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감사: 쟁기질 하듯이 그렇게”
                                                                      데살로니가 전서 5:16-24

                                                                              류호준 목사


                                                                               [성경본문]

16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19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20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21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22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24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설교전문]

오늘은 전국적으로 그리스도의 교회들이 각자의 예배 장소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지난 한 해 동안 그들이 받은 많은 축복들과 은덕들에 대해 생각하고 감사하는 시간을 갖는 주일입니다.  

우리도 영으로 마음으로 다른 교회들의 성도들과 함께, 자칫하면 잊기 쉬운 하나님으로부터 온 수많은 혜택들과 은덕들을 기억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우리들의 받은 수많은 은택(恩澤)들을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교회적으로 국가적으로 “함께” 기억하기 위함입니다.

                                                                            [감사: 필요한 전통]
적어도 일 년에 한차례씩이라도 이렇게 한다는 것은 “아름다운 전통”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절실하게 “필요한 전통”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감사하는 일은 쉽게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불평하기는 쉽습니다. 불평하는 법을 배우지 않아도 사람들은 불평하는데 탁월합니다. 불평은 우리의 몸속에 박혀있는 유전인자처럼 자연스럽게 배어나옵니다. 그러나 감사는 그렇지 않습니다. 감사하는 법을 배우지 않아도 감사를 탁월하게 하는 사람이 있나요? 없습니다. 감사하는 일은 훈련을 배워야합니다. 배우되 자연스럽게 몸에 밸 때까지 노력해야합니다. 감사하는 습관을 터득해야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감사절은 “필요한 전통”입니다.

                                                                             [감사: 국가적 전통]
누군가에게 감사하는 것은 오래된 전통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구미(歐美) 선진 국가에서는 일 년 중 하루를 감사일로 정해 놓고 지킵니다. 우리가 지키는 추구감사절의 유래는 백 여 년 전 한국에 들어온 미국 선교사님들을 통해서였습니다. 한국인의 고유한 명절인 추석이 이교적 제사와 조상숭배를 의미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기독교적 유래를 갖고 있었던 자신들이 추수감사절을 전래하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나는 우리의 고유한 명절인 추석을 기독교적 세례의식을 거쳐 우리의 추수감사절로 지켜야하는지, 아니면 미국 크리스천들의 추수감사절을 그대로 지켜야하는지에 대해서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감사하는 날을 정해놓고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국가적 정통입니다. 미국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감사절을 지키게 된 것은 1621년으로,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 동부 플리머스에서 식민지 개척자들이었던 청교도들이 고난의 겨울을 보낸 후에 추수한 곡식을 갖고 그 지역의 인디언들(Wampanoag Indians)을 초대하여 함께 감사의 축제와 예배를 드린 것이 효시였습니다. 바로 그 해에 윌리엄 브래드포드(William Bradford) 주지사가 감사일을 선포하였으며 당시 식민지 개척자들은 전통적인 영국식 추수축제로 지켰습니다. 시기는 추수를 모두 마친 후에 식민지 전역에서 지켜졌는데, 1777년 10월에 이르러서야 미국 동부의 최초의 주들인 13개주가 모두 지키게 되었습니다. 조지 워싱톤은 1789년에 국가 공휴일로 선포한 초대 대통령이었다고 합니다.

세월이 흘러 1863년에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이 추수감사절을 전국적인 휴일로 선언하게 됩니다. 남북 전쟁(1861-1865)이 마친 그 다음해에 있었던 감사절 선포는 매우 뜻 깊고 감회가 깊은 일이었습니다. 내전으로 인해 온 나라가 상처투성이지만 새로운 희망을 보았고, 그 가운데서 그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꼈기 때문이었습니다. 링컨이 선언한 “감사절 선언문”을 보시겠습니다.

                                                                Lincoln's Thanksgiving Proclamation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는 올 한해는 들판의 풍성한 곡식들과 맑고 푸른 하늘들로 가득한 축복들로 채워졌습니다. 지속적으로 누렸던 이러한 풍요들에 대해 우리는 그것들이 어디서 왔는지 쉽게 잊어버립니다. 더욱이 어떤 축복들은 항상 깨어서 돌보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습관적으로 무감각한 마음까지도 깊이 파고들어 부드럽게 할 만큼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놀라운 축복들도 있었습니다.
………
그 어떠한 인간의 모략과 지혜도 이러한 놀라운 일들을 계획하지도 못했고 그 어떠한 인간의 손도 이러한 위대한 일들을 만들어 내지 못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때때로 우리의 죄들에 대해 분노하시면서도 긍휼을 기억하시는 지존하신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물들입니다.

나는 모든 미국인들이 한 마음과 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놀랍고도 위대하신 일들을 엄숙하고 경건하게 감사한 마음으로 기억해야하는 것이 마땅하고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미국 어디 곳이든지 그리고 타국에 있는 나의 모든 동료 시민들께서 11월 마지막 목요일을 따로 떼어 하늘에 계시는 우리의 자비로우신 아버지께 감사와 찬양의 날로 지킬 것을 요청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나는 여러분들에게 그러한 특별한 구원들과 축복들에 대해서 마땅히 그분에게 돌려드려야 할 송영을 드리면서 또한 우리의 국가적 완악함과 불순종에 대해 겸손하게 참회의 기도를 드리기를 요청합니다. 또한 피치 못하게 치룰 수밖에 없었던 통탄할만한 내전(內戰)으로 인해 남편과 아버지를 잃게 된 과부와 고아들, 그리고 상을 당한 자들과 고통 하는 자들을 그분의 자애로운 돌보심에 맡기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길이 이 나라의 상처들을 치유하고 회복시켜 하나님의 목적에 일치되는 때가 속히 와서 평화와 조화와 안온과 통일을 충만하게 누리는 날이 오기를 간절하게 기도하기를 요청하는 바입니다.
        
미국독립 88주년의 해인 1863년 10월 3일에 워싱톤에서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


                                                                         [감사: 기독교적 전통]
이처럼 감사에는 국가적 전통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상 감사하는 일은 매우 기독교적 전통입니다. 기독교의 전통 안에는 감사를 표하는 전통이 있다는 말입니다. 감사를 언제, 어디서, 어떻게, 누구에게 드려야하는지에 관한 오래된 기독교적 전통이 있습니다. 구약과 신약에는 감사에 관한 가르침이 많지만 오늘은 그 중에 신약 성경 중 한 구절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방금 전에 읽은 내용은 감사하는 일에 관한 기독교적 전통을 가리키는 본문입니다. “범사(凡事)에 감사하라. 이것이 너희를 위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뜻이니라.”(18절)

“범사”(凡事)란 모든 환경과 모든 처지들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모든 환경과 처지 안에서(in) 감사하라”고 권면하십니다.

먼저 이 말은 모든 환경과 처지들에도 “불구하고”(in spite of) 감사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즉 어둡고 괴로운 날들과 시간들에도 불구하고 어느 경우는 환하고 밝은 날들이 있지 않겠습니까? 바로 그런 밝은 날들을 기억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뜻으로 이해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 감사해야할 몇 가지 일들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내면서 감사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또한 사도 바울께서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셨을 때는, 모든 환경들과 처지들 “때문에”(for) 감사하라고 하신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어떤 환경이나 처지들은 너무도 끔직하고 소름이 끼치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환경이나 처지는 너무도 악하고 나빠서 아무리 보아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이 분명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환경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모순이고 불합리한 일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것은 그런 일들에 “대해서”(for) 감사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처하게 되는 환경이나 처지들 중 많은 경우는 악마적 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보아도 그것이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볼 수 없는 경우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생명을 파멸하는 암의 경우, 희망을 파괴하고 죽이는 우울증과 낙심의 경우를 보십시오. 그런 형편이나 처지에 빠졌을 때 분명코 그것들은 악마적이고 마성적인 것이지 하나님의 자애로운 손에서 나오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따라서 그런 경우에 대해서도 감사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암 때문에, 암을 주신 것이 고마워서 하나님께 감사하십니까? “암(癌)아, 고맙다!”라고 말하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것 때문에 감사하지 않습니다. 우울증과 낙심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하십니까? “우울증아 고맙구나!”라고 말하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것들 때문에, 혹은 그런 것이 고마워서 감사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모든 환경 “안에서”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악한 환경들 “한 복판에서”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성적인 형편들 “한 가운데서”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바울이 디모데에게 쓴 것을 읽어보시면서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善)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딤전 4:4)

달리 풀어서 말하자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때, 감사드리는 그 이유와 그 목적과 그 내용이 깨끗하고 정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감사의 이유와 목적과 내용이 세속적인 영역에서 신성한 영역으로 옮겨간다는 것이며,
   •건져냄을 받지 못한 세상에서 건져냄을 받는 세계, 즉 구속의 세계로 옮겨간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식사할 때마다 “주님, 이 음식을 축복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이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의 음식은 깨끗하고 거룩하게 됩니다.
   •기도를 통해, 추수감사절의 떡들이 세속의 영역에서  하나님 왕국의 영역으로 옮겨지는 것입니다.
   •기도는 오늘 우리가 가져온 과일과 무와 배추들을 격상시켜 장차 오는 세계에 참여하게 만들 것입니다.  

감사절에 먹는 음식에게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면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들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감사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들도 그렇게 된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 바쳐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뜻입니다.
   •그 어떤 경험도, 비극도, 질병도 하나님께 바쳐질 수 없는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안에 있지 않게되는 어떤 문제도, 어떤 병고도, 어떤 불행도, 어떤 비극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오직 감사를 통해서만 그렇다는 것입니다.

모든 환경들 안에서(in), 모든 처지들 가운데서 감사를 드린다는 것은 마치 쟁기질 하는 농부의 행위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쟁기질 하는 농부는 쟁기를 끌지(pull) 않습니다.
   •쟁기질 하는 농부는 쟁기를 밀지(push) 않습니다.
   •쟁기질 하는 농부는 쟁기를 인도(guide)할 뿐입니다.

정확하게 이것이 환경들이 우리의 삶 안에서 움직이는 방식이며 길입니다.
   •우리는 환경들을 끌고 갈수 없습니다.
   •우리는 환경들을 밀고 갈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환경이라는 것은 그것들만의 타성(惰性)과 여세(餘勢)(momentum)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쟁기질하는 농부처럼 우리는 그 환경들을 인도할 수는 있습니다. 우리는 그 환경들을 하나님께 바쳐드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감사를 통하여 환경을 거룩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감사를 드림으로써 그런 것들을 하나님의 방향으로 인도하여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손에 맡겨진 것들은 하나님께서 알아서 처리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할 때,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방향으로 환경들을 인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환경들을 붙잡아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감사를 계속해서 바침으로써 모든 환경들을 우리의 주님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사로잡아 바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분께서 알아서 책임지실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숙제만을 하면 됩니다. 그 다음은 그분이 하실 숙제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여, 범사에 감사하십시오.
   •우리보다 우리를 더 잘 아시는 창조주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궁핍과 비참을 더 잘 이해하시는 영원하신 아버지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크리스천들이여, 모든 환경에서, 모든 처지에서 감사하십시오. 그 처지와 환경을 하나님께로 이끌어 가십시오.
        - 마치 쟁기질 하듯이 그렇게 말입니다. 아멘.



                                                                                [참고]
                                                         Lincoln's Thanksgiving Proclamation
                                                          Washington, DC—October 3, 1863

The year that is drawing toward its close has been filled with the blessings of fruitful fields and healthful skies. To these bounties, which are so constantly enjoyed that we are prone to forget the source from which they come, others have been added which are of so extraordinary a nature that they can not fail to penetrate and soften even the heart which is habitually insensible to the ever-watchful providence of Almighty God.
        
In the midst of a civil war of unequaled magnitude and severity, which has sometimes seemed to foreign states to invite and to provoke their aggression, peace has been preserved with all nations, order has been maintained, the laws have been respected and obeyed, and harmony has prevailed everywhere, except in the theater of military conflict, while that theater has been greatly contracted by the advancing armies and navies of the Union.

Needful diversions of wealth and of strength from the fields of peaceful industry to the national defense have not arrested the plow, the shuttle, or the ship; the ax has enlarged the borders of our settlements, and the mines, as well as the iron and coal as of our precious metals, have yielded even more abundantly than heretofore. Population has steadily increased notwithstanding the waste that has been made in the camp, the siege, and the battlefield, and the country, rejoicing in the consciousness of augmented strength and vigor, is permitted to expect continuance of years with large increase of freedom.

No human counsel hath devised nor hath any mortal hand worked out these great things. They are the gracious gifts of the Most High God, who, while dealing with us in anger for our sins, hath nevertheless remembered mercy.

It has seemed to me fit and proper that they should be solemnly, reverently, and gratefully acknowledged, as with one heart and one voice, by the whole American people.

I do therefore invite my fellow-citizens in every part of the United States, and also those who are in foreign lands, to set apart and observe the last Thursday of November next as a day of thanksgiving and praise to our beneficent Father who dwelleth in the heavens.

And I recommend to them that while offering up the ascriptions justly due to Him for such singular deliverances and blessings they do also, with humble penitence for our national perverseness and disobedience, commend to His tender care all those who have become widows, orphans, mourners, or sufferers in the lamentable civil strife in which we are unavoidably engaged, and fervently implore the imposition of the Almighty hand to heal the wounds of the nation and to restore it, as soon as may be consistent with the divine purpose, to the full enjoyment of peace, harmony, tranquillity, and union.

In testimony whereof I have hereunto set my hand and caused the seal of the United States to be affixed.

Done at the city of Washington, this 3d day of October, A.D. 1863, and of the Independence of the United States the eighty-eighth. Abraham Lincoln

By the President:
William H. Seward,
Secretary of St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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