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복음”(福音)에 놀라본 일이 있던가요?

 

 

그리스도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단어들 가운데 “복음”이란 용어가 있습니다. 기독교의 핵심 메시지가 “복음”이 아니면 뭐겠습니까? 종종 “복된 음성”, “좋은 소식”, “반가운 소식” “기쁜 소리”라고 번역된 “복음”(Good News, Evangelium, Ευαγγέλιον, 유앙겔리온)은 그 자체가 전무후무한 문학적 장르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신약성경에서 만나는 4복음서를 기억해보십시오. “마태가 전하는 복음서”, “마가가 전하는 복음서”, “누가가 전하는 복음서”, “요한이 전하는 복음서”입니다. 복음서라는 독특한 장르는 성경이외에 고대 어느 문헌에서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복음서를 생전 처음으로 읽어보았을 때의 느낌이 뭐던가요? 최초의 독자들 말입니다. 일세기의 최초의 독자들뿐 아니라 복음서를 처음으로 읽고 들었을 때의 여러분과 저 말입니다. 솔직하게 말해서 여러분과 제가 정말로 처음 읽는 책처럼 낯설게 복음서를 읽었더라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아마 경이와 경탄과 탄성과 충격과 놀라움과 믿어지지 않음과 같은 반응이었을 것입니다. 아니 읽어가는 내내 그러한 반응이 아니었더라면 그건 새빨간 거짓이었을 것입니다. 이게 뭔 소리입니까? 복음서 안에는 우리가 도저히 상상하기 어려운 일들, 우리가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사건들이 수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복음서 안에 “기적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이 나옵니까? 정말로 많습니다. 복음서들은 기적이야기로 도배를 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중풍병자가 고침을 받고 자기 발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문등병자의 피부가 어린아이의 보드라운 살로 변했다? 구은 생선 2마리와 마른 떡 5조각으로 오천 명의 사람들이 먹고도 넉넉하게 남았다? 죽은 지 삼일 정도 된 시체가 무덤에서 걸어 나왔다? 새벽녘에 어떤 사람이 갈릴리 호수 위로 걸어서 오더라? 12년 동안 툭하면 지혈이 되지 않고 고생하던 여인이 어느 도인과 같은 사람의 옷자락을 만졌더니 깨끗하게 나았다? 발이나 손을 닦으려고 담아 놓은 항아리의 물이 갑자기 변해서 기막힌 최상급의 포도주가 되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의 눈에 침으로 흙을 이겨 발랐더니 비늘 같은 것이 생기면서 눈을 뜨게 되었다? 죽었다가 삼일 만에 살아났다? 구름을 타고 하늘로 두둥실 올라간다? 이런 목록은 기차처럼 길게 늘어날 것입니다.

 

정말 믿겨지지 않는 일들,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일들, 눈과 귀를 의심하게 하는 일들, 소름끼치는 일, 아이들을 위한 동화나 요정이야기에나 나올법한 일들로 가득한 이야기책이 “복음서”라는 것입니다. “으악!” “헉” “헐!” “와우!” “으흠…” “글쎄…” “정말?”과 같은 영탄사를 사용하지 않고서는 달리 반응할 수없는 사건들입니다. 이게 복음입니다! 충격과 경탄, 멘붕과 경이, 기쁨과 눈물, 갈증과 희망을 자아내는 복음입니다.

 

최초로 복음을 들었던 사람에게 복음은 전복(顚覆)적이었습니다. 복음은 그들이 알고 있던 세상과 세계를 뒤집어놓는 초강력의 전복적 힘을 갖고 있다는 말입니다.

 

근데 비극은 이런 복음이 지금 우리에게 닳고 닳아빠진 문고리 정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을 열어보자면 복음이 닳고닳아빠진 것이 아니라 복음에 친숙하다는 미명아래 우리 자신이 닳고닳아빠지게 된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얼마나 많은 분들이 복음에 대해 놀라거나 내 귀를 의심해보거나 너무 기뻐서 눈물을 짓거나, 그런 세상의 도래에 대해 갈망하거나 그 아름다움을 헤아려본 일이 있던가요.

 

아, 슬프게도 우리는 다 늙은 개들, 묵은 닭들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놀라지도 기뻐하지도 의심하지도 자신의 허벅지를 꼬집어보지도 하늘을 쳐다보고 눈물 지어보지도 않는 메마르고 강퍅하고 뻑뻑한 고깃덩어리가 되어 버렸습니다. 오호 통재입니다.

 

복음, 유앙겔리온, 좋은 소식, 기쁜 소식, 충격적인 소식, 도무지 믿겨지지 않는 이야기를 접했던 사람들은 엉엉 울기도 하고, 깔깔대고 웃기도 하고, 무릎 꿇고 기도하기도 하고, 고개를 길게 빼고 기대하고 바라보고, 손을 모으며 설레기도 해보고, 아득한 날들을 헤아려보기도 하고, 목마른 사슴처럼 갈망해 보기도 하고, 허공을 향해 소리쳐보기도 하고,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려보기도 했습니다. 왜? 복음 때문입니다.

 

이런 복음에 대해 우리는 결국 믿음으로 “아멘!”이라고 응답하게 됩니다. 아멘이라고요? 예, 아멘은 “아~~ ‘멘붕’입니다!”라고 고백하는 외침입니다. 복음 유감이었습니다.

 

[Port Oneida Rural Historic District, MI, by Northern Way of Life Photography]

Port Oneida Rural Historic District.jpg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신간 출간:『이사야서 I: 예언서의 왕자』 [1] 류호준 2016.07.26 542
568 일상 에세이: "숫자에 얽힌 사연" [2] file 류호준 2016.07.29 521
567 신앙 에세이: "가나안 제자들" file 류호준 2016.07.29 387
566 일상 에세이: “미국이 우선이라고?” file 류호준 2016.07.24 317
565 신앙 에세이: “우리의 총구(銃口)는 어디를 향할 것인가?” file 류호준 2016.07.22 295
564 일상 에세이: "목사와 사모의 자기소개 유감" 류호준 2016.07.14 1104
563 일상 에세이: "비오는 날의 조찬과 데살로니가 주석" file 류호준 2016.07.12 512
562 일상 에세이: “선생님의 히브리어 타자기” file 류호준 2016.07.10 528
561 비유(A Parable): “유턴 교습소” file 류호준 2016.07.04 703
560 신앙 에세이: 찬송 “예수가 거느리시네!” 유감 [1] file 류호준 2016.06.23 1467
559 신앙 에세이: “신학대학원 장학금 유감” file 류호준 2016.06.18 4495
558 신학에세이: “하나님나라와 교회와 하늘나라” file 류호준 2016.06.14 1469
557 신앙 에세이: "인간론을 배우는 곳" file 류호준 2016.06.05 1002
556 일상 에세이: “한강의 데보라 스미스와 폰 라트의 허혁” file 류호준 2016.05.19 762
555 일상 에세이: “비오는 날 주차 유감” file 류호준 2016.05.03 676
554 신앙 에세이: 심중소회(心中所懷) [1] file 류호준 2016.04.23 1146
553 "우리에게 거룩함이란?": 한 개혁신학자의 가르침 file 류호준 2016.04.14 974
552 신앙에세이: "세 종류의 퍼레이드" file 류호준 2016.03.20 789
» 신앙 에세이: “복음”(福音)에 놀라본 일이 있던가요? file 류호준 2016.03.16 1140
550 클린조크: 알파고(AlpaGo)와 오메가고(OmegaGo) file 류호준 2016.03.10 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