그리고는 남편 얼굴에 손을 갖다 대신다. 하시는 말씀, “참 잘생겼네!” 하신다. 이게 무슨 말씀인가?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난감했다. 조금 후에 그 사진을 잡고서는 남편의 얼굴에 대고서는 다시 “잘 생겼어!”라고 하시며 얼굴을 쓰다듬으신다. 이 세상에서 어머니는 아버지와 겨우 15년을 함께 사셨고 – 나는 아내와 37년째 함께 살고 있음에 비하면 너무 짧은 기간을 - 아버지는 한창 때인 42살에 하늘로 가셨으니, 어머니는 남편 없이 거의 50년을 홀로 지내신 셈이다. 몸도 마음도 기억력도 인지능력도 언어사용능력도 급속하게 쇠하여가는 어머니의 모습이 안쓰럽다.

 

****

 

엊그제 “엄마, 천국에 가실 때 제가 모시고 갈께요.”라고 했더니 “너는 안 돼,”라 하신다. “왜요?” “너는 네 마누라 있으니까 안 돼. 나 혼자 갈꺼야.” “혼자 가시면 길을 잃어버려요.” 그러자 하시는 말씀, “나 혼자 잘 찾아 갈 테니 너는 나중에 오거라.” 하신다. 마음으로 한참 울었다.

 

*****

 

주님은 우리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아십니다.

우리가 한낱 먼지임을 기억하고 계십니다.

 

사람으로 말하자면,

인생은 풀과 같습니다.

 

들판에 핀 꽃처럼 자랍니다.

그러다 바람이 불면 꽃은 떨어집니다.

그 있던 자리는 흔적조차 남지 않습니다.

(시 103:14-16, 사역)

 

"추억을 더듬다"

엄마1.jpg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류호준 교수의 무지개성서교실이 http://www.rbc2020.kr 로 리뉴얼하여 이전합니다. 류호준 2020.08.24 4587
공지 "무재개 성서교실은 여러분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5] 류호준 2018.03.29 2930
689 일상에세이: “무엇이 당신의 유일한 위안입니까?” [1] file 류호준 2018.07.24 457
688 신앙에세이: “웃음은 신비로운 약입니다. 좋을 때든 끔직할 때든” [1] file 류호준 2018.07.21 2367
687 신앙 에세이: “해시태그(hash-tag)가 된 여인 라합” [1] file 류호준 2018.07.16 790
686 일상 에세이: “경찰관과 소방관” file 류호준 2018.07.15 273
685 일상 에세이: “나이듬과 유머" file 류호준 2018.07.14 441
684 클린조크: "성경적 여성주의"(Biblical Feminism) [2] file 류호준 2018.07.11 517
683 일상 에세이: “님아, 그 물을 건너지 마오.” file 류호준 2018.07.09 477
682 신앙 에세이: “릴리아 모리스와 찬송가” file 류호준 2018.07.09 1140
681 일상 에세이: “사진 찍어 주실 수 있겠어요?” [1] file 류호준 2018.06.20 439
680 신앙 에세이: “찾아갈 만 한 곳 한 군데쯤은~” file 류호준 2018.06.11 590
679 신앙 에세이: "현자(賢者)와 중용(中庸)의 덕" [2] file 류호준 2018.05.25 515
678 일상 에세이: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지!” [6] file 류호준 2018.05.19 820
677 일상 에세이: "연필로 쓰는 이야기" [3] file 류호준 2018.05.12 768
676 신앙 에세이: “제자도의 비용” [2] file 류호준 2018.05.09 491
675 신앙 에세이: “당신은 어느 신을 섬기고 계십니까?” file 류호준 2018.05.03 635
674 일상 에세이: "패러디 유감" [2] file 류호준 2018.05.01 494
673 신앙 에세이: “몸으로 쓰는 율법” [1] file 류호준 2018.04.30 458
672 일상 에세이: "김훈과 육필원고" [3] file 류호준 2018.04.28 559
671 목회 에세이: “베뢰아 사람들만 같았으면” [1] file 류호준 2018.04.26 855
670 신앙 에세이: “썩어빠진 관료사회와 한심한 대중들” [1] file 류호준 2018.04.18 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