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창세기 27:1-14
제목: 한 가정의 불행의 시작
찬송: 431장 (새 549장)
묵상 포인트: 하나님의 계획을 우리의 방식대로 이루려는 어리석음을 피해야 한다.
기도: 하나님, 우리에게 하늘의 지혜를 주시어 당신의 뜻과 시간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이삭은 장자인 에서를 위해 “족장축복”을 시행하려고 계획합니다. 아버지로서 큰 아들에게 복을 빌어주고 싶은 마음에서 그런 계획을 했을 것입니다. 자신의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이삭은 에서에게 사냥한 고기로 별미를 만들어와 자기로 마음껏 먹고 축복하게 하라고 명합니다. 물론 우리는 이 일 후에도 이삭이 오랫동안 더 살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본문을 읽을 때마다 궁금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왜 이삭은 두 아들을 함께 축복하는 시간을 갖지 않았을까? 이삭이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했다는(1절) 화자(話者)의 평가는 단순히 이삭의 육체적인 것에만 국한하여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의 판단력과 영적 분별력도 포함하는 것일까? 왜 어머니 리브가는 스스로에게 저주까지도 불사하면서(13절) 야곱을 위해 에서의 축복을 빼앗으려는 것일까? 이 본문은 한 가족의 비극과 불행이 자식들에 대한 부모들의 편애에 있다고 말하는 것일까?
본문은 우리에게 모든 질문에 대한 모든 대답을 다 주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적어도 두 가지 정도는 묵상할 가치가 있습니다. 첫째로, 이삭은 눈이 멀었지만 그것은 단지 겉으로 들어난 문제일 뿐입니다. 이삭은 모든 면에서 감각이 없었던 사람으로 드러납니다. 성경은 종종 육체의 눈이 먼 것을 은유적으로 사용하여 영적 시력과 판단력이 부재하거나 약화된 것을 묘사하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의 저명한 제사장 엘리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사무엘서의 저자는 이스라엘의 영적 암흑기를 표현하면서 그 나라의 대표적 종교지도자 엘리 제사장의 시력상실을 언급합니다. 그는 “눈이 점점 어두워 가서 잘 보지 못하였다”(삼상 3:2)라고 말입니다. 이삭의 시력에 대한 화자의 묘사는 우리에게 사람이 판단력을 상실하기 시작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 가를 가리킵니다. 영적 시력과 청력이 무디어 지지 않도록 조심해야할 것입니다.
둘째로, 리브가는 둘째 아들 야곱을 위해 스스로 저주까지 짊어지겠다고 말하는 대목은 독자로 하여금 리브가가 해산할 때 하나님께서 태중의 있는 아들들의 장래에 관해 하신 말씀을 기억나게 합니다.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25:23). 리브가는 아마도 이 말씀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녀는 이 예언의 말씀을 자신의 방식대로 이루려했던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자녀 약속을 자신의 방식대로 이루려하다 얼마나 큰 어려움을 겪었는지 잘 기억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예언을 오늘 리브가가 하는 방식으로 성취시키려는 것이 정말로 정당한지 의아해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