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내가 매일 기쁘게 순례의 길을”

행전 8:24-40

 

[들어가는 말]

 

지난 시간에 배웠던 내용을 잠시 되감아 봅니다. 스데반의 죽음으로 시작된 공포스런 박해 때문에 예루살렘 교회의 상당수 사람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흩어진 사람들은 민들레 홀씨처럼 던져지고 날리고 뿌려진 곳이 어디든지 그곳에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대단한 생명력입니다. 마치 바로의 학대가 심할수록 이스라엘 백성은 더욱 번성해졌던 것처럼 말입니다(출 1장).

 

그들은 “흩어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확고한 믿음위에 선 담대한 삶입니다. 그들은 박해라 불리는 사악한 조건 때문에 삶의 뿌리가 뽑혀 낯선 곳에 던져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삶의 목적이 분명했기에 악한 환경에서도 기쁘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고 다녔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일곱 전도자들 중의 한명인 빌립도 사마리아 성읍까지 내려가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빌립은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한 복음을 전했습니다(12절). 많은 사람들이 개종하였습니다. 그들은 전파되는 복음을 믿고 세례까지 받았습니다. 그중에 시몬이라는 사마리아 성에 유력한 마술사가 있었습니다. 때마침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베드로 사도와 요한 사도가 개종한 사람들을 위해 안수하며 기도하자, 그들이 성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광경을 옆에서 지켜보던 시몬이 “이와 같은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라고 말합니다(19절). 바로 뒤에 나온 사도 베드로의 대답을 보면, 시몬은 돈으로 그런 능력을 사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돈이면 다 되는 줄 아는 천박한 사람이네요. 한국 교회 안에도 이러한 천민자본주의 신봉자들이 종종 발견된다는 비극적 현상은 어찌해야하나요! 어쨌든 베드로 사도의 말을 들어보세요. “네가 하나님의 선물(성령)을 돈으로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8:20) 아주 심한 저주입니다. [참고로 영어에 “시몬이”(simony)는 성직매매라는 뜻입니다.]

 

사마리아에서의 사역을 마친 두 사도 베드로와 요한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길에 “사마리아인의 여러 마을에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25절) 사도들이 사마리아 성읍을 찾은 것은 예루살렘의 사도단에서 보낸 “공식적 방문”(official visit)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때를 얻는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매진한 분들이었음이 분명합니다. 공식방문 일정을 마쳤으면 예루살렘으로 그냥 돌아가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돌아가는 길에 사마리아인들이 사는 마을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지나는 곳마다 거치는 마을마다 복음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감동적인 장면입니다. 어둠 속에 있는 영혼들에 대한 긍휼, 복음에 대한 열정, 부활생명에 대한 확신 등이 그들로 하여금 피곤을 무릅쓰고 복음 전파에 혼신의 힘을 다한 것입니다.

 

성령이 이니셔티브를

 

오늘은 다시 빌립 전도자의 행적을 따라가 봅니다. 빌립은 이미 사마리아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를 증언하는 데 앞장섰습니다(12절). 그를 통해 사마리아 성은 복음화 되었고 “큰 기쁨”이 있게 되었습니다(8절). 아니 그를 통해 성령께서 강력하게 일하셨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입니다. 행전 1:8을 다시금 떠 올려보십시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

 

사도행전을 달리 성령행전이라 부르는 이유입니다. 성령께서 역동적으로 일하시는 모습이 전개되고 있는 책이라는 뜻이겠죠. 성령은 주의 사자(천사)를 통하여 빌립에게 사마리아를 떠나 예루살렘 남쪽 가사지역으로 가라고 지시합니다. 그 길은 “광야”라고 특정하고 있습니다. 광야서 무엇인가 일어날 것을 암시하는 문구이기도 합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곳, 사람을 만나는 일도 없을 곳, 있어야 오고가는 대상들만 눈에 띨 곳이 광야입니다. 어쨌든 예루살렘을 방문하고 자기의 나라로 돌아가고 있는 에티오피아의 고위 관리를 만나보라는 명이었습니다. 그는 에티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였습니다. [“간다게”는 마치 “바로”와 마찬가지로 “왕”을 지칭하는 칭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에티오피아는 좀 더 정확하게 “누비아”왕국을 말하는데, 누비아에서는 오직 여왕들만이 다스렸다고 합니다.]

 

왕궁의 내시는 일반적으로 후궁들을 관리하고 국고를 책임지고 살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종종 거세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항상 거세를 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내시”라는 용어는 그저 “정부 관리”로도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내시는 거세당한 사람은 아닌 듯합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거세된 내시라면 유대교의 개종자가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 공동체에 받아들여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참조 신 23:1). 그가 개종자의 신분을 얻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열혈 유대교 추종자였나 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가 그토록 먼 길을 예루살렘으로 순례하러 오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추측하건데 그는 유대인의 삼대 명절중의 하나인 오순절에 예루살렘으로 순례하러왔다가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그가 유대교에 열정적인 신봉자였다는 또 다른 증거로 그가 구약성경(이사야서)을 읽고 있었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광야로 가보라는 성령의 지시에 빌립은 순종했습니다. 광야 지역을 지나는 에티오피아의 내시를 만나게 됩니다. 내시의 수레에 올라타고 보니 그가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고 있었습니다. 차량을 운행하면서 책을 읽는 것은 아주 위험한 습관이며 중대한 교통법규 위반이겠지만 아마도 고위관료이기에 아랫사람이 수레를 운전했을 것입니다. 어쨌든 빌립은 이사야서를 소리 내어 읽고 있던 내시에게 묻습니다. “지금 읽고 있는 내용을 이해하십니까?”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누군가 나에게 설명해주지 않는데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참 훌륭한 학생의 자세입니다. 선생 된 사람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 중에 하나입니다.

 

성경과 성령

 

사실 성경을 제대로 읽고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또한 이 대화에서 우리는 성경은 해석되어야 하는 책이라는 사실도 배우게 됩니다. 그것도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말입니다. 달리 말해 성경은 성령의 조명이 없이는, 성령의 알려주심이 없이는 올바로 이해할 수 없는 책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거나 설교(하나님의 말씀 선포)를 들을 때 우리는 먼저 성령의 도움을 간절하게 기도해야하는 것입니다. 개혁교회의 예전에 따르면, 설교 직전에 설교자는 회중들과 함께 “조명의 기도”(Prayer of illumination)를 드립니다.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안경으로 구약성경을 바라보기

 

놀랍게도 이사야서의 많고 많은 본문들 가운데 내시가 읽고 있었던 본문은 이사야서에서도 아주 유명한(?) “여호와의 고난 받는 종”에 관한 노래 본문이었습니다. 이사야서 52:13-53:12입니다. 이사야서 후반부 네 곳에 “여호와의 고난 받는 종”의 노래가 실려 있다고 합니다(42:1-4; 49:1-6; 50:4-9; 52:13-53:12). 이 중 마지막 노래는 후대에 기독교 전통에서 가장 잘 알려져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높아지심이 여기에 가장 분명하게 나타나있기 때문입니다.

 

에티오피아 내시가 읽고 있던 이사야서 본문 가운데 53:7-8이 오늘의 핵심구절입니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양처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어린 양처럼 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정당한 재판을 받지 못하고 굴욕만 당하였다. 지상에서 그의 생애가 끝났으니 누가 그의 후손을 이야기하랴?"(공동번역)

 

여기서 말하는 “그”는 누구를 가리키는 대명사인가? 내시의 머릿속을 맴맴 돌던 질문이었습니다. 그가 누구인가? 이사야 자신인가 아니면 다른 누구인가? 빌립은 이 구절이 예수 그리스도의 굴욕적인 죽임을 가리킨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즉 예수는 사람들의 죄를 위해 바쳐진 제물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빌립은 계속해서 말하기를 속죄 제물로 바쳐진 예수 그리스도의 삶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았고 도리어 하나님께서 어린양과 같은 그를 살리셨을 뿐 아니라 하늘 보좌에 앉히시어 만왕의 왕 만유의 주님으로 삼으셨다고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내시는 광야 한복판에서 열린 일일 사경회에서 구약성경이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에 대해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유대교 신자로서 그에게 이 사실은 매우 큰 충격이었습니다. 이런 와중에 성령은 내시의 마음을 강력하게 흔들어 놓았습니다. 내시는 빌립이 알려준 “복음”(35절)을 믿었습니다. 그에겐 고난당하시고 높임을 받은 하나님의 종의 자녀(후손)에 속하고 싶은 마음의 생겼습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메시아)로, 예수를 주님으로 받아들일 마음이 일어난 것입니다.

 

성경과 신앙고백과 세례

 

그러자 내시는 빌립에게 세례를 베풀어달라고 부탁합니다. 아마 유대교 추종자로서 그는 세례의식이 자기가 믿는 종교로 입문하는 것인 줄 알았던 모양입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성경본문 37절에는 “없음”이라고 표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후대의 사본 전승에 따르면 36절과 38절 사이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빌립이 말하기를, 당신이 온 마음으로 믿으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자 내시가 대답하기를,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믿습니다.”

 

그는 믿음을 고백하고 세례를 받고 기독교회 안으로 입문하게 됩니다. 먼저 우리는 성령께서 빌립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구약)을 올바로 알게 하시고, 그 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다는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배움에서 신앙고백이 시작되는 것이고, 신앙고백이 있은 다음에 세례가 베풀어졌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신앙고백과 세례사이의 밀접한 관계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는 최초의 이방인으로서 그것도 내시라는 불명예스런 직함을 가진 사람으로서 그리스도 교회에 받아들여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땅 끝에서 온 사람이었고 – 당시 에티오피아는 땅 끝과 같은 지역을 가리켰습니다. - 성령의 강력한 일하심을 통해 복음이 땅 끝까지 전해지는 표본적 사건이 된 것입니다. 놀라운 일은 당시의 공교회가 이방인 선교에 대한 문제에 관련하여 중대하 결정을 내리기도(행 10-11장) 전에 이 이방인에게 복음의 전해졌다는 사실입니다. 성령의 일하심은 때론 인간적 제도와 규례들을 뛰어넘기도 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할 것입니다. 그분의 사역과 일하심을 누가 통제하고 막을 수 있겠습니까? 존중하고 경외하는 마음으로 성령님의 일하심에 대해 항상 열려 있어야 할 것입니다.

 

선물로 주어진 기쁨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은 에티오피아의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마치 예수에 대한 복음을 듣고, 그를 믿고, 세례를 받았던 사마리아 성읍 안에 큰 기쁨이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기쁨은 하나님이 베푸신 구원을 경험한 사람들이 보이는 정서적 반응입니다.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는 기쁨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기쁘게” 인생 길, 순례의 길, 신앙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입니다. 더 이상 빌립의 도움이 없이 그는 혼자서 에티오피아로 가는 먼 길을 기뻐하며 갔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새롭게 맺은 관계 안으로 기쁘게 걷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광경을 상상하면서 다음의 찬송을 같이 불러보면 어떨까요? (285장)

 

           주의 말씀 받은 그 날 참 기쁘고 복되도다.

           이 기쁜 맘 못 이겨서 온 세상에 전하노라.

 

           이 좋은 날 내 천한 몸 새사람이 되었으니

           이 몸과 맘 다 바쳐서 영광의 주 늘 섬기리.

 

           새사람이 된 그날부터 평안한 맘 늘 있어서

           이 복된 말 전하는 일 나의 본분 삼았도다.

 

          (후렴)

           기쁜 날 기쁜 날 주 나의 죄 다 씻은 날

           늘 깨어서 기도하고 늘 기쁘게 살아가리

           기쁜 날 기쁜 날 주 나의 죄 다 씻은 날

 

나가면서

 

빌립은 유대 내륙에 위치한 예루살렘에서 지중해 연안의 마을인 가사(흥미롭게 가사는 “보물”이라는 의미)로 내려갔습니다. 성령에 이끌리어 간 행보였습니다. 그는 거기서 예기치 못한 개종자를 얻었습니다. 이제 성령은 빌립을 다시 가사보다 약간 북쪽 연안에 있는 아소도 지역으로 보냈습니다. 거기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룻다(9:32), 욥바(9:36), 가이사랴(40절, 21:8)까지 이르게 됩니다. 복음의 확산이 정말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모두 성령의 강력한 이니셔티브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복음은 각종 경계선들을 넘어섭니다. 인종적, 사회적, 지리적, 신분적, 경제적, 이념적, 정치적 경계선들을 넘어섭니다. 넘어섬으로써 그런 경계선들을 무너뜨립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모든 영토와 영역들을 하나로 통일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일을 위해 부르심을 받은 소명자요 사명자입니다. 스데반처럼, 빌립처럼, 흩어진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생각해 봅시다]

 

1. “사도행전”을 별칭으로 “성령행전”이라 부르는 이유를 (사도행전)성경에 근거해서 말해보십시오. 오늘의 본문에서도 찾아보십시오.

 

2. 예루살렘에서 가사까지 내려가는 길을 “광야 길”(desert road)이라고 특정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구절이 우리에게 어떤 영적 자극과 유익을 줍니까?

 

3. 구약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지에 대해 오늘의 일화는 어떤 가르침을 줍니까? 참고로, 누가 24장의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의 이야기와 연결해보십시오.

 

4. 빌립은 이사야서의 “고난 받는 여호와의 종에 대한 노래”를 그리스도에게 적용시키는 방식으로 해석을 했습니다. 어떻게 했는지 설명해보세요. [참고로, 구약에 대한 기독론(그리스도론)적 해석 방법도 두 가지로 대별될 수 있습니다. 하나는 그리스도 중심적 해석(christo-centric)이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 목적 지향적 해석(christo-telic)입니다.]

 

5. 본문에서 성경해석과 신앙고백과 세례는 어떤 관계일까요? 예전적인 관계뿐 아니라 구원적인 순서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십시오.

 

6. 내시가 “기쁘게 길을 갔다”는 구절은 신앙적으로 어떤 은유를 담고 있습니까? 언제 기쁨은 옵니까? 누가복음과 행전에서 중요한 주제 중에 하나가 “기쁨”입니다(참고로, 누가 15장의 세 가지 비유들의 주제가 “기쁨”이란 것을 기억해보십시오.)

 

[candles of 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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