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 이사야 66:1-14
제목: 하나님은 언제 무시당하시는가?
묵상 포인트: 하나님을 조작하려는 모든 종교제의는 결국 우상숭배로 이어집니다.
기분이 나쁘거나 화를 내게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마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입었을 경우입니다. 달리 말해 무시당할 때입니다. 마치 나를 투명인간으로 취급할 때입니다. 하나님의 경우는 어떨까? 하나님의 경우도 우리의 경우처럼 무시당할 때일 겁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벼이 여기거나 우습게 여기고 자기 방식대로 살 때입니다. 특별히 예배를 빙자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면서도 실제적으로는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살 때입니다.
지금 우리는 이사야서의 마지막 장에 와있습니다. 여러분은 이사야서의 첫 장이 어떻게 시작했는지 기억하십니까? 이사야서 첫 장은 예루살렘의 종교제의가 얼마나 위선적이고 자기중심적이고 정의를 상실하였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일요일의 하나님으로 가두어 놓고 온갖 뇌물성 예물들을 다 바쳤으며 열정적으로 각종 종교집회에 참석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일상의 시간들은 모두 자기의 이익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각종 불의한 방법들도 불사하였습니다. 말로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온갖 마음의 우상들을 만들어 섬겼습니다. 편의적인 신(우상)들 만들어 섬긴 것입니다. 하나님은 분노하셨고 자신이 무시당한다는 불쾌감을 드러내셨습니다.
이사야서 마지막 장 역시 이런 잘못된 종교제의의 허구와 사악함을 여과 없이 드러냅니다. 먼저 성전건축에 대해 하나님께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십니다(1절). 물론 성전을 짓는 것이나 희생제물을 드리는 것을 본질적으로 반대하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분노하시는 이유는 진심으로 뉘우치는 마음도, 하나님에 대한 진심어린 순종의 마음이 없는 공허한 제의와 예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예배는 공허한 짓거리며 무익한 종교행위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하나님께서 존귀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떠는 자”(2절)입니다. 이것이 예배자의 자세이며, 참 예배의 출발점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식으로 경배받기를 원하십니다.
마음이 가난한 시온과 통회하는 예루살렘은 불임(不姙)의 불행을 극복하고 번성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매춘부와 같았던 시온을 신실한 도시, 열국의 어미로 회복시키시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진정한 풍요와 번성은 풍산(바알)종교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사야는 진정한 삶, 풍성한 인생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들이 공짜로 받는 선물이라고 강조합니다. 어머니의 품에 안겨 젖을 빠는 어린 아기처럼 참 이스라엘인들은 하나님의 은혜의 젖줄을 빨고 건강하게 자랄 것입니다. 더 이상 자기의 힘이나 능력으로가 아니라 오직 공급되어지는 젖을 절대적으로 의지할 때 건강한 성장이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어머니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하리라.”(13절)는 말 속에서 우리는 희망을 보게 됩니다.
| 기도 | 우리는 하나님의 궁극적인 판단이 언제나 옳고 정의롭다는 것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