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일상 에세이: “한강의 데보라 스미스와 폰 라트의 허혁”

 

다른 나라의 언어를 자기 나라의 언어로 옮기는 일, 혹은 그 반대의 일을 가리켜 보통 “번역”(translation)이라고 한다. 이번 한국문학사에 큰 경사로 알려진 여류작가 한강의『채식주의자』(The Vegetarian)가 세계적으로 알려진 영국의 권위 있는 문학상 맨 부커 인터내셔널 상(Man Booker International Prize)을 수상한 이면에는 탁월한 번역자의 유려한 번역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한다.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하고 21살에 한국어를 배운지 불과 몇 년 안 된 29살의 영국의 젊은 여성 학자 데보라 스미스(Deborah Smith, 1987년생, 런던 대학교, 한국학 전공, Ph.D.)가 그처럼 출중한 번역을 해 낼 수 있었다는 자체가 한강의 수상 이상으로 경이롭기까지 하다.

 

오늘의 심심풀이 주제는 “번역”이다. 어느 번역이든 완벽할 수는 없다. 번역이 오죽 어렵고 힘든 일이라고 해서, “번역은 반역이다”라는 농담이 있겠는가! 이런 오래된 속담(독일 철학자 슐레겔의 말이라고 하는데)을 생각하면 이번 문학상 수상은 대단한 경사임에 틀림없다.

 

한강의 작품 채식주의자의 문학상 수상과 함께 그 작품을 번역한 젊은 여성의 탁월한 번역에 대해 곰씹어본다. 한편 수 십 년 째 신학에 종사하고 있는 나로서 외국서적을 읽는 일은 일상이었고 초창기에는 경제적 이유로 가끔 번역을 하였다. 사실 우리말로 책을 저술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전문서적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일은 매우 칭찬을 받아야할 학문적 노력이다. 물론 단순히 외국어를 안다고 번역을 잘 하는 것은 아니다. 양쪽 언어와 문화, 그 전문 분야에 대한 광범위한 지식과 재능은 필수다. 사실 외국어를 탁월하게 다룰 수 있는 능력 이상으로 한국어에 대한 실력이 더 중요하다는 것은 번역 일을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다 느낄 것이다.

 

옛날 내가 신학을 공부하던 1970년대 시절에 외국서적을 구입하거나 접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게다가 번역서적도 그리 많지 않았다. 간혹 중요한 신학 서적이 번역이라도 되어 출판되면 그 책을 구입하고 소장하는 것 자체가 매우 유식해 보이는 때이기도 했다. 내 전문 분야인 구약학의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엊그제 잠자리 누워 잠을 채근하려다가 우연히 책꽂이에 꽂혀 있는 한 권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은 점점 잊히고 있지만 지난 세기에 구약학계의 위대한 거인으로 알려진 독일학자 게르하르트 폰 라트(G. von Rad)의 『구약성서신학 제 2권』이었다. 1977년에 번역 출판된 책이니 내가 외국으로 유학을 떠나기 3년 전에 출판된 책이었다. 이 책은 “이스라엘의 예언적 전승의 신학”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 책이다.

 

네덜란드에서 공부할 때 내 지도교수님이 종종 예언자 신학에서의 “새로운 것”(newness)이란 주제에 대해 언급하셨던 옛 일이 생각이 나서, 폰 라트의 책 안에서 “8세기 예언의 새로운 것”이란 항목(173-184쪽)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졸린 눈을 비벼가며 그 첫 문단을 읽기 시작했다. 전혀 이해가 안 되었다. “아마 오늘 피곤했던 관계로 그렇겠지!”하고 좀 정신을 차리고 다시 읽었다. 그래도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지금은 졸린 시간이니 정신을 차리고 읽어야 하나보다!” 그리고 또 첫 문단을 다시 읽었다. 이해하려고 문장의 주어와 동사를 찾고 한국어 구문론을 동원해 보았다. 그래도 이해는 다가오지 않았다. “내 머리가 이렇게 나쁘다는 거야?” “폰 라트가 이렇게 나도 모르는 위대한 사상을 설파하고 있는 거야?” 점점 내 속이 부글거렸다. 누어서 읽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침대 모퉁이에 앉았다. 잠이 사라져 버렸고, 전쟁에 나가는 전사의 불타는 열정이 솟구쳐 오르는 것을 느꼈다. 누구를 향한 것일까? 저자 폰 라트? 아니면 번역자 허 혁?

 

어쨌든 나를 열불 나게 했던 그 첫 문단은 이렇다.

 

“아모스와 호세아, 이사야, 미가 등의 예언의 각기 다른 특수성들을 세심하게 비교 관찰하는 일은 그 비교가 불가능하다는 결과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는 이유는 아주 심각한 차이성을 감안할 때 찾아낸 사소한 차이점들을 나중에 다시 혼합하는 위험이 거의 무시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73쪽) - 구약성서신학 제 2권 (이스라엘의 예언적 전승의 신학) G. 폰 라트, 허혁 번역 (1977, 분도출판사)

 

와우! 장문이다! 단숨에 읽기에도 너무 길다. 숨이 차다. 혈압을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이 문단을 구문론적으로 살펴보자면, 주어는 “이유”고 서술부는 “때문이다!” 헐.  복합 감정을 가라앉히고 이 단락을 나를 포함한 독자들을 위해 임시적으로 다음과 같이 번역해 보았다.

 

“아모스와 호세아, 이사야, 미가의 예언들을 살펴보면 서로 각기 다른 특성들이 드러난다. 이러한 특성들을 주의 깊게 관찰하게 되면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된다. 즉 예언서들을 비교하려는 모든 비교 작업들은 위험하다는 것이다. 이유는 이렇다. 일단 예언자들 사이의 급진적 차이점들을 발견하게 되다보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 자연스럽게 서로간의 급진적 차이점들을 무마시켜 서로 큰 차이가 없게 보려고 하는 유혹을 받기 때문이다.” (류호준의 ‘메시지’ 스타일 번역)

 

1970년대 이화여대에서 가르쳤던 허혁 박사는 그 나름대로 열심히 번역을 하셨던 것 같다. 복잡한 독일어원문에서 직역하다보니 저런 결과를 얻게 되지 않았는지 추측해 본다. 문제는 본인 나름대로 직역은 어느 정도 성공했는지는 몰라도, 한글을 다루는 솜씨에서는 완전 실패한 듯 보인다. 게다가 번역의 목적이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 것인데, 이것 역시 성공했다고 보기에는 회의적이다. 요즘은 많이 변모해가기는 하지만, 신학서적 번역이 그저 유학지망생들의 알바 정도로 치부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고, 물론 기독교 출판사들의 재정 자립도의 영세성 또한 큰 문젯거리지만 출판사들 역시 전문번역가들에게 번역을 맡길 뿐 아니라 그들에게 충분하고도 정당한 번역료를 지불해야 하지 않겠는가. 심지어 학문의 전당이라는 대학에서도 어줍지 않는 허술한 짜깁기 저술에 연구평점을 많이 주면서도 번역서는 그 절반의 연구평점을 주는 관행은 어서 속히 재고되어야하지 않을까? 오래전 도올 김용옥 선생도『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책에서 중국 고전 번역의 중요성에 대해 일갈한 기억이 새롭다.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데보라 스미스와 같은 번역자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오늘의 경사는 이뤄지지 못했을 것이다. 한국의 수많은 명품 문인들의 작품들이 데보라 스미스와 같은 명품 번역자를 만나도록 한국 정부와 민간 연구 재단들과 대학들은 많은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끝으로, 독일 개신교 최대의 구약신학자인 폰 라트의 구약성서신학이 로마가톨릭 계통의 분도 출판사에서 나왔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고 신비할 뿐이다! 어쨌든 지난 세기의 독일 구약신학계에서 아히로트의 [구약신학]과 함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는 폰 라트의 [구약신학]은 21세기의 한국 신학생들을 위해 다시 번역 출판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번역은 신실성과 투명성(Fidelity and transparency)을 생명으로 한다는데. 원문에 대한 신실성과 의미의 투명성 말이다!

 

*신학번역인으로 사는 삶을 둘러싼 일화들을 자양분 넘치는 이야기체로 진솔하게 써내려간 에세이집 한권을 추천합니다.  박규태, [번역과 반역의 갈래에서: 어느 번역가의 인문이 담긴 영성이야기](새물결플러스, 2012).

 

구약성서신학.jpg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류호준 교수의 무지개성서교실이 http://www.rbc2020.kr 로 리뉴얼하여 이전합니다. 류호준 2020.08.24 4396
공지 "무재개 성서교실은 여러분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5] 류호준 2018.03.29 2928
569 일상 에세이: "숫자에 얽힌 사연" [2] file 류호준 2016.07.29 765
568 신앙 에세이: "가나안 제자들" file 류호준 2016.07.29 653
567 신간 출간:『이사야서 I: 예언서의 왕자』 [1] file 류호준 2016.07.26 1514
566 일상 에세이: “미국이 우선이라고?” file 류호준 2016.07.24 441
565 신앙 에세이: “우리의 총구(銃口)는 어디를 향할 것인가?” file 류호준 2016.07.22 562
564 일상 에세이: "목사와 사모의 자기소개 유감" 류호준 2016.07.14 1508
563 일상 에세이: "비오는 날의 조찬과 데살로니가 주석" file 류호준 2016.07.12 1088
562 일상 에세이: “선생님의 히브리어 타자기” file 류호준 2016.07.10 857
561 비유(A Parable): “유턴 교습소” file 류호준 2016.07.04 3563
560 신앙 에세이: 찬송 “예수가 거느리시네!” 유감 [1] file 류호준 2016.06.23 2381
559 신앙 에세이: “신학대학원 장학금 유감” file 류호준 2016.06.18 4907
558 신학에세이: “하나님나라와 교회와 하늘나라” file 류호준 2016.06.14 2314
557 신앙 에세이: "인간론을 배우는 곳" file 류호준 2016.06.05 1234
» 일상 에세이: “한강의 데보라 스미스와 폰 라트의 허혁” file 류호준 2016.05.19 1213
555 일상 에세이: “비오는 날 주차 유감” file 류호준 2016.05.03 869
554 신앙 에세이: 심중소회(心中所懷) [1] file 류호준 2016.04.23 1427
553 "우리에게 거룩함이란?": 한 개혁신학자의 가르침 file 류호준 2016.04.14 1567
552 신앙에세이: "세 종류의 퍼레이드" file 류호준 2016.03.20 1016
551 신앙 에세이: “복음”(福音)에 놀라본 일이 있던가요? file 류호준 2016.03.16 1465
550 클린조크: 알파고(AlpaGo)와 오메가고(OmegaGo) file 류호준 2016.03.10 12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