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아주 비싼 커피” 유감

2014.11.10 20:28

류호준 조회 수:3047

  아주 비싼 커피

 

 

[이 글은 실화이지만 등장인물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약간 각색한 것입니다.]

 

영진군은 사회복지를 공부하는 지방대학 졸업반 학생이다. 졸업 후에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마음으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있는 중이다.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공부하랴 아르바이트하랴 무지하게 애를 써가며 부지런히 살고 있는 성실한 청년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지난 두 주 연속으로 결석했다. 평소 그를 어린 동생처럼 돌봐주던 J 교수는 그를 위해 여기저기 일자리를 추천해 주었지만 번번이 마지막 인터뷰에서 떨어졌다. 영진군의 낙심과 충격은 의외로 컸다. 지방대학 출신에 별반 스펙 쌓아놓은 것도 없으니 취업은 오르기 불가능한 태산처럼 보였다. 아마 그래서였는지 두 주째 학교 수업에 결석을 하였나보다. 물론 그를 깊이 사랑하고 돌봐주는 J 교수는 그런 이유일 것이라고 확신을 했다. 어떻게 해서든 그를 만나고 싶어 연락을 했지만 답장이 오지 않았다. 어느 날 J 교수는 서울에서 열리는 학회에 참석하고 있었다. 스마트폰에 카톡 소리가 울렸다. 서둘러 카톡을 열어보았다. 영진군으로부터 온 카톡이었다. 너무 반가웠다. “선생님, 한번 뵙고 싶어서 교수실에 들렸더니 문이 잠겨 있더군요. 선생님께 드리려고 커피 한잔 가져왔어요.” 그리고는 교수실 문고리에 걸어 놓은 커피 인증 샷을 찍어 보내왔다.

 

교수의 마음은 콩닥콩닥 뛰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지금 영진군은 내가 잠시 연구실을 비우고 있으니 곧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J 교수는 영진군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커피를 마시며 그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 여기가 어디란 말인가? 서울이 아닌가? 영진이가 있는 곳은 충청도 천안이 아닌가?

 

교수는 서울의 일정을 미련 없이 접었다. 영진군을 위해서라면 서울의 학회일정과 사람들 만나는 일정이 그렇게 중요하게 보이지 않았다. 사람이 먼저 아닌가? J 교수는 부리나케 남서울 고속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마음이 급했다. 서울서 천안까지 언제나 가나? 교수실 문고리에 걸려 있는 커피 인증 샷을 열어보았다. 영진군의 얼굴이 떠올랐다. 오늘따라 고속버스가 굼벵이처럼 기어가는 것 같았다. 서울서부터 천안의 학교까지 거의 2시간이 걸렸다. 천안 터미널에서 내려 다시 택시를 잡아타고 학교로 향했다. 내리자마자 허겁지겁 언덕 위 교수실로 달렸다. 숨이 찼다. 저만치 연구실 문이 보였다. 문고리에 걸려 있는 커피가 외롭게 매달려 있었다. 문고리에서 커피를 뺐다. 그리고 어둑해진 연구실로 들어갔다. 책상 위에 커피를 올려놓고 인증 샷을 찍었다. “고맙다. 사랑한다. 힘내라. 영진아!” 카톡 문자와 함께 인증 샷을 쏘았다. 슈욱 소리와 함께 인증 샷은 광속도로 날아갔다. 어둑어둑해진 늦저녁에 약간의 온기만을 남긴 채 식어버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물론 따스한 커피향기는 공중 어딘가로 사라졌지만 목젖을 타고 내려가는 커피가 목을 메이게 했다. J 교수는 일생에 가장 비싼 커피를 마시고 있는 중이었다.

 

사랑과 배려와 관심은 언제나 비싼 값을 지불해야 하나보다. 이 정도는 되어야 스승이라 할 수 있겠지!

 

[박정현의 소나무]

소나무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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